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이사 |
1971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며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한 후 미국은 통화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미국은 중동의 주요 산유국들과 협약을 맺고 석유거래를 달러로만 결제하도록 유도했다. 이른바 페트로달러 시대의 시작이다. 석유라는 핵심 실물자산과 결합한 이 구조는 세계 각국이 무역과 에너지안보를 위해 미국 달러를 지속적으로 보유하도록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미국은 기축통화 발행국의 지위를 굳건히 할 수 있었다.
50여년이 흐른 지금, 그 달러패권에 조금씩 균열이 나타난다. 미국은 지속적인 재정적자와 부채급증에도 양적완화와 금리조절을 통해 통화정책을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달러의 신뢰도는 점차 약화했다.
최근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가 36조달러, 한화로 5경원에 가까워지면서 주요 신용평가사들이 잇따라 미국의 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 5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에서 한 단계 낮은 Aa1으로 강등하며 달러시스템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통화에 일대일로 연동돼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가상자산(암호화폐)이다.
대표적으로 테더와 서클이 발행하는 USDT, USDC가 있다. 디지털이라는 특성을 이용해 글로벌 금융생태계의 핵심 결제·정산수단으로 자리잡았다. 겉으로는 민간이 발행하는 단순한 가상자산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은 기존 페트로달러 2.0이자 확장판이라 할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변동성이 심한 비트코인을 대신해 가상자산 시장진입을 위한 교환매개로 기능하며 달러 사용을 암묵적으로 강제한다. 석유를 사기 위해 달러가 필요했던 것처럼 가상자산을 사고팔기 위해 스테이블코인이 쓰인다. 가격이 안정되고 디지털화했다는 특성 때문에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전 세계 시장의 99%를 점유했다. 글로벌 거래소, 디파이, NFT 등 거의 모든 가상자산 투자활동의 시작점이 스테이블코인이다.
이제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시장을 넘어 실물경제로 빠르게 확산한다. 중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통화주권이 취약한 국가들이 그 확산의 첫 번째 타깃이 됐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제정한 지니어스(GENIUS)법은 스테이블코인의 제도화와 함께 디지털 달러의 주도권을 공고히 하려는 미국의 전략을 잘 보여준다. 이는 과거 페트로달러의 역사를 재연하면서도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확산할 수 있는 크립토달러로 진화한다.
과거 미국이 석유시장을 지배함으로써 달러패권을 유지했다면 오늘날에는 가상자산을 통해 그 지위를 연장하려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스테이블코인이 있다. 페트로달러가 국제 석유거래를 통해 달러수요를 창출한 것처럼 크립토달러는 전 세계 디지털 자본의 흐름을 재편한다. 우리는 새로운 디지털 기축통화 질서의 형성 앞에서 중대한 판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정구태 인피닛블록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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