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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었습니다. 외국인 원투 펀치 코디 폰세와 라이언 와이스, '코리아 몬스터' 류현진의 복귀, 어린 투수들의 기특한 성장에 힘입은 철벽 불펜과 프로야구(KBO리그) 최고 인기 마무리 투수 김서현. 거기에 채은성을 중심으로 문현빈, 리베라토, 노시환 등 타선까지 터졌죠.
매번 ‘꼴찌’ 타이틀을 달던 한화 이글스가 2025년 8월 현재 KBO리그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매 경기 만원 관중에 “행복합니다”라는 말이 진심이 된 시즌인데요.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행복 100%’ 하루하루죠. 그런데 어렵게 되찾은 이 행복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졌는데요. 주인공은 상대 팀도, 심판도 아닌 바로 연고지인 ‘대전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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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에서 간판 추락 사고가 발생했는데요. SSG 랜더스와의 홈경기 도중 1루 4층 복도에 설치된 약 10kg짜리 벽걸이 간판이 아래로 떨어졌죠. 볼트 체결 부위가 이탈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됐습니다. 당시 관중은 1만7000여 명.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창원 NC파크 구조물 추락 사망사고의 기억이 생생한 팬들에겐 아찔한 순간이었죠.
한화 구단은 즉각 시공사인 계룡건설, 대전시와 함께 현장 점검을 시행했습니다. 이튿날인 28일까지 간판 전수조사를 마치고 와이어 보강 작업을 완료했는데요. 이후 대전시가 한화 구단 측에 ‘야구장 시설물 관리 책임을 구단이 맡으라’는 공문을 보냈던 사실이 알려졌죠. 관리 주체를 기존 시에서 구단으로 이관하자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이장우 대전시장은 “야구만 할 거냐. 운영권을 가져갔으면 관리 책임도 가지는 게 맞다”는 논조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대전시 역시 “운영권을 가진 구단이 관리도 맡는 것이 자연스럽다”며 “화장실 고장, 간판 낙하 등 소소한 문제까지 시가 다 책임질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죠.
하지만 한화는 ‘세입자’입니다. 건물을 임대한 입장인 만큼 수리와 정비 같은 구조물 관리는 ‘집주인’인 대전시의 몫인데요. 게다가 이 운영권은 그냥 생긴 게 아닙니다. 신구장 건립 당시 구장 건설비용의 25%인 총 518억6000만 원을 투입해 정당하게 얻었죠. 게다가 이 야구장은 이제 막 개장 5개월을 넘긴 ‘신축’입니다. 아직 하자보수 기간이죠. 해당 기간 중 발생한 구조물 사고는 시공사와 발주처(=대전시)의 책임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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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는 초반 협력을 강조하며 신구장을 ‘시민의 랜드마크’, ‘스포츠 도시 대전의 상징’으로 홍보했습니다. 이장우 시장은 실제로 한화 이글스 모자를 쓰고 회의를 주재하고 퓨처스 올스타전에서는 시구자로 나서며 ‘프로스포츠 특별시’를 몸소 실천했죠. 볼파크 개장식에서 “이곳은 대전의 스포츠 랜드마크이자 시민의 자부심이 될 공간”이라며 자랑에 나서고 유니폼 굿즈 마케팅, 꿈돌이 협업까지 이끌며 구단과의 긴밀한 관계를 부각했는데요. 그러나 책임 전가로 급변했죠.
한화 구단은 공식적으로는 말을 아끼고 있는데요. “시설 보강에 집중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지만 비공식적으로 불만의 기류는 내비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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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고와 처리 과정은 NC파크 사고와 비슷한데요. 올해 3월 NC파크에서 구조물이 추락해 관중이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죠. 창원시는 곧바로 NC 다이노스에 경기장 운영 중단을 통보하고 구단에도 운영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시공과 감리는 창원시와 시공사의 몫이었지만 창원시는 ‘운영 주체’라는 이유로 책임을 구단에 넘겼는데요. 이에 NC는 연고지 이전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강하게 반발했고 전국적인 팬 여론도 시의 조치에 비판적이었죠. 그러자 태도가 바뀌었는데요. 창원시와 경남도는 구단 입장을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한 협의를 시작했습니다.
해외 구단 사례는 어떨까요? 양키스타디움(뉴욕), 트루이스트파크(애틀랜타), 다저스타디움(LA) 모두 구단이 경기 운영을 맡되 구조물 유지보수 및 시설 안전은 공공기관(시·카운티)이 주관합니다. 미국도 공공재산은 공공이 책임진다는 규칙이 분명하죠.
법적으로도 대전시의 논리는 허술합니다.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제14조를 보면 “지자체장은 공유재산의 안전사고 예방에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죠. 야구장이 공유재산이라면 소유자인 대전시가 구조물 안전 관리의 1차 책임자인데요. 하자보수 책임 역시 시공사인 계룡건설과 시가 함께 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대전시는 한화가 구장 사용권(25년), 명명권, 광고권, 주차수익권 등을 가지고 있어 ‘운영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일상 관리(청소, 인력 운영 등)에 한정되는데요. 구조물 사고까지 포괄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팬들 사이에선 “이럴 거면 왜 구장 이름부터 간섭했나”는 말도 나왔는데요. 실제로 대전시는 올 1월 구장 명칭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로 바꾸라고 요구한 바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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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화는 KBO리그 1위를 달리고 있는데요. 31일 기준 59승 3무 37패, 승률 0.615. 1999년 이후 가장 안정적인 시즌이죠. 관중 점유율은 99% 이상으로 전국 9개 구장 중 최고 수준인데요. 볼파크 개장 이후 인근 상권 매출은 46% 증가했고 대전시가 직접 밝힌 경제효과는 498억 원에 달하죠. 그런데 정작 그 구단에 돌아온 건 ‘책임 이양’ 공문이었습니다.
구단은 함부로 말을 못 하고 팬은 뿔이 났는데요. 협업과 연대 대신 내민 책임의 장부. 한화의 대결 상대가 연고지가 돼버린 현재죠. 홍보할 땐 ‘우리’ 책임질 땐 ‘너희’라는 태도가 아닌 지금 필요한 건, 서로에게 ‘책임’을 묻는 게 아니라 ‘역할’을 나누는 일입니다. 1위 팀 구단과 1위 팀 보유 연고지답게 말이죠.
[이투데이/기정아 기자 (kki@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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