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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산에서, 건설현장서 숨진 이주노동자들…"사업장 변경 규제 풀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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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폭염 속 잇달아 사망
지게차에 묶이고 무차별 폭행도
"사업장 변경 규제 철폐 요구"


지난달 24일 이주노동자가 작업 중 쓰러져 숨진 경북 포항시 한 야산의 제초 현장. 근로자 휴게소(왼쪽)라고 적힌 그늘막이 허술하게 설치되어 있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잡초가 무성한 야외에서 일했던 이주노동자 체온은 39.6도까지 올랐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제공

지난달 24일 이주노동자가 작업 중 쓰러져 숨진 경북 포항시 한 야산의 제초 현장. 근로자 휴게소(왼쪽)라고 적힌 그늘막이 허술하게 설치되어 있지만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잡초가 무성한 야외에서 일했던 이주노동자 체온은 39.6도까지 올랐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제공


한국에 돈을 벌러 들어온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잇달아 사망하거나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자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일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경북 포항시 한 야산에서 네팔 국적 이주노동자 A(51)씨가 사망했다. 6년 전 한국에 들어온 그의 주거지는 경남 진주였지만 제초 작업을 위해 사고가 발생하기 12일 전 포항으로 이동했다. 사고 당일 작업은 오전 6시부터 11시까지 계획됐다.

현장은 허술한 그늘막 정도가 설치된 정도로 온열질환 대책이 미흡했다. A씨는 결국 작업 종료를 얼마 앞두지 않은 오전 10시 30분쯤 "어지럽다"며 두통을 호소한 뒤 쓰러졌다. 동료들은 A씨 몸에 물을 부은 뒤 약 20m를 엎고 산을 내려와 구급대원을 만났다. 구급대원들이 재차 A씨 몸에 얼음물을 쏟아부은 뒤 헬기로 병원에 이송했지만 오후 4시 A씨는 사망했다. 소방당국은 A씨 체온이 39.6도까지 올랐다고 전했다. 온열질환에 따른 사망으로 추정됐다.

같은 달 7일 오후 5시쯤에는 경북 구미시 한 아파트 공사장에서 베트남 국적 이주노동자 B(23)씨가 숨졌다. 사고 당일 공사현장에 첫 출근한 그는 폭염 속에서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했고 작업 막바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나간 뒤 건물 지하 1층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당시 B씨 체온은 40.2도. 중추신경계 이상을 가져올 수 있는 높은 온도다.

전남 나주 한 벽돌 생산 공장에서 한국 노동자들이 스리랑카 국적 이주노동자를 화물에 결박한 채 지게차로 들어 올리는 모습. 연합뉴스

전남 나주 한 벽돌 생산 공장에서 한국 노동자들이 스리랑카 국적 이주노동자를 화물에 결박한 채 지게차로 들어 올리는 모습. 연합뉴스


이주노동자들이 직장 내에서 괴롭힘을 당한 사례도 반복되고 있다. 전남 나주 한 벽돌 생산 공장에서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스리랑카 국적 이주노동자를 지게차에 결박해 들어올리며 조롱해 공분을 샀다. 이 외에도 지난 2월 전남 영암 돼지농장에서 사업주의 폭행에 시달리던 네팔 국적 이주노동자가 사망했고 5월에는 베트남 국적 여성 이주노동자가 관리자에게 무차별 폭행당한 사건이 있었다. 한국어에 서투르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구제 신청을 할 방법을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의 취약한 노동환경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들이다.

노동계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고용허가제(E-9 비자), 계절근로(E-8), 전문·기능인력(E-7), 선원취업(E-10) 등 대부분 이주노동자 고용제도에 적용되고 있는 사업장 변경 규제를 없애달라는 요구다.


예를 들어 현행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 고용을 희망하는 국내 사업장과 이주노동자를 일대일로 연결해준다. 이주노동자는 사전에 허가받은 사업장에서만 일할 수 있다. 부당 대우 등을 이유로 제한적으로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지만 피해를 직접 입증해야 하는데다, 다시 취업하지 못하면 강제출국해야 하는 위험이 있다. 이에 노동계는 "정해진 직장에만 신분이 매여 있다 보니 위험한 작업환경에 놓이거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도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처럼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 사업장 변경을 완전 자율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고용 1년 이후 자율화 등 절충점도 고민해볼 수 있다.

고용허가제 최초 고용기간을 5년으로 늘리자는 제안도 있다. 현행 제도는 통상 3년의 최초 고용기간이 주어진 뒤 사업주 결정에 따라 추가 연장이 가능하다. 고용 기간을 5년으로 늘릴 경우 이주노동자들이 해고를 걱정해 부당한 대우를 참아야 하는 일이 줄어들 것이란 주장이다. 전국이주인권노동시민단체는 "이주노동자 보호를 위해 정부가 형식적 의견수렴만 해서는 안 된다"며 "노정협의체를 구성해 적극적인 제도 변화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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