개헌 논의 불투명…불체포특권 제한 미지수
무임금 세비 지출·정치자금 수수 관행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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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폐기, 금고형 이상 시 세비 반납, 출판기념회 통한 정치자금 수수 금지 등 정치 개혁은 미완으로 남아 있다. /더팩트 DB |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유독 정치권은 개혁과 거리가 멀다. 우리 사회가 무서운 속도로 진일보하는 것과 너무나 대비된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는 사회 전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입법으로 고유 권한을 행사하고 있지만 정작 '셀프 정치개혁'에는 뒷짐을 지고 있다. 과거부터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받아온 정치권은 반복적으로 국회의원 특권 폐지라는 공수표만 날려 왔다. 따라서 '방탄 국회' '식물 국회'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국민의 신뢰를 높이는 데 소극적인 태도가 체내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국회는 개혁 무풍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꾸준히 제기돼 온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폐기, 금고형 이상 시 세비 반납, 출판기념회 통한 정치자금 수수 금지 등 개혁 과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해묵은 숙제다 보니 정치권은 대체로 불체포·면책특권 폐지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지만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새 정부 들어 이재명 대통령과 우원식 국회의장이 개헌론에 불을 지핀 상황이지만 헌법에 명시된 불체포 특권 포기 개헌 논의와 국회의원의 과도한 특권을 제한하는 법 개정에 대한 기대감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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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2023년 6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친 후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식을 하는 모습. /뉴시스 |
◆말로만 불체포 특권 포기…조용한 국회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은 헌법에 명시돼 있다. 헌법 44조 1항은 '국회의원은 현행범인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과거 군부독재 정권 등 권위주의 시대에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일컫는 의원에 대해 부당한 정치적 탄압과 불법적인 체포를 방지하려는 취지다. 한마디로 부당한 권력 행사로부터 의원을 보호하기 위한 특권이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입법부 본연의 직무와 관계없이 부패범죄 등을 저지른 이들이 정당한 사법 절차를 피하는 방패막이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받아왔다.
정치 압박 수단으로도 쓰인 사례도 있다. 국민의힘이 집단으로 2023년 6월 불체포 특권 포기 서약서에 서명했는데, 위례·대장동 특혜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던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를 압박하기 위한 성격이 짙었다. 불체포 특권은 헌법상 권리라는 점에서 개헌을 통해서만 변경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도, 김웅 전 의원이 서약하지 않았던 이유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국회법을 개정하면 불체포 특권을 일부 제한할 수 있었다고 판단했지만, 민주당이 정치 공세라며 미온적 태도를 보인 점 등의 이유로 실현되지 않았다.
시민단체 국민주도상생개헌행동 이두영 공동대표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국회의원이 되기만 하면 기득권 세력이 된다"라며 "국회에 입성한 이후 특권을 내려놓는 것을 회피하고 결국은 자신과 자기가 속한 정당의 이익과 기득권 유지·강화를 위한 '지대 추구' 정치에 빠져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은 주권자이자 헌법개정 권력자이므로 개헌의 주체는 당연히 국민이라는 점에서 시급한 '국민발안제' 개헌이 필요하고, 의원의 공약 이행을 촉진하기 위해서라도 실효적인 국민소환제를 도입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민소환제는 이 대통령의 공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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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달 17일 국회에서 열린 제77주년 제헌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는 모습. 우 의장은 경축사에서 "전면적 개헌보다 단계적이고 연속적인 개헌으로 국회와 정부, 국민이 모두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최소 수준의 개헌'으로 첫발을 떼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배정한 기자 |
개헌 논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데도 국회는 아직 조용하다. 다만 우 의장은 지난달 17일 제헌절 경축사에서 올 하반기쯤 헌법개정특위(개헌특위)를 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설령 개헌특위가 구성되더라도 불체포 특권 폐기안 뒷순위로 밀릴 공산이 크다. 당권 유력 주자로 꼽히는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내란 척결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6일 페이스북에 "협치보다 내란척결이 먼저"라는 글을 올렸다. 민주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저는 (특권 포기에 관해) 일체 논의해 본 게 없어 전혀 모른다"라고 했다.
국민의힘 당권주자인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이재명 셀프 면죄 저지 투쟁에 나서겠다"라고 공약했다. 지난 대선 공약이었던 불체포·면책특권 폐지 공약은 빠졌다. 국민의힘 개헌특위가 지난 4월 불체포 특권 폐지와 국민입법제, 국회의원 소환제 도입을 국회 개혁안으로 제시한 이후 별도 논의는 미진한 상황이다. 또, 최근 3대 특검이 자당 의원들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고민지점이다. 때문에 여야가 특권 폐지에 합의할 가능성이 작아 내년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다만 일각에선 불체포 특권은 법치주의와 삼권분립이라는 헌법 기본이념 원칙에 따라 아주 제한적으로 행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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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된 의원에 대한 세비 지급을 막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 폐기 등의 이유로 매번 무산됐다. /배정한 기자 |
◆무임금 세비 지출·정치자금 수수 관행 근절 요원
위법행위를 저질러 구속 등으로 의정활동을 할 수 없는 의원에게도 세비가 지급되는 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도 과거서부터 있었다. 지나친 특권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민주당 일부 의원이 이른바 돈봉투 살포 사건에 연루돼 구속된 상태에서도 세비를 받아 논란이 일었다. 국회의원 월평균 세비는 약 1300만원이다. 일반수당과 관리업무수당, 정액급식비, 입법활동비 등 수당과 경비를 포함한 액수다. 연간총액은 1억5700만원이다. 이를 단순 계산했을 때 의원 298명에 대한 1년 세비총액은 약 467억8600만원이다.
불체포 특권 폐기와 마찬가지로 2000년대서부터 꾸준히 구속된 의원에 대한 세비 지급을 막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 폐기 등의 이유로 매번 무산됐다. 형사재판이나 공직선거법 위반의 경우 의원직 상실의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의원의 신분이 유지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의 필요성에는 정치권이 공감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탓도 있다. 대선과 총선 등 선거 과정에서 금고 이상 선고받을 때 형사재판 기간의 세비를 반납하겠다는 공약은 공수표였던 셈이다. 입법부 스스로가 국민의 신뢰를 깎은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2대 국회 들어 의원이 구속 또는 공소 제기 후 구금되면 해당 기간 세비를 지급하지 않는 내용의 법안과 금고형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지급된 수당을 환수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안이 5건 발의돼 있다. 운영위는 지난해 10월 구금된 기간 세비 지급을 중지하고, 무죄 확정판결 시 소급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대안을 마련했다. 그해 11월 본회의 직전 관문인 국회 법자세법위원회에 대안이 넘겨졌지만 9개월이 넘도록 계류 중이다. 정호진 사회민주당 전 대표는 "인신이 구속돼 의정활동을 하지 못하는데 세비가 지출되는 건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다"라며 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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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명목으로 후원금을 챙기는 정계의 오랜 관행을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더팩트 DB |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를 열어 정치자금을 받는 관행도 근절해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최근만 해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인사청문회에서 과거 두 차례 출판기념회를 통해 마련한 수입을 두고 야당의 공세를 받았다. 김 총리는 당시 출판기념회를 양성화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에 대해 공감했다. 이뿐 아니라 지난달 충남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큰 수해 피해가 발생한 와중에 천안시의장이 출판기념회를 강행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사실상 책을 명목으로 후원금을 챙기는 정계의 오랜 관행이 반복되는 것이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억대 후원금을 챙길 수 있는 행사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의원은 연간 1억5000만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까지 후원금을 모집할 수 있다. 주로 총선이나 지선을 앞두고 출판기념회가 성행하는 이유다. 후원금과 지지세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게 현실이다. 더군다나 의원이 자발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한 출판기념회 모금 한도나 내역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정치 후원금과 달리 출판기념회는 경조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깜깜이 정치자금'으로 변질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9대 국회 이후 출판기념회를 통한 불법정치자금 수수를 제한하는 법안의 발이됐지만 번번이 임기 만료 폐기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국회에서도 출판기념회를 통한 불법적인 정치자금 모금을 제한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출판물 판매 수입을 정치자금에 포함하고 출판기념회 개최 시 중앙선관위 신고 의무를 부여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안도 발의됐다. 이러한 법안들이 이번 국회에서 통과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회의적인 시각이 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그동안 입법으로 통제하려던 시도가 무위에 그친 건 여야가 따로 없기 때문"이라며 뼈 있는 말을 남겼다.
shincombi@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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