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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K팝 추는 할머니 이정은 "웃기지만 울컥, 가족이니까"

아시아경제 이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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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일 개봉 영화 '좀비딸' 밤순 역
효자손 들고 2NE1 댄스…코미디 도전
"결과만 좇기보다 진심을 담는 게 먼저"
배우 이정은이 2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앞두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NEW

배우 이정은이 2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앞두고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NEW


K팝에 빠삭한 '흥 부자' 은봉리 할머니. 서울에서 피난 온 아들과 손녀에게 방 한 칸을 내준다. 그런데 손녀가 이상하다. 인사도 안 하고 눈도 잘 마주치지 않더니 어느 순간 이를 드러내며 이상한 소리를 낸다. 좀비가 된 손녀를 향해 사랑의 효자손을 휘두르며 기강을 잡는 모습에 웃음이 터진다.

배우 이정은은 영화 '좀비딸'에서 코믹한 매력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기생충'(2019)의 미스터리한 가정부 문광, '자산어보'(2021)의 푸근한 가거댁, '낮과 밤이 다른 그녀'(2024)의 사랑스러운 임순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진한 매력을 드러내 온 그가 이번엔 또 한 번 새로운 얼굴로 돌아왔다.

2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한 생명을 책임지고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알기에 '좀비물' 속 상황이 허무맹랑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딸이 좀비가 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려는 가족의 선택이 공감됐다. 연기를 넘어서 인간적으로도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였다"고 강조했다.

'좀비딸'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일본, 북미, 태국 등에서 연재돼 누적 조회 수 5억회를 기록 동명 웹툰이 원작이다. 이정은은 극 중 손녀 수아(최유리)가 감염된 사실을 알고 아들 정환(조정석)과 함께 품는 밤순을 연기한다. 푸근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흥 많은 할머니지만 상황을 가장 예리하게 바라보는 인물이다.

이정은은 캐릭터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실제 칠곡 어머니들의 영상과 다큐멘터리를 참고했다. "막연한 설정이 아니라 레퍼런스를 기반으로 한 할머니여야 했다. '힙하다'는 설정도 근거가 있어야 진짜처럼 보인다"고 했다. 전라도 사투리를 구현하기 위해 다섯 명의 코치를 만나 녹취했고 다양한 상황에서의 말투를 습득해 극에 적용했다.

좀비물을 다루는 방식에서 기존과 차별성이 있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그는 "'좀비' 하면 대개 사람을 해치는 공포의 존재로만 그려지지만, 이 작품은 달랐다. 딸이 좀비가 됐을 때 '부모는 과연 포기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사춘기를 겪는 10대 자녀처럼 예측할 수 없는 존재가 된 딸을 받아들이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어 "좀비라는 장치를 통해 가족, 양육, 공존의 문제를 던지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설명했다.


극의 분위기를 구성하는 주요 장치는 코미디다. 하지만 이정은은 "'좀비딸'의 코미디는 일반적인 드라마나 영화 속 웃음 코드와는 결이 다르다"고 했다. 그는 "기존 코미디는 특정 대사나 제스처에 반응하게 만들지만, 이번 작품은 긴박한 상황 안에 자연스럽게 웃음이 배어 있다. 과장하거나 오버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였다. 오히려 밀도 있게 웃음을 만들어야 했다"고 전했다.

그룹 2NE1의 '내가 제일 잘 나가' 안무 장면은 한 달 반 동안 연습해 완성했다. 그는 "안무를 외워도 돌아서면 잊어버릴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힙한 할머니'라는 설정은 단순한 캐릭터의 장치가 아니라 영화 전체의 정서를 지탱하는 동력"이라고 덧붙였다.

"이제는 연기에서 결과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과정에 집중해야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고 덜 지치거든요. 사투리 연기도 예전에는 '이만큼 연습했는데 왜 티가 안 나지' 하며 괴로워했던 적도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지역 사람의 정서를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리하게 결과만 좇기보다는 진심을 담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35년 차 배우 이정은은 "아직 완숙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액팅은 빌리빙(Believing)인데 나는 늘 의심이 많다. 그 의심을 뚫고 연출의 디렉션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도달하는 지점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겪었던 '번아웃'에 대해서는 "지쳤다는 건 체력적인 부분이지 멘탈이 무너졌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건 작품을 받아들이는 내 리듬을 조절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동물과의 관계는 연기에도 영향을 줬다. 극 중 반려묘 애용(금동)을 보며 "무언가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배우도 저렇게 연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19년간 함께한 반려견 흰둥이를 올해 4월에 떠나보냈다. 유기견으로 구조된 흰둥이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며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흰둥이를 통해 기다려주는 법을 배웠어요. 육아랑 정말 똑같더라고요. 말썽을 부리던 아이가 열다섯 살쯤 돼서야 안정을 찾았거든요. 그 과정을 겪으면서 참을성도 배우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도 배웠어요. 지금도 동물이랑 같이 촬영하는 게 더 좋아요. 동물은 예측이 안 되니까 배우 입장에선 끝까지 집중할 수밖에 없거든요."


이정은은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다. 최근 지인이 집필한 그림책 '도봉이 그리기'(이야기꽃)의 축사를 통해 '이별에 익숙지 못한 우리 모두에게 큰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적었다. 그는 "장례 다음 날 축사를 쓰는데 눈물이 펑펑 났다. 지금도 그날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그림책은 영화 '좀비딸'과 같은 날인 7월 30일 발간된다.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으로 데뷔한 이정은은 '카트'(2014), '곡성'(2016), '옥자'(2017), '내가 죽던 날'(2020),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2024) 등에서 장르를 넘나들며 폭넓은 연기를 펼쳐왔다. 그는 "'기생충'은 은혜로운 작품이고 '미스터 션샤인'은 제 인지도를 높여준 드라마였다. 지금은 '좀비딸'을 가장 많이 봐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정은은 "작품 선택에 있어 여유를 가지려 한다"며 "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선택의 주도권을 배우가 가질 수 있다는 걸 후배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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