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이란 작가 사니이 “혁명 후, 가족들은 분열됐고 고통은 깊어”

한겨레
원문보기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의 이란 소설가 파리누쉬 사니이. 북레시피 제공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의 이란 소설가 파리누쉬 사니이. 북레시피 제공


파리누쉬 사니이(76)는 2003년에 발표한 첫 소설 ‘나의 몫’이 정부의 판매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란 역사상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기록된 작가다. 세계 29개 나라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2010년 이탈리아 보카치오 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과 두번째 소설 ‘목소리를 삼킨 아이’에 이어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이미선 옮김, 북레시피 펴냄)이 그의 소설로는 세번째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작품에서 사니이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조국을 떠났던 이들과 이란에 남았던 가족들이 30년 만에 재회해 그동안 서로에게 쌓였던 원망과 오해를 풀고 이해와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담았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고 있는 사니이는 지난달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할 무렵 가족 방문차 테헤란에 갔으며 지금도 그곳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한국어판 출간에 즈음해 한국 언론과 합동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그리고 이 소설이 2025년 오늘날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지?



“이슬람 혁명 이후 우리는 ‘분열된 가족’이라 부를 만한 새로운 현상을 맞이했다. 혁명 이후 다양한 이유로 이민자들의 물결이 시작되었고 가족들은 분열되었다. 이 소설은 혁명이 일어난 지 30년 뒤인 2008년을 배경으로 하며 많은 이란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섯 자녀를 둔 어머니가 있다. 자녀 셋은 외국에 살고 있고 셋은 아직 이란에 사는데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30년 뒤에 튀르키예에서 재회한다. 각각의 가족과 개인은 혁명 이전의 전통적 규범과는 전혀 다른 상이한 믿음과 정치·사회적 지향을 지닌 집단을 상징한다. 그들이 한데 모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했다. 그들은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까? 그들을 여전히 한 가족 또는 동포라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조국의 상징인 어머니의 역할은 궁극적으로 무엇일까? 우리는 미래에 대해, 그리고 그들이 재결합해서 힘을 모아 조국을 재건하리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을까?”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에서 이란에 사는 80대 할머니와 손녀 도키, 둘째아들 모흐센, 둘째딸 마리암 등은 외국에 나가 살던 큰아들 모하마드와 큰딸 마흐나즈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과 30년 만에 재회한다. 이란 접경 국가의 바닷가 작은 도시에서 열흘 동안 같이 지내게 된 이들 사이에는 감정의 벽이 쌓여 있다. 남은 이들은 군주정에서 이슬람 공화국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온갖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정신적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다. 떠난 이들은 낯선 나라에서 새 삶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언어와 생활고 문제, 외로움과 정체적 혼란 같은 문제를 겪었다.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모두 상대방을 공격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부각시키고자 한다.






-‘떠난 이들과 남은 이들’ 속 열명의 등장인물 중 어떤 인물에게 가장 애착이가는지, 그 이유도 궁금하다. 이 소설 속에 작가 자신의 이야기도 담겨 있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 이야기는 많은 이란 가족들이 실제로 겪은 현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나는 혁명 이전에 부를 누렸던 가족들부터 극단적인 종교적 가치 속에 살아온 가족들까지,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여러 집단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질적인 구성원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공통적인 지점, 바로 어머니라는 존재가 가족을 다시 하나로 잇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작가 자신은 ‘떠난 자’에 속할 텐데, 언제 어떤 이유로 이란을 떠났고 남은 가족들은 어떤 이유로 남았나? 작가의 가족 안에서 ‘떠난 자’와 ‘남은 자’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나는 업무상 다른 나라의 시민권이 필요했다. 내 나라가 제재(금수 조치) 아래 있었고 그 때문에 외부와의 접촉이나 금융 거래가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외국으로 떠난 이들 중 상당수는 나름대로 대안을 가지고 있었다. 유학을 가거나 자본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거나 망명을 택한 이들도 있었다. 반면 남은 이들은 대부분 그런 선택지가 없었고, 솔직히 일부 집단은 문화적·종교적 신념을 공유하며 정권에 동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뚜렷한 부류는, 숱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남아서 정치적 행동을 이어가기로 결심한 사람들이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나르게스 모하마디가 대표적이다.”



-꽤 오랫동안 이어졌던 ‘히잡 시위’에서 ‘떠난 자’들이 목소리를 크게 보태고 응원했던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란 디아스포라들은 조국과 ‘남은 자’들에 대해 어떤 부채감이나 책임감을 갖고 있나?



“‘여성, 삶, 자유’ 시위와 이를 향한 국외 이란인들의 지지는 우리가 여전히 하나라는 사실과 이란을 다시 세우겠다는 공동의 염원을 되새기게 했다. 이 연대는 쉽게 얻어진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모두 그 의미를 지켜내고 그를 향해 함께 나아가야 할 책임이 있다.”



-작가는 이란과 이란 여성이 처한 삶의 문제를 소설로 써서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는데, 실제로 이들의 현실은 나아졌는가? 나아질 희망이 있는가?



“이란 여성들은 스스로 상황을 바꾸어 왔고, 강한 의지와 압박을 통해 몇몇 권리를 쟁취해 냈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나는 이란 여성들이 머지않아 이 값진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다.”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의 무력 충돌이 격화돼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현재 테헤란에 머물고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이유로 그곳에 갔나? 현재 테헤란의 풍경도 궁금하다.



“전쟁이 발발했을 무렵, 형제자매들을 만나러 이란을 찾았다. 그때 나는 이란 사람들의 낯설고도 복합적인 반응을 목격했다. 예전 전쟁에서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이 이번에도 외세의 침략 앞에 다시 결집하는 모습은 익숙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이 전쟁이 혹시 정권 붕괴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기대를 품는 소수도 있었다. 휴전 이후 몇몇은 실망했지만, 결국 정권의 붕괴는 이란인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질 내부의 문제라는 데에 모두가 뜻을 모으고 있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의대 증원 지역의사제
    의대 증원 지역의사제
  2. 2흑백요리사2 최강록 우승
    흑백요리사2 최강록 우승
  3. 3로저스 출국 경찰 수사
    로저스 출국 경찰 수사
  4. 4한일 정상 드럼
    한일 정상 드럼
  5. 5이혜훈 인사청문회
    이혜훈 인사청문회

한겨레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