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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우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1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가 오전 질의를 마치고 정회되자 청문회장을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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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준 | 정치팀장
“여기까지였던 것 같습니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긴 침묵을 깨고 지난 23일 자진 사퇴했다. 장관 지명 30일 만, 갑질 의혹이 제기된 지 14일 만이다. 강 의원은 사퇴 입장을 통해 국민과 이재명 대통령, 더불어민주당에 사과했다. 갑질 논란의 당사자인 보좌진에게는 사과하지 않았다. 사퇴는 했으나 갑질 의혹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한달여 전 강 의원이 이재명 정부 첫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됐을 때 미국에서 가족학을 공부한 40대 중반 여성 지도자가 우리 사회 뜨거운 현안인 성평등과 저출산, 다문화 가족, 청소년 문제 등을 어떻게 다룰지 주목받았다. 하지만 강 의원은 지명 16일 만에 보좌진에게 집 쓰레기 버리기, 비데 수리 등 사적인 일을 시켰다는 갑질 의혹에 휩싸였다. 갑질은 불법성은 없지만 국민 여론 법정에서는 웬만한 불·탈법 행위보다 더 큰 비판을 받는 행위다. 공정과 상식, 국민 눈높이 소통을 내걸었던 이재명 정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기도 하다. 새 내각의 장관 후보자 19명 중 특히 강 의원에게 관심이 집중된 이유다.
강 의원의 사퇴를 놓고 이재명 대통령의 결단인지, 본인의 의지인지 등을 따지지만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그가 어떤 결정을 하든 그 후폭풍은 인사권자인 이 대통령, 나아가 이재명 정부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강 의원의 사퇴는 결국 이 대통령의 결단으로 봐야 한다.
누군가는 집권 초 강력한 국정 동력 유지를 위해 강 의원을 그대로 장관에 임명했어야 한다고 얘기한다. 검찰 개혁, 비상계엄 협력 세력 처단 등 시급한 과제 해결을 위해 무리하더라도 그의 장관 임명을 밀어붙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도 이런 생각을 진지하게 품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행하지는 않았다.
강 의원의 사퇴로 이재명 정부가 약간의 타격을 입었지만 얻는 게 더 많아 보인다. 강 의원 사퇴의 효과는 반대 여론을 물리치고 그를 장관으로 임명했을 때를 가정해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강 의원을 그대로 임명했다면 이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해온 “억강부약”(강자를 누르고 약자를 돕는다)의 다짐은 진정성을 의심받을 것이다. 산업재해 피해 노동자와 사회적 참사 희생자, 이주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 보호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이 대통령의 약속도 한층 가벼워질 것이다. 무엇보다 “이재명이 그러면 그렇지”라는 평가가 나오고 그의 독불장군, 무소불위의 이미지는 더욱 강화됐을 것이다.
일부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강 의원 사퇴를 보고 “으스스하다”, “오싹하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이재명 정부가 생각보다 유연하고 탄력적인 정부가 될 것 같다는 두려움에서 나오는 탄식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 대통령을 찍지 않았다는 이들도 그를 다시 보게 됐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국회와 행정부를 장악한 이 대통령이 여론을 무시한 채 제멋대로 권력을 휘두를 것이라는 염려를 한층 내려놓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 효과가 오래갈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재명 정부 첫 조각 과정에서 인사 실패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낙마 원인 대부분이 기초 검증을 소홀히 한 데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하다. 인사 대상자의 평판 조회, 논문·저서 검증(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 강준욱 전 국민통합비서관), 소송 전력 확인(오광수 전 민정수석) 등은 인사 검증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반복되는 인사 실패에 대해 “인수위 없는 정부”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이유로 들었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매우 기본적인 사안들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강선우 사태로 문제를 반성하고 고치는 유연성을 보여준 것은 긍정적이다. 이제 기본을 놓치지 않고 문제 자체를 만들지 않는 인사 시스템이 필요하다. “딴건 몰라도 이재명이 일은 잘한다”는 속설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때다.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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