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해방 전, 옛 음악이 얼마나 힙한지 아시나요” [.txt]

한겨레
원문보기
‘동아시아팝, 소실의 자취’를 펴낸 음악평론가 신현준, 이준희씨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저서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동아시아팝, 소실의 자취’를 펴낸 음악평론가 신현준, 이준희씨가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저서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1945년 이전의 축음기 음반 공동연구
‘아시아 팝’은 경계 넘나든 교류의 산물
“팝은 영미의 것”이라는 편견을 넘어



“음악으로 본 역사입니다. 정치는 이념의 이항 대립, 경제는 발전 논리가 중심이라면 음악에서는 인간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한된 조건에서 부족한 자원을 갖고 옛사람들이 음악으로 치열하게 놀았다는 거죠. 악기도, 공부할 책도 부족한 그때 음악인들은 노래를 만들고 대중은 재미를 위해 투쟁했다는 것, 의미를 위한 투쟁도 절박했지만 재미를 위한 투쟁도 그만큼, 또는 그보다 더 절박했다는 얘기죠.” (신현준 성공회대학교 사회융합학부 교수)



1910년대 초부터 1945년까지 동아시아 대중음악 교류는 지금 못잖게 국제적이고 활발했다. 당시 대중가요를 일컬어 일본과 조선은 ‘유행가’, 중국·홍콩은 ‘시대곡’이라고 불렀다. 다수의 음악인들이 조선, 일본, 중국, 대만을 오가며 경계를 넘어 가로질렀다. 낮에는 불편하게 상충하던 각국의 사람들이 밤에는 ‘같은 음악인’으로 화음을 쌓아 올리며 교류했다.



최근 ‘동아시아 팝, 소실의 자취’(아시아의 미 시리즈 24, 서해문집)를 펴낸 공동 저자 신현준·이준희를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옛 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의기투합해 1945년 이전 에스피 음반(SP·축음기 음반)에 기록된 소리를 공동연구했다. 그 결과 1914년부터 1945년까지 탄생하고 잊힌 음악의 자취를 발굴하면서 동아시아 사람들의 감각과 시대적 풍경을 생생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카츄샤의 노래’의 간략한 악보. 녹음된 소리 전체에 악기 소리, 즉 기악이 없다. 동아시아 최초의 대중음악 레코드에는 가수의 노래, 즉 성악 말고는 다른 소리가 없다. 작곡가는 나카야마 신페이. 서해문집 제공

‘카츄샤의 노래’의 간략한 악보. 녹음된 소리 전체에 악기 소리, 즉 기악이 없다. 동아시아 최초의 대중음악 레코드에는 가수의 노래, 즉 성악 말고는 다른 소리가 없다. 작곡가는 나카야마 신페이. 서해문집 제공


“‘일제강점기 힘들었던 시대, 나라 잃은 백성들을 위로했던 음악’이라고 표현하는 서사에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 시대에 그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이 책은 당시 사람들이 첨단의 유행을 어떻게 추구했는가를 살폈습니다. ‘골동’을 추구하는 책으로 읽히기를 원하지는 않아요.” (신현준)



잊힌 자취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일본과 중국의 인적 네트워크를 동원하고 당시 음반과 신문, 광고 자료 등을 닥치는 대로 찾아 읽으면서 문헌 자료와 레코딩 등을 철저하게 확인했다. 특히 중국은 문화혁명기에 사라졌다고 알려진 기록들이 2000년대 이후 쏟아지면서 지금은 어마어마한 ‘옛 음악 시장’이 형성됐고 그 덕에 옛날 음반과 인터넷 자료가 빛을 보게 되었다.



옛가요사랑모임 ‘유정천리’의 회장으로 오랜 기간 집요하게 옛 가요 기록을 발굴하고 수집해온 이준희는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40여년간 옛노래에 몰두해온 흔치 않은 연구자다. 대학 시절 동양사학을 전공한 그는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 인명사전’ 대중음악 분야 필진으로 참여했고 최근엔 연구소가 광복 80돌을 맞아 복각한 ‘해방의 노래’(전 37곡) 음반을 기획·제작했다. 신현준은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중음악 평론가 겸 연구자로 활동하면서 ‘한국 팝의 고고학’(전 4권) 등으로 엘피(LP) 시대를 꾸준히 분석해 왔다.



40여년 동안 옛 가요에 몰두하며 집요하게 기록하고 자료를 수집해온 이준희 연구자는 “작은 흔적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이 자취를 탐구하다 보면 1910~40년대 국경을 넘나들며 동아시아 음악인들이 서로 어울려 작업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40여년 동안 옛 가요에 몰두하며 집요하게 기록하고 자료를 수집해온 이준희 연구자는 “작은 흔적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이 자취를 탐구하다 보면 1910~40년대 국경을 넘나들며 동아시아 음악인들이 서로 어울려 작업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저희 책 제목을 ‘소실의 자취’라고 했듯이 많은 기록이 사라졌지만 아주 조그만 것이라도 ‘자취’는 남아 있어요. 그걸 추적하다 보면 당시 국경을 넘나들며 음악인들이 어울려서 작업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도와 권력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규정할 수 없잖아요.” (이준희)



저자들은 그 시기의 동아시아 음악을 단순히 친일이나 저항의 프레임으로만 파악하지 않는다. 대중음악을 음악의 하위 장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지식인들은 좌·우파를 막론하고 유행가를 다 싫어했는데 이는 조선, 중국, 일본 모두 마찬가지였다”고 이준희는 말했다.



후세들이 기록한 팩트도 뒤죽박죽이다. 이를테면 1914년 일본에서 레코드로 발매되어 동아시아 최초의 대중가요로 인정받는 ‘카츄샤의 노래’는 2년 뒤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1926년 레코드 발매된 윤심덕의 ‘사의 찬미’가 한국의 첫 대중가요라고 알려져 있지만, 이보다 10년은 앞선 것이다. 동아시아인들은 ‘제국’에 반감을 품으면서도 일본 기술력으로 기록된 음악을 공유하고 함께 발전시켰다.



신현준은 “그 시절 음악가들은 생계를 위해 만주, 일본, 중국, 대만을 오가는 ‘서벌턴 코스모폴리탄’이었다”라고 말했다. 일본 작곡가 핫토리 료이치는 제국 점령군 보도부 촉탁으로 상하이에 갔지만 낮에는 제국의 명령에 복종하고 밤에는 중국 음악인들과 어울렸다. 가수 리샹란이 녹음한 ‘야래향’은 중국 작곡가 리진광의 작품이었는데, 핫토리는 ‘야래향 판타지아’를 만들어 상하이에서 공연했다. 서로 음악으로 교류하며 더욱 풍성한 문화를 만들어간 셈이다.



“1945년 8월15일에 리진광이 핫토리한테 한 말이 있어요. ‘야, 우리 이제 정말로 자유롭게 음악할 수 있게 되었다’고요. 그런데 끝내 둘은 다시 만날 수 없었어요. 이것 또한 소실의 자취인 것이죠.” (신현준)



약 반년의 시차를 두고 일본어와 조선어로 발표된 ‘술은 눈물일까 한숨이랄까’. 원곡은 1931년 일본에서 고가 마사오가 쓰고 후지야마 이치로가 노래했다. 당시 일본 유행가, 후대에 엔카라고 불릴 장르를 정의했다고 할 만큼 중요한 작품이다. 서해문집 제공

약 반년의 시차를 두고 일본어와 조선어로 발표된 ‘술은 눈물일까 한숨이랄까’. 원곡은 1931년 일본에서 고가 마사오가 쓰고 후지야마 이치로가 노래했다. 당시 일본 유행가, 후대에 엔카라고 불릴 장르를 정의했다고 할 만큼 중요한 작품이다. 서해문집 제공


이 시기, 동아시아 전역을 누비며 활동한 한국 음악가들의 흔적 찾기는 더 힘들었다. 핫토리 료이치의 경우 공식 기록이 꽤 남아 있지만, 케이비에스(KBS) 교향악단 창립 상임지휘자를 지낸 임원식과 한국 재즈 1세대인 그의 형제들은 같은 시기 하얼빈에서 음악을 배우고 대륙에서 다른 나라 음악인들과 활발히 교류했지만 당시 활동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이 많지 않다. 하얼빈은 러시아·중국 문화가 뒤섞인 음악 도시였고, 클래식·재즈 등 많은 음악이 탄생하고 발전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분단, 6·25 전쟁과 냉전을 거치며 이런 문화접변의 기록조차 자취를 감췄다. 한국의 음악인들은 젊은 시절 자신의 활동에 대해 입을 닫았다. 자칫하면 ‘빨갱이’ ‘협력자’로 찍힐 판이었기 때문이다.



“침략자이면서 동시에 이웃이었던 일본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도, 복잡한 맥락도 있었겠죠. 조선의 음악인들이 만주에서 활동했던 이야기가 잊힌 것도 당연합니다. 한반도는 분단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 탓에 일본, 러시아, 중국 등 서로 국경을 넘어 교류하던 서사들도 그냥 사라져 버린 거예요. 서글프기도 하고. 이게 뭐라고 이런 얘기도 못 하고 살았나 싶어요.” (이준희)



신현준은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중음악 평론가 겸 연구자로 활동하면서 ‘한국 팝의 고고학’(전 4권) 등으로 엘피(LP) 시대를 꾸준히 분석해왔다. 그는 “우리는 이 책으로 대중음악 및 팝 음악은 영미의 것이며 동아시아는 아류라는 시각과 싸웠다”고 말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신현준은 1990년대 이후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중음악 평론가 겸 연구자로 활동하면서 ‘한국 팝의 고고학’(전 4권) 등으로 엘피(LP) 시대를 꾸준히 분석해왔다. 그는 “우리는 이 책으로 대중음악 및 팝 음악은 영미의 것이며 동아시아는 아류라는 시각과 싸웠다”고 말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저자들이 이번 책에서 ‘아팝’(亞POP)이라고 일컫는 ‘동아시아의 팝’ 음악은 일본에서 출발해 식민지로 번져나간 것이 아니라 서로 상호 교류, 교차, 접속하면서 만들어진 물결이었다. 조선의 신문에 실린 라디오 편성표까지 뒤지면서 연구한 두 사람은 대만 가수의 노랫소리가 실시간으로 경성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는 점을 발견했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1960년대부터 90년대 시기에 정도가 덜했을 뿐, 아시아 나라들 사이에서 음악 교류는 한 국가의 단위를 넘어서 꾸준히 흐르고 만나고 있었다”고 두 사람은 말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세 가지 시각과 싸우려고 했습니다. 하나는 대중음악 및 팝 음악은 영미의 것이며 동아시아는 아류라는 시각과 싸운 것이고요. 두 번째는 일국의 관점에서만 대중음악의 역사를 서술하는 기존 관념과 싸운 것이고요. 세 번째는 노스탤지어와 싸웠어요. 우리는 노스탤지어에 올라타서 노스탤지어를 넘어서려 한 것이죠.” (신현준)



‘동아시아팝, 소실의 자취’를 펴낸 공저자 신현준(왼쪽), 이준희씨.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저서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동아시아팝, 소실의 자취’를 펴낸 공저자 신현준(왼쪽), 이준희씨.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저서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평소 ‘고전주의자’로서 옛음악을 즐겨 듣고 케이팝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이준희는 앞으로도 꾸준히 옛노래 발굴과 복원을 이어갈 예정이다. ‘모더니스트’를 자처하는 신현준은 이번 작업을 시작으로 1960~2000년대 동아시아 팝에 대한 4권의 책을 은퇴 전 출간할 예정이라고 했다.



두 사람은 8월27일 저녁 6시 서울 용산구 이태원 뮤직펍 펫사운즈에서 북토크와 청음회 행사를 연다. ‘힙한’ 그 시절 유행 음악이 남긴 자취를 만날 수 있는 귀한 기회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윤석열 사형 구형
    윤석열 사형 구형
  2. 2전광훈 서부지법 난동
    전광훈 서부지법 난동
  3. 3최강록 흑백요리사2 우승
    최강록 흑백요리사2 우승
  4. 4한일 정상 드럼
    한일 정상 드럼
  5. 5임시완 과부하
    임시완 과부하

한겨레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