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한국일보 언론사 이미지

태국·캄보디아 무력 충돌, 배경엔 118년 전 그린 지도가...

한국일보
원문보기
11세기 사원 '프레아 비헤아르' 영유권 논란
훈센 정치 자금원 카지노 산업 직격탄도 이유


태국 왕립군 소속 무인기(드론)가 25일 국경 지역 프레아 비헤아르주 푸마꿰아 언덕에 위치한 캄보디아 군의 무기 창고를 폭발시키고 있다. 태국 왕립군 제공

태국 왕립군 소속 무인기(드론)가 25일 국경 지역 프레아 비헤아르주 푸마꿰아 언덕에 위치한 캄보디아 군의 무기 창고를 폭발시키고 있다. 태국 왕립군 제공


지난 24일 시작돼 최소 33명의 사망자를 낸 태국과 캄보디아 무력 충돌은 단순한 국경 분쟁이 아니다. 110여 년 전 제국주의 시절의 유산과 두 나라를 대표하는 정치 가문 수장 간 애증 관계가 축적된 결과다.

프랑스가 잘못 그린 지도, 영토분쟁 씨앗으로


27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양국 갈등 씨앗은 제국주의 시기 프랑스가 잘못 그린 지도 한 장이었다. 1904년 인도차이나를 식민 지배하던 프랑스는 태국(당시 시암 왕국)과 국경 조약을 체결하며, 태국 동부와 캄보디아 북부 접경 지역에 위치한 11세기 힌두교 사원 ‘프레아 비헤아르’를 태국 영토로 인정했다.

그러나 3년 뒤 프랑스가 새로 작성한 지도에는 측량 오류로 사원이 캄보디아 영역으로 표시됐다. 이를 단순 실수라 여긴 태국 정부는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1953년 캄보디아가 프랑스에서 독립하면서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영유권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태국이 뒤늦게 병력을 보내 사원을 점령하자 캄보디아는 즉각 철수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1959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판단을 요청했다.

캄보디아와 태국이 소유를 주장하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2008년 7월 캄보디아 학생들이 사원을 견학하고 있다. 프레아 비헤아르=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캄보디아와 태국이 소유를 주장하는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2008년 7월 캄보디아 학생들이 사원을 견학하고 있다. 프레아 비헤아르=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ICJ는 태국 정부가 지도 오류를 인지하고도 프랑스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점 등을 근거로 사원이 캄보디아 소유라고 판결했다. 이후 2008년 캄보디아가 사원과 인근 지역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갈등은 다시 격화했다.

2011년 2월에는 사원 주변에서 중화기까지 동원된 교전이 벌어져 약 20명이 숨지고 주민 수만 명이 피란했다. 당시 충돌이 14년 만에 되풀이된 셈이다.

탁신-훈센 ‘30년 우정’ 파탄


양국 권력 핵심인 탁신 친나왓(76) 전 태국 총리와 훈센(73) 전 캄보디아 총리의 개인적 관계도 갈등의 또 다른 축으로 지목된다.


두 사람은 1992년 탁신 전 총리가 통신 사업을 위해 캄보디아에 진출하면서 인연을 맺었고,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훈센 전 총리는 탁신 전 총리를 ‘형님’이라 부르며 우애를 과시했다. 탁신이 태국 총리에 오르며 두 관계는 더욱 공고해졌다.

탁신 친나왓(왼쪽) 전 태국 총리가 군부 쿠데타로 해외 망명 중이던 2009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총리 공관에서 훈센 캄보디아 총리와 만나 포옹하고 있다. 프놈펜=AP 연합뉴스 자료사진

탁신 친나왓(왼쪽) 전 태국 총리가 군부 쿠데타로 해외 망명 중이던 2009년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총리 공관에서 훈센 캄보디아 총리와 만나 포옹하고 있다. 프놈펜=AP 연합뉴스 자료사진


훈센 전 총리 자택에 탁신 가족을 위한 전용 방이 따로 마련됐을 정도다.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탁신에게 훈센 전 총리는 거처를 제공하고 경제 고문으로 임명하는 등 사실상 ‘정치적 망명처’ 역할도 자처했다.

그러나 두 사람 관계는 올해 들어 급격히 틀어졌다. 태국이 영토 분쟁을 이유로 국경을 봉쇄하면서 훈센 전 총리의 정치 자금원으로 알려진 카지노 산업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여기에 태국 경찰이 훈센 전 총리 조카가 연루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 사기단을 수사하면서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지난달 28일 태국 방콕에서 패통탄 친나왓 총리의 사퇴와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한 시민이 '총리는 국가의 적'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방콕=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28일 태국 방콕에서 패통탄 친나왓 총리의 사퇴와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한 시민이 '총리는 국가의 적'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방콕=로이터 연합뉴스


결국 훈센 전 총리는 탁신 전 총리의 딸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를 정면으로 겨냥하며 반격에 나섰다. 지난 5월 말 프레아 비헤아르 사원 인근에서 양국 군 사이 소규모 총격전이 벌어지자, 패통탄 총리가 사태 수습을 위해 훈센 전 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던 것을 이용했다.

그는 과거 부친이 친하게 지냈던 훈센 전 총리를 ‘삼촌’이라 부르며 자국 군 수뇌부를 폄하하는 발언을 했는데, 훈센 전 총리는 이를 몰래 녹음해 외부에 유출했다. 이후 패통탄 총리는 헌법재판소에 의해 직무 정지됐다. 태국에서는 조기 총선을 요구하는 시위까지 이어지며 탁신 가문이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훈센 전 총리가 자신을 믿은 탁신 가문의 뒤통수를 친 것이다.

탁신 전 총리는 태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훈센과 정말 가까웠는데 그가 내 딸에게 그런 상처를 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에 훈센 전 총리는 “탁신이 나를 먼저 배신했다”며 추가 폭로를 예고하는 등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역사의 앙금에 정치 갈등이 맞물리며 양국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은 셈이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신민아 김우빈 공양미
    신민아 김우빈 공양미
  2. 2전현무 차량 링거 논란
    전현무 차량 링거 논란
  3. 3전현무 링거 의혹
    전현무 링거 의혹
  4. 4해양수산부 북극항로
    해양수산부 북극항로
  5. 5크리스마스 케이크 만들기
    크리스마스 케이크 만들기

한국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