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1일 미국 관세 부과가 발효될 예정인 가운데 한국과 미국이 막판 협상에 나섰다.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미니어처 모형과 한국 국기, 관세(Tariffs)가 적힌 이미지. 로이터 연합뉴스 |
주병기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한미 관세 협상의 시계가 미국이 정한 마지노선 8월1일에 가까워지고 있다. 협상팀의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만큼이나,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 역시 타들어 간다. 지금 우리 사회와 언론이 던지는 질문은 올바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가. ‘관세율’과 ‘시한’이라는 점수판에 매달리는 동안, 큰 그림과 본질적인 국익을 놓치는 건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무엇보다 ‘일본 벤치마크’라는 낡은 잣대부터 버려야 한다. 미일 협상은 ‘반면교사’에 가깝다. 선거 패배라는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졸속 협상’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역시 지지자에게 과시할 성과가 필요했고, 궁지에 몰린 일본은 그의 희생양이 된 격이다. 일본이 합의한 무려 5500억달러의 투자에 대해 양국은 서로 달리 해석하고 있고 협의문도 없다. 지난 주말 타결된 미-유럽연합(EU) 협상에서 유럽연합은 일본과 같은 15%의 기본 관세율에 합의했지만, 그 내용은 질적으로 다르다. 항공기, 일부 의약품, 반도체 장비 등 핵심 전략 품목에서 ‘상호 무관세’라는 유리한 조건을 확보했다. 전략적 중요도에 따라 차등적인 접근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도 전략적 기술 동맹의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스마트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우리에게는 일본과 유럽연합에 없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국제법적 토대가 존재한다. 따라서 조급한 타협에 연연하는 것보다는 기존 자유무역협정의 무관세 원칙을 지렛대 삼아 새로운 관세 부과를 최소화해야 한다.
미국의 핵심 목표는 국내 제조업 부활과 일자리 창출이다. 한국은 그 목표에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다. 2023년 외국인 투자로 미국에 생긴 일자리 중 한국 기업의 기여가 중국, 일본, 독일을 능가하여 1위를 차지했다는 통계도 있다. 대미 무역수지의 상당 부분을 현지 투자로 환원하며 미국 내 제조업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관세 부과의 예외를 강력히 주장해야 한다.
미국이 중국의 해양 패권에 맞서기 위해 동맹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지금, 한국은 단순한 투자 파트너를 넘어 기술 동맹의 주축국이 될 수 있다. 일본처럼 단순한 금융 투자만이 아니라 한국은 고부가가치,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 조선산업 부활에 기여할 수 있다.
유럽연합처럼 ‘상호 무관세’ 혹은 낮은 관세를 요구할 수 있는 전략적 분야로 반도체, 배터리, 조선, 철강 등의 산업을 들 수 있다. 인공지능(AI), 로봇, 국방 등 첨단산업의 심장과도 같은 반도체와 배터리 공급망의 확보는 미국 정부가 절실히 필요로하는 것이다. 이 분야의 선도국으로서 한국은 이들 품목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가 오히려 미국 첨단산업 발전을 저해한다는 논리로 ‘전략적 무관세’를 얻어내려 해야 한다. 미국 조선업의 부활을 견인하는 데도 한국은 유일한 기술 동맹의 파트너다. 유럽연합이 항공기 분야와 주요 원자재 무역에서 무관세를 얻어냈듯, 우리에게도 조선 분야와 철강과 같은 원자재에서 특별 대우를 요구할 명분이 충분하다.
미국의 요구에 끌려다니기보다 원칙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협상 시한 연장 또한 하나의 시나리오로 상정하고, 국내 경제에 미칠 타격을 최소화할 ‘플랜비(B)’를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대외 의존도를 낮추고 다자무역 연대를 강화하는 구조적 해법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최악의 경우 내년 미국 중간선거까지 내다보는 긴 호흡도 필요하다.
미국의 천연가스 수입, 첨단산업 분야에 대한 미국 내 투자는 민간 기업의 자율적 투자 유치를 포괄하여, ‘한미 경제·기술 동맹 강화’라는 큰 틀의 파트너십으로 포장해야 한다. 정치적 약속 성격의 장기간의 투자약정을 적절히 활용하여 관세 폭탄을 피하면서 대미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묘수를 발휘해야 한다. 반도체와 조선 등에서 한미의 전략적 기술 동맹의 장기성을 강조하고 10년 이상의 장기간 투자약정을 제시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이익을 높여줄 수 있는 유용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물론 협상 테이블 위의 카드도 전략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농축산업 부문은 상대의 양보를 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
국내 언론이 “일본을 이겨라” “시한 안에 타결하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트럼프식 공포 마케팅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우리 협상단이 조급함의 함정을 벗어나 원칙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도록 더 넓은 협상 공간을 허락해야 한다. 그리고 타결된 협상에 대해서는 그 후속 대책과 장기전에 대비하는 공론의 장을 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점수판을 넘어 진정으로 국익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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