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핀테크 스타트업 등 두루 경험… ‘실물’을 다루는 비즈니스 동경이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져
중고와 새 제품 사이에 존재하는 리퍼비시 영역에서 가능성 발견, ‘리퍼연구소’ 플랫폼 론칭
투자 없이 매출 일으키며 지속 성장… 글로벌 진출과 스케일업 위한 투자 유치 추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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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태블릿, 데스크탑 등 고가 전자제품을 중고로 구매할 때 소비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품질이다. 사용해 보기까지 알 수 없는 기능상의 결함, 짧은 수명, 불확실한 A/S 등은 '저렴하지만 불안한 선택'이라는 인식을 굳히게 했다. 이러한 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낸 스타트업이 있다. 리퍼비시 전자제품 전문 마켓플레이스 ‘리퍼연구소’를 운영 중인 도구모음이다.
도구모음은 고관여 전자기기의 중고 유통을 B2C, B2B 전방위로 재정의한 기업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리퍼비시’란 단순 중고를 넘어 상품을 제대로 수리·재정비해 새 상품 수준으로 재판매하는 제품을 의미한다. 영어 'refurbish'에서 유래했으며, 여느 중고품과 달리 전문가 검수를 거쳐 품질이 보장되고 보증 기간도 제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 리퍼연구소를 통해 선보이는 리퍼비시 제품은 엔지니어들이 시스템화한 과정을 거쳐 제품을 재상품화하고, 정품 윈도우 설치, AS 보장, 고객 맞춤형 사은 혜택까지 제공한다. 더구나 리퍼연구소는 개인 간 거래를 중개하는 중고거래 플랫폼과 달리 직접 매입한 제품을 판매해 소비자 신뢰를 확보했다.
이러한 도구모음의 행보는 연평균 15% 이상의 성장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다시 기술 고도화와 제품군 다변화, 해외 진출 등의 시도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테크42는 박경근 도구모음 대표를 만나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상에 기여하는 실물 서비스 꿈꾸며 창업, 위기 있었지만 PMF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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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구모음을 창업하기 전까지 박경근 대표의 이력은 제조·유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공대를 졸업하긴 했다지만 이후 SC제일은행 펀드시스템 개발팀을 시작으로, 한화자산운용·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의 리스크관리팀, 한가람투자자문 상무직을 거치며 금융·투자 업계에서 커리어를 쌓았다. 이후에는 AI 기반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의 공동대표로 합류하며 스타트업 세계에도 발을 들였다. 해당 스타트업은 그가 합류한 이후 1년 만에 연매출 300억원을 달성하며 상장까지 준비하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그 무렵 박 대표의 마음 속에는 또 다른 도전에 대한 욕심이 싹텄다고.
“회사가 커지고 의사결정권자가 많아지는 상황에서 일을 지속하기 보다는 액시트를 선택했어요.그리고는 잠시 쉬면서 다음을 고민했죠. 그때 생각한 게 ‘실물 제품’을 다루는 일이었어요. 오래도록 금융 업계에 있으면서 손에 잡히는 서비스에 대한 갈증이 있기도 했고요(웃음). 그러면서 한편으로 사회적으로 공헌을 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템을 찾았죠.”
그런 박 대표의 눈에 들어온 것은 폐업 자영업자들에 관한 뉴스였다. 당시 연 80만명 정도의 자영업자가 폐업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과정에서 1억원이 넘는 창업비용을 써서 마련한 집기 등은 원래 가격의 10분의 1도 안되는 헐 값에 중고 도매상에 넘어가고, 다시 창업을 준비하는 다른 자영업자에게 비싸게 팔린다는 것이었다. 박 대표는 “이 시장을 플랫폼으로 연결하면 창업자와 폐업자 모두에게 도움 되는 선순환 구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도구모음의 처음을 떠올렸다.
“공유오피스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외주 개발사와 협업해 플랫폼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1년이 걸려 플랫폼을 만들어 놓고 보니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돼 버리더군요.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제 막 시작을 하려는 찰나에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며 올 스톱이 돼 버린 거예요. 플랫폼이 운영 되려면 폐업을 하는 사람과 창업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폐업만 계속 되고 창업이 이뤄지지 않으니 시장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거예요. 그 때 다루던 제품 중 하나가 노트북이었는데, 당시 우연찮게 거래처에서 ‘노트북을 팔아보라’는 제안을 듣게 됐어요. 그때 첫 멤버로 함께한 이성희 부대표(코파운더)가 한 번 팔아보겠다고 나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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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시도는 초기 도구모음의 사업 방향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중고 노트북에 대한 시장 수요를 확인한 이후 도구모음은 처음 계획했던 C2C(고객간 거래) 플랫폼 대신 기업형 B2C 전략과 함께 노트북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중고’라는 단어에 씌워진 불신을 해소하고, 신뢰와 품질, 서비스를 제공하는 ‘리퍼비시 제품화’를 시도한 것이다. 소비자간 거래를 중개하는 방식 대신, 회사가 제품을 사들여 꼼꼼히 점검하고 수리하고, 보증까지 붙여 판매하는 구조였다. 상황은 급변했다. 스타트업 관점에서 보자면 PMF(제품의 시작적합도)가 확인된 순간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중고 시장에서 기업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많지 않았어요. 대개는 영세 자영업 수준에서 이어져왔죠. 기업화되려면 세금 등의 거래가 투명해야 하는데, 소규모 자영업 수준에서는 그렇게 할 경우 마진을 남기기 어렵기 때문이었어요. 그런 페인포인트를 확인한 후 저희는 리퍼연구소 플랫폼을 통해 리퍼비시 제품을 선보이고 고객들이 원하는 안정감과 신뢰를 제공하며 상황을 바꿔갔어요. 그때부터 매월, 매분기, 매년 지속적인 성장이 이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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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을 발견한 이후 도구모음이 집중한 것은 제품 품질의 차별화였다. 중고 제품에 대한 소비자 기대치가 제각각인 상황에서 리퍼연구소를 통해 선보이는 리퍼비시 제품은 ‘이 정도면 되겠지’가 아니라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기준을 만들었다고. 그러한 기준은 자동화 시스템 등으로 구체화되었다.
그 과정을 떠올리던 박 대표는 "경험이 없던 분야라 더 철저하게 했던 것 같다”며 “고객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쌓아온 것들이 오히려 차별화가 됐다”고 돌이켰다. 결국 그런 노력을 통해 리퍼연구소는 단순한 중고 유통 플랫폼이 아닌, 소비자가 신뢰를 바탕으로 찾는 '리퍼비시 전문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노트북 집중 전략으로 성장, B2C 넘어 B2B로 확장
기존 C2C 플랫폼이 거래 중개에 집중했다면, 도구모음은 리퍼연구소라는 브랜드를 앞세워 ‘기업이 직접 보증하는 중고 전자제품’이라는 포지션을 만들었다. 초기 당근마켓, 중고나라 등에서 직접 매입하며 제품을 확보하던 방식은 점차 중도매, 렌탈사 등으로 소싱처를 확장하며 규모를 키웠다. 물론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시스템화 전인 초기에는 제품 점검 과정도 만만하지 않았다고. 박 대표는 “시행착오 투성이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처음엔 저희도 잘 몰라 직접 뜯어보고 공부하고, 실제 써보면서 테스트했죠. 또 리퍼연구소가 알려지기 전에는 직접 중고 거래 플랫폼을 통해 직거래를 하며 판매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18가지 하드웨어 점검, 6단계 외관 정비, SSD·배터리 교체 같은 표준화된 프로세스를 만들었어요. 이 과정에서 고객 불만도 줄었고, 신뢰도는 더 높아졌죠.”
도구모음의 성장은 빠르게 이뤄졌다. 첫 해 700~800만원 수준이던 매출은 2년 차에 3억, 이후 20억, 40억, 65억원까지 증가했다. 그런 도구모음이 다시금 사업 확장을 시도한 것은 지난 2023년 무렵부터다. 당시 전반적인 소비심리 위축과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며 중고 유통시장까지 영향을 받는 상황이었다. 리퍼비시 특성 상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이용자들이 많아지지만, 경기가 너무 안 좋을 경우에는 그 마저도 지갑을 닫았다고.
이 시기를 기점으로 도구모음은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대기업, 공공기관 등에서 사용하던 노트북 자산의 일괄 매입을 시도한 것이다. 이는 기업 및 기관 고객들에게 기존 처분가보다 높은 가격 제시하며 B2B 모델로 확장됐다. 그렇게 매입된 전자기기들은 다시 도구모음의 시스템을 거쳐 리퍼비시 제품으로 변신해 일반 고객들에게 제공되고 있다.
“기존 시장가보다 3배 이상의 가격으로 매입을 하니 기업과 기관 고객들이 먼저 연락이 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도 중간 유통사를 거치지 않으니 저희 입장에서는 기존 매입가보다 20% 싸게 사는 구조가 돼 영업이익률이 개선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문제는 대규모 매입시 현금 유동성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수백 대를 거래하니 대금이 몇 억을 넘어가는 건 금방이더군요. 그래서 매입 자금 때문에 제품 인수를 미루거나 못하는 경우도 생겼고요. 그래서 이제는 외부 투자 유치를 위한 IR도 준비 중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이 단순한 사업 논리를 넘어 ESG 가치 실현으로도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도구모음은 4년간 약 2만9000대의 노트북을 재유통시키며 총 8038톤의 CO2, 3만2146톤의 자원, 28만6299리터의 물을 절감했다. 이는 ‘제품 하나의 재사용이 곧 지구를 위한 선택’이라는 소비자 인식 전환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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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박 대표는 그간 외부 투자 유치를 시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굳이 투자받지 않아도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최근 달라진 상황을 설명했다.
“창업 초기에는 액시트 이후여서 자본금도 있었고, 정부 지원사업을 통해 추가 자금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흑자 기반의 매출 성장세를 만들었고 이제는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했어요.”
리퍼비시 제품 다변화와 해외 시장 확장 역시 신규 투자 유치가 필요한 이유가 되고 있다. 도구모음은 현재 노트북에서 태블릿·PC·스마트폰 등으로 점차 제품군을 다양화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리퍼비시 시장이 활성화 돼 있는 태국 등 동남아 시장으로의 수출도 논의되고 있다.
“동남아 시장이 가장 유망하다고 봐요. 국내 고객들은 LG·삼성을 선호하지만, 해외는 HP나 ASUS, 델이 강세죠. 맥북도 수요가 많고요. 제품군 다양화는 계속 진행 중입니다. 또 현재 태국에서 1000대 정도 저희 리퍼비시 노트북 제품 공급 논의가 진행되고 있죠. 장기적으로는 리퍼비시 시장이 활성화 된 일본처럼 오프라인 매장도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아직은 마케팅을 온라인에 집중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역량이 확보되면 오프라인에서도 기회를 모색해 보려 합니다.”
AI, ERP 도입으로 지속 성장 동력 확보 중
“도구모음은 기술 회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기술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죠. 그래서 저희는 항상 기술을 ‘사람을 돕기 위한 도구’로 봅니다. 핵심은 결국 사람이예요.”
박경근 대표의 말처럼 도구모음은 사람 중심의 조직이다. 창업 초기부터 함께한 핵심 인력 대부분이 6년 넘게 팀장급으로 남아 있고, 경영진은 물론 실무자까지도 ‘이 회사에서 함께 성장하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박 대표는 “직원들이 도구모음이라는 ‘도구’를 잘 활용해서 삶을 바꾸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며 말을 이어갔다.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은 직원들의 삶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도구로서 만들고 싶기 때문이예요. 물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것은 적절한 보상이라 할 수 있겠죠.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스톡옵션 등 직원들과 성과를 공유하는 방법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직원들에게 안정감을 주며 성장을 이어가고자 해요. 고객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 나가면서 함께 성장하는 거죠. 물론 모든 직원들이 회사 생각을 다 이해하긴 어려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적어도 회사가 당신의 성장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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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서비스, 더 나은 업무 환경을 위해 도구모음이 진행하고 있는 작업이 기술 고도화와 자동화다. 특히 제품 하나하나가 모두 상태와 사양이 제각각인 리퍼비시 제품의 특성상, 자동화와 기술 고도화는 필수 과제다. 대표적인 것이 ‘하드웨어 자동점검 시스템’이다. 이를 통해 도구모음은 초기 수작업으로 진행했던 제품 상태 체크를 USB를 꽂는 것만으로 해결했다. 점검 결과는 자동으로 시리얼과 연결된 DB에 반영된다. 도구모음은 다시 ‘스펙 이미지 자동 생성 기술’을 통해 개별 제품의 사양과 상세페이지도 자동으로 생성되는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현재는 외관 상태를 AI가 판별하는 비전 기반 시스템까지 개발 중이다.
이 같은 기술들은 정부의 AI 바우처, 혁신 바우처, 데이터 바우처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을 통해 진행하며 검증을 거치고 있다. 도구모음의 새로운 시도와 도전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인터뷰 말미, 박 대표는 “그저 좋은 서비스를 넘어서,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털어놨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중고 제품이 나쁘지 않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믿을 데가 없다고 느끼는 것이 문제예요. 신뢰할 수 있는 접점이 약한 거죠. 신뢰를 담보하지 못하는 C2C 채널 위주로 시장이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저희는 제대로 된 리퍼비시 브랜드, 사용하고 나서 만족할 수 있는 경험을 주는 브랜드가 되고 싶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시장만 형성된다면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거든요.”
황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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