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의 한 병원 주차장에서 20대 여성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하려 한 혐의(살인미수)로 경찰에 체포된 ㄱ씨가 30일 울산지방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 불벌죄’가 사라진 지 2년이 지났지만, 수사기관은 가해자를 제재할 때 여전히 ‘피해자의 의사’를 따져 묻는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의 전문성 부족과 제도의 허점이 책임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울산 스토킹 범죄’ 피해자가 처음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것은 사건 발생 25일 전이다. 지난 3일 저녁 바닷가에서 ㄱ(33)씨는 이별을 통보한 피해자 ㄴ씨의 머리채를 잡고, 차량 열쇠를 빼앗아 바다에 던져버렸다. ㄴ씨는 다급하게 길거리에 있던 비상벨로 경찰에 신고했다. 처벌 의사를 묻는 경찰의 질문에 ㄴ씨는 ‘원치 않는다’고 답했고, 상황은 종료됐다. ㄴ씨는 지난 9일 새벽 집 앞에 찾아온 ㄱ씨를 경찰에 다시 신고했다. 엿새 동안 ㄱ씨한테 받은 연락은 전화 168통, 문자메시지 400여통에 달했다.
경찰 조사에서 ㄴ씨는 첫 신고날 낮에 ㄱ씨가 자신을 향해 흉기를 던지는 등 과격한 행동을 한 사실을 뒤늦게 털어놨다. 경찰은 ㄴ씨를 설득해 스마트워치 지급, 112시스템 등록, 순찰 강화 등 안전조치를 했다고 한다. 스토킹처벌법이 정한 긴급응급조치 1개월 접근·연락 금지도 했다.
경찰은 3개월 접근·연락 금지, 1개월 유치장 유치의 잠정조치를 지난 14일 검찰에 신청했다. 범죄 위험성이 커 ㄱ씨를 ㄴ씨와 격리해야 한다고 봤다. 하지만 검찰은 ㄴ씨에게 연락해 재차 의사를 물었다고 한다. ‘유치장 유치까지는 원치 않는다’는 ㄴ씨의 답은 잠정조치를 기각한 검찰의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주거지와 일터를 옮기겠다는 ㄱ씨를 경찰에 잘 지켜보라고도 했다.
격리 없는 잠정조치(접근·연락 금지) 결정이 통보된 지 닷새 만에 ㄱ씨는 ㄴ씨를 찾아가 흉기를 휘둘렀고, ㄴ씨는 현재 중태다.
한겨레 |
2021년 10월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힌 ‘반의사 불벌죄’는 2023년 6월 사라졌다. 보복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피해자가 많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해자의 제재를 두고 피해자의 의사를 묻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의 전문성이 부족하고 객관적인 지표가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경찰은 잇단 스토킹 범죄에 대응하겠다며 지난달 ‘스토킹 위험성 평가 관리’(SAM)를 도입했다. 범죄분석관(프로파일러)이 스토킹 가해자와 피해자를 면담해 위험성을 평가하는 도구로, 구속영장 신청 때 활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현실적으로 모든 사건에 적용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그렇다고 신고 횟수나 관계 범위 등 세부적인 적용 기준도 없다. 오로지 담당 경찰관의 경험적인 판단에 의존한다. 그마저도 사건 초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잠정조치는 해당하지 않는다. ‘울산 스토킹 범죄’에도 이 도구는 활용되지 않았다. 경찰은 우선 유치장 격리 후 구속영장을 검토할 때 적용할 계획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객관성이 부족한 경찰 판단은 결국 검찰의 또 다른 주관적 판단으로 뒤집혔다.
지난 26일 발생한 ‘의정부 스토킹 살인’ 사건에서도 경찰은 스마트워치를 지급하고 접근·연락 금지 긴급응급조치(1개월)와 잠정조치(3개월)를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잠정조치 신청을 기각했다. 지난 3월과 5월, 7월 두달에 한번꼴로 3차례 스토킹 피해 신고가 있었는데도 검찰은 “지속·반복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울산 사건과 마찬가지로 경찰과 검찰의 생각이 달랐다. 유치장 구금은 경찰 단계부터 검토하지 않았다. 울산과 의정부 사건 모두 경찰이 피해자에 스마트워치를 지급했지만, 정작 위험한 순간 피해자를 지키진 못했다.
수사기관은 잇달아 대책을 발표했다. 경찰청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적극 분리하고 순찰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대검찰청도 일선 검찰청에 잠정조치를 적극적으로 청구하고, ‘잠정조치 전담 처리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공감하는 평가도구 없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양부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경찰의 유치장 구금(4호)을 포함한 잠정조치 신청과 법원 결정 현황을 보면, 2022년 1005건·476건(결정률 47.4%), 2023년 1186건·604건(50.9%), 지난해 1219건·499건(40.9%)으로, 잠정조치로 유치장 구금이 이뤄지는 것은 절반 수준에 그쳤다.
배상훈 범죄분석관은 30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스토킹 범죄에서 피해자는 가해자와의 관계 때문에 수시로 마음이 바뀔 수밖에 없다. 그런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묻는 것은 맞지 않다”며 “그만큼 수사기관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전자발찌 착용이나 유치장 구금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 지표를 세우고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잠정조치, 인력 배치 등을 강제하도록 법도 바꿔야 한다. 각자 알아서 제 역할을 다할 것이라는 선의에 기대어선 안 된다”고도 덧붙였다.
한편 울산지법은 살인미수 혐의를 받는 ‘울산 스토킹 범죄’ 가해자 ㄱ씨가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고 30일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주성미 기자 smoo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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