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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쫓을 무렵이면 냉면값이 오른다지”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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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냉면(아래)과 비빔냉면. 18세기 중반 정도면 음식점에서 팔릴 정도로 냉면은 평안도에서 널리 알려진 음식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물냉면(아래)과 비빔냉면. 18세기 중반 정도면 음식점에서 팔릴 정도로 냉면은 평안도에서 널리 알려진 음식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1798년 홍경모는 ‘의초’(擬招)란 제목의 긴 시를 쓴다. 흥미롭게도 이 시에 냉면과 관계된 소중한 자료가 있다. 홍경모는 이 시에서 ‘박탁’(餺飥)이란 말을 쓰고는 작은 글씨로 “우리나라 풍속에 국수를 ‘동치미’ 국물에 말아 ‘박탁’을 만드는데, 서주(西州)에서 유명하다”란 주석을 달았다. 서주는 관서(關西) 지방 곧 평안도이고, 박탁은 ‘물에 삶은 국수’다. 요컨대 동치미 국물에 만 평안도 국수가 유명하다는 것이다. 이 국수는 다름 아닌 냉면이다.



‘평안도에서 유명하다’고 말할 정도라면, 냉면은 적어도 18세기 후반에는 널리 알려진 음식이었을 것이다. 시기를 좀 더 올려보자. 유득공은 1773년 윤3월과 4월 평양을 유람하고 ‘서경잡절’(西京雜絶)이란 시를 짓는데, 이 시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린아이 파리채로 파리를 쫓을 무렵, 냉면과 증돈(蒸豚)은 값이 비로소 오른다지.​” 여기서 ‘증돈’은 새끼 돼지를 통째 찐 음식이라고 하지만 혹 냉면에 얹는 편육이 아닐까? 어쨌든 음력 윤3월과 4월이면 날이 더워질 무렵이다. 이때쯤이면 시정(市井)에서 팔리는 냉면의 값이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8세기 중반 정도면 음식점에서 팔릴 정도로 냉면은 평안도에서 널리 알려진 음식이었다!



평안도 냉면은 이내 전국적으로 유명한 음식이 되었다. 춘천 출신의 관료이자 학자였던 유영하는 1834년 12월 은산현감(殷山縣監)으로 발령을 받았다. 은산은 지금의 평안남도 순천 지역이다. 임지로 떠나기에 앞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희갑을 찾아갔더니, 이희갑이 엉뚱하게도 냉면 이야기를 꺼냈다. “관서의 냉면은 평소 진미(珍味)라고 일컬으나 사람에게 아주 이롭지 않습니다. 또 서도(西都)는 본디 색향(色鄕)입니다. 내가 관서 지방 고을 원으로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을 보건대, 음식과 여색에 곯지 않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이희갑의 말을 듣고 유영하는 과연 돌아오는 날까지 냉면과 기녀를 가까이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일화에서 보듯 냉면은 평안도 지방의 진미로 알려져 있었다.



북한의 평양냉면. 북한의 냉면은 면이 검고 고명이 많다. 유네스코 누리집

북한의 평양냉면. 북한의 냉면은 면이 검고 고명이 많다. 유네스코 누리집


평양은 관찰사영이 있는 평안도 최대의 도시다. 평안도 냉면은 곧 평양냉면으로 알려졌다. 이면백은 평양의 풍속을 제재로 한 ‘기성잡시’(箕城雜詩) 8수 중 여섯번째 작품에서 “냉면은 사람을 얼어붙게 하고 홍로주(紅露酒)는 뜨겁게 하네”라고 하였다. 이 시는 1826년 어름에 평안도 일대를 여행하면서 지은 것이다. 평양의 냉면이 워낙 인상적이었기에 시에서 언급한 것일 터이다. 보다시피 19세기 초반 평양은 냉면의 도시가 되었다. 이규경도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감홍로(紺紅露)·골동반(骨蕫飯)과 함께 냉면을 평양의 명물로 꼽았다. 평안도의 냉면은 곧 다른 지방으로 퍼져나갔다. 사람의 왕래가 가장 많았던 서울과 평양 간의 길은 곧 냉면이 퍼져나가는 ‘냉면 루트’였다. 냉면은 이내 황해도와 경기도, 서울로 사람을 따라 이동했던 것이다. 아, 이건 많이 알려진 사실이니 여기서 굳이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 다른 지방의 경우를 보자. 안동 사람 유휘문은 1819년 경상도 울진, 강원도 삼척·강릉 등을 거쳐 관동팔경과 금강산, 이어 함경도 아래쪽을 유람하고 돌아와 ‘북유록’(北遊錄)이란 장문의 기행문을 쓴다. 여기에 냉면에 관한 희귀한 자료가 나온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보니, 영동(嶺東)의 남쪽에 가까운 지방은 왕왕 벼를 심기 좋았으나 수확이 아주 적었다. 또 산맥 등줄기의 동쪽과 서쪽 및 통천(通川)·안변(安邊) 등은 거친 들판이 많아, 경작하는 것이라고는 오직 옥수수, 기장, 메밀뿐이었다. 간성(杆城) 이북의 냉면과 육진(六鎭)의 기장떡이 아주 맛이 있었다.”



19세기 조선 풍속화가 김준근의 ‘국수 누르는 모양’. 부뚜막 위에 집게처럼 생긴 국수틀을 놓고, 위 널빤지에 올라간 사람의 무게로 국수를 눌러 빼면 그 국수는 바로 부뚜막에 걸린 솥 안으로 들어간다.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

19세기 조선 풍속화가 김준근의 ‘국수 누르는 모양’. 부뚜막 위에 집게처럼 생긴 국수틀을 놓고, 위 널빤지에 올라간 사람의 무게로 국수를 눌러 빼면 그 국수는 바로 부뚜막에 걸린 솥 안으로 들어간다.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


간성은 지금의 강원도 고성이다. 휴전선과 맞붙어 있다. 간성 위로 통천, 안변, 원산이 이어진다. 곧 간성 이북은 강원도의 북쪽과 함경도를 의미하는데, 이쪽은 벼농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옥수수·기장·메밀만 심고 거둔다. 그런데 이곳은 냉면이 워낙 유명하다는 것이다. 추리해보자. 옥수수·기장·메밀만 수확하는 지역에서 이 곡식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궁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국수틀에 메밀 반죽을 눌러 뽑은 국수를 동치밋국에 말아내는 국수 곧 냉면이 알려지자, 아주 빠른 속도로 퍼졌을 것이다. 1819년에 이미 냉면이 맛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면, 이것은 18세기의 연장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넓게 보아 18세기에 이미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남부, 강원도 북부 지방은 냉면을 열심히 먹고 있었던 것이다.



19세기 말까지 자료를 검토해보면, 경상도와 전라도에는 냉면을 먹었다는 기록은 아주 드물다. 이광수는 1930년에 쓴 ‘남유잡감’(南遊雜感)에서 “충청도 이남으로 가면 술에는 막걸리가 많고 소주가 적으며 국수라 하면 밀국수를 의미하고 서북에서 보는 모밀국수(메밀국수)는 전무하다. 서북 지방에는 술이라면 소주요, 국수라면 모밀국수인 것과 비겨보면 미상불 재미있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남쪽 지방은 메밀국수 곧 냉면이 드물었던 것이다. 아마도 남쪽 지역은 메밀보다 밀이 흔한 지역이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20세기를 통과하면서 냉면은 전국적 음식이 되었다.



날이 무척 덥다. 번잡한 세상사 잠시 잊고 점심때 냉면 한 그릇 하시며 더위를 날려 보내시기를 바란다. 그런데 요즘 냉면값도 많이 올랐구나!



강명관 인문학 연구자





강명관 인문학 연구자

강명관 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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