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배급사 제공 |
“겨우 18년을 걷고, 17년을 굴렀다. 나는 이제 꿈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있다.”
은진(김시은)은 사고로 척수장애를 입었다. 휠체어에 앉아 바라보는 세계는 ‘은진의 규격’을 벗어난 것들로 가득하다. 많은 일들이 그의 눈높이보다 높은 곳에서 벌어지고, 그가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다가왔다가 성급히 멀어진다.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 은진에게는 하나하나 도전이 된다.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 위해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 건물에 올라야 하는 일처럼.
은진의 곁에는 호선(설정환)이 있다. 그는 세상의 규격과 은진의 규격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는 동반자다. 두 사람은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함께 노력해왔다. 덕분에 둘만의 노하우도 제법 쌓였다. 하지만 인생은 늘 예기치 않은 사건들을 숨겨두는 법.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던 두 사람 앞에, 은진의 임신이라는 뜻밖의 소식이 찾아온다. ‘이 세상에 우리 둘’이었던 그들 사이에 만만치 않은 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성지혜 감독의 ‘우리 둘 사이에’는 은진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출산에 이르기까지 34주간의 시간을 따라간다. 그 시간 동안 은진은 은진대로, 호선은 호선대로,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고독한 분투를 이어간다.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든 것이 비단 ‘쪼꼬’라는 이름의 태아만이 아니라, 그와 함께 따라온 온갖 난관들이기 때문이다.
은진을 보면서 나는 문득 ‘미래’를 떠올렸다. 남궁선 감독의 영화 ‘십개월의 미래’(2021)의 주인공인 미래(최성은)는 규모도 작고 체계도 없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다. 모든 걸 쏟아부었던 프로젝트의 결실이 코앞에 다가온 순간, 미래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노동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회사에서 출산과 육아는 물론이거니와 임신조차도 곧 ‘업무 처리의 실패’를 의미한다.
낳을지 말지 미래 스스로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남자친구는 “내가 책임지겠다!”며 반드시 낳아야 한다고 법석을 떨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만난 산부인과 의사들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라는 식의 주제넘은 충고를 하거나, 과도한 임신중지 비용을 요구한다. ‘십개월의 미래’는 여성을 사람이기 전에 ‘아기 주머니’로 보면서도, 그조차도 제대로 된 권리와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전경에 배치한다. 그리고 여성이 임신을 어떻게 재난으로 경험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미래가 태아에게 붙인 태명은 ‘카오스’, 즉 혼돈이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미래의 경험은 은진에겐 허락되지 않는 혼란이다. 은진과 미래 모두 “낳을까 말까”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주위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미래의 주변에서는 “당연히 낳아야지” 한다면, 은진의 주변에서는 “낳겠다고?”라는 반문이 돌아오는 것이다.
은진에게 임신 사실을 알려준 산부인과 의사 역시 그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임신중지를 할 것이라 단정 짓는다. “선생님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세요?” 불쾌해하는 은진에게 의사는 “오해하지 말라”며 “선택이 가능하다는 걸 알려드리는 것뿐”이라고 응수한다.
그러나 누구에겐 임신중지가 윤리적 비난과 처벌의 대상이 되고, 또 누구에겐 오히려 권장되거나 심지어 강요되는 사회에서 ‘선택’이란 말은 그저 허울 좋은 포장지일 뿐이다. 미래에게 ‘선택’이 오롯이 주어지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은진에게도 그 ‘선택’은 그의 자율적인 의지에 달린 일이 아니다. 사회에 기여하는 인구와 그렇지 않은 인구를 가름으로써 생명의 가치에 차등을 두는 ‘우생 사회’가 그 선택의 방향타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적 강압 속에서 개인이 자신이 갈 길을 결정하는 건 그렇게 쉽지 않다.
우생 사회는 여전히 ‘지식’이나 ‘과학’, ‘합리적 판단’ 등 그럴듯한 이름 뒤에 숨어 영향력을 행사하는 우생학적 사고에 기댄다. 그런 사회에선 개인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임산부라면 누구나 겪는 일 앞에서도 은진이 ‘내가 혹시 장애인이라서?’라는 자책에 시달리는 이유다. 그리고 이 불안과 공포는 다정한 남편이나 아낌없이 돌봐주었던 어머니, 그 누구도 대신 해결해줄 수 없는 마음의 지옥을 열어놓는다.
갑자기 열이 올라 입원한 병원에서 만난 임산부 지후(오지후)는 그런 은진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친구다. 다정하면서도 어딘가 신비로운 지후는 은진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고, 은진은 그런 지후에게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 은진의 의존은 고독과 불안이 반영된 증상이라면 증상이지만, 동시에 이 외로운 카오스를 헤쳐나가는 그만의 지혜이기도 하다. 지후는 은진이 경험하는 곤란 속에서도 종종 찾아오는 빛나는 순간 그 자체다. 중요한 건 은진의 취약함과 그 빛나는 순간이 얽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둘 사이에’는 은진이 경험하는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임신과 출산을 그리면서 우생 사회가 그려놓은 규격 바깥에서 우리를 향해 생명이 다가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낙태죄 대체 입법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성적 권리와 재생산 권리를 다시 세우고자 할 때 반드시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 중 하나다.
손희정 영화평론가
영화 ‘우리 둘 사이에’ 스틸컷. 배급사 제공 |
손희정 영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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