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의 아버지의 투병에서 가장 큰 문제는 치료와 간병에 드는 비용이었다.
생명이 돈과 연결되는 어려운 문제에 누구도 답을 낼 수 없게 되자 형제들의 만남과 대화는 자연스레 줄었고 그렇게 답답한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아버지의 재산을 처분 할 때가 된 것이다.
사회복지사의 직업윤리 중 자기결정과 비밀보장은 매우 주요한 요소다.
스스로 의사결정 능력이 있다고 판단되면 최대한,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알리고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긴 시간 버텨 온 우리의 상황은 한계에 다다랐고 점점 쇠약해지는 아버지가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결론 내었다.
마음에 걸렸지만, 비교적 아버지가 컨디션이 좋았을 때, 비용이 많이 들면 집과 땅을 처분할 수도 있다고 말씀드린 게 있어 다행이라 여기면서 처분을 결정했다.
아버지의 집을 팔았다.
급한 마음에 합리적인 가격에 내놨더니 흥정도 없이 팔려버렸다.
평생 집을 가져보지 못한 아버지를 위해 아들이 선물하는 집이었다.
동생은 아쉬운 마음에 우리 가족에게 매우 행복한 집이었다고, 좋은 집을 잘사셨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했다.
거래가 성사되고 농기구와 살림살이를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중고로 팔아라, 어째라 관심이 많았지만, 우리는 아버지의 물건이 의미 있게 쓰이길 바라면서 나눔을 결정했다.
많이 낡았지만, 여전히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그렇게 아버지의 농기구는 이웃 농가에, 전자제품은 임대 주택에 입주하는 누군가에게 전달되었다.
허락받은 행위는 아니었으나 알게 되신다면 아버지도 기뻐하길 바라면서.
14년 전 먼저 떠나신 엄마는 그 집에서 우리 남매가 오순도순 모여 놀다 가길 바랐다.
아버지가 계신 동안 우리는 그 집에서 잘 놀았지만,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지난 2년 우리에겐 관리할 수 없는 시골 빈집에 불과했다.
깔끔한 아버지가 정리해 놓은 살림들은 아버지 손이 머물던 시절엔 의미 있는 것이었지만 더 이상 주인의 손길을 받을 수 없게 되자 고물에 불과했다.
돈을 내고 폐기해야 하는 폐기물일 뿐이다.
사람의 정성이 깃든다는 것은 이런 건가보다.
아버지의 집을 정리하면서 김춘수의 '꽃'이 떠오른 건 내 감수성의 최대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던' 것처럼 주인이 존재했던 살림은 꽃처럼 예쁘고 소중했겠으나 이제 시들어 버렸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해도 그 시간은 너무나 짧다.
내가 기억하는 50여 년의 시간 속에서 옆집에 무당이 살아 마음에 들지 않다는 외할머니의 걱정이 들리는 듯하지만, 그 무당 할머니는 먼저 동네를 떠났고 20여 가구가 사는 작은 동네는 이제 낯선 이들로 가득하다.
잔칫날 꽹과리를 치던 할아버지와 삼삼오오 모여서 전을 부치던 할머니와 엄마, 동네 아주머니들은 아무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자리에 GPS가 들어서면서 공동으로 쓰던 골목은 누군가에 의해 펜스가 쳐졌고 뛰어놀던 느티나무 그늘은 주차장으로 변한 지 오래다.
일상에 의미 있는 것들이 의미 없어지는 한순간을 경험하면서 머릿속 상념이 정리되지 않는다.
추억 속의 일들이라고 하기엔 내가 기억하는 농촌의 공동체가 사라진 것도 아쉽다.
동네에서 누군가의 가족이 떠나는 것을 모두가 슬퍼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우리의 부재를 슬퍼하지 않는다.
땅을 팔아 줄 테니 평당 얼마를 달라는 거래만 앞선다.
당신의 집을 정리하다 미안한 마음으로 병실에 들렀더니 아버지 후배가 면회를 오셨다.
말은 할 수 없지만 그리운 동생을 단번에 알아보신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얼굴에 반가운 주름이 잡힌다.
근 3년 만에 만난 두 분이 한참을 울면서 눈빛으로 추억을 나누더니 헤어지기 전 내게 명함을 내민다.
장례토탈서비스 회사 대표님이다.
아, 이건 뭔가.
그 눈물은 진심이었겠지.
갑자기 나타난 친한 후배가 하필 장의사인 것은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
그래도 아버지가 웃으니 좋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잠시나마 아버지 집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이 가려졌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김현진 청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빈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