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희지 시집 '잉걸 설탕'
시집 제목을 보자마자 휴대폰으로 '잉걸'의 뜻을 찾아보았다. '불이 이글이글하게 핀 숯덩이'라고 한다. 과연 시집 표지가 짙고 검고 붉다. 핏빛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책을 덮으며 표지가 매우 아름답고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열정적이고 진실된 청년의 몸속에 흐르는 피를 엿본 기분이었다. 이 기분은 그가 자주 다쳤기에 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미술 입시 학원이 딸린 상가 건물 화장실에서 처음 남자와 입 맞췄을 때, 나는 그 맛이 파라핀과 가장 비슷하다고 여겼다./ 개천절이었고, 그때 나는 열여섯이었다.(…)/ 기억에 남는 이미지: 급식을 먹고 돌아온 교실. 나는 나와 가까웠던 아이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 본다. 그들 손에는 내 일기장이 들려 있고. 너 진짜야? 너 진짜 그거야? 키득거리며."('억만 노크')
사람들이 이 시집을 알았으면 해서 추천의 글을 쓰려 하다가도, 인상적인 몇몇 문장을 인용해보려 하다가도 망설이게 된다. 한 사람이 일기장에 숨긴 쓰라린 내부에 손을 대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송희지 시인은 감추지 않는다. 그의 경험과 정체성, 한때였거나 진행 중인 감정 상태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쏟아낸다. 텍스트들은 하나같이 이글이글하다. 행과 연으로 가지런히 배열되기에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정동을 시인은 비정형적인 양식을 동원해 표출한다. 특히 희곡의 문법을 빌려온 시가 다수 눈에 띈다. 시인이 한편으로는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부분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작가의 자아상과 관련해 크고 중요한 부분을 시로 치환해 담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이 시집에는 '형'이 '나'만큼이나 자주 등장한다.
"이러다 진짜./ 죽어./ 불이./ 나는 돌아서려고 하는데,// 형이.// 나의 손을 놓지 않는다./ 나를 자꾸만 있게 한다 나의 명백한 형이."('우리는 오래전에 도착했고 소도였다 어두컴컴 젖은 레몬그라스 들판과 이따금 허공으로 솟구치는 폐어들')
'형'은 시집의 3부 내내 화자와 함께한다. 함께 목욕을 하고 당구를 친다. 실재하는 해변 같지만 허구의 공간인 금정포에 다녀오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이 없을 늦은 밤 홈플러스에 가서 장을 본다.
편집자주
결혼은 안 했습니다만, 시집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시인. 202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 신이인이 사랑하는 시집을 소개합니다.게티이미지뱅크 |
시집 제목을 보자마자 휴대폰으로 '잉걸'의 뜻을 찾아보았다. '불이 이글이글하게 핀 숯덩이'라고 한다. 과연 시집 표지가 짙고 검고 붉다. 핏빛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시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책을 덮으며 표지가 매우 아름답고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열정적이고 진실된 청년의 몸속에 흐르는 피를 엿본 기분이었다. 이 기분은 그가 자주 다쳤기에 가능한 것일지 모른다.
"미술 입시 학원이 딸린 상가 건물 화장실에서 처음 남자와 입 맞췄을 때, 나는 그 맛이 파라핀과 가장 비슷하다고 여겼다./ 개천절이었고, 그때 나는 열여섯이었다.(…)/ 기억에 남는 이미지: 급식을 먹고 돌아온 교실. 나는 나와 가까웠던 아이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 본다. 그들 손에는 내 일기장이 들려 있고. 너 진짜야? 너 진짜 그거야? 키득거리며."('억만 노크')
사람들이 이 시집을 알았으면 해서 추천의 글을 쓰려 하다가도, 인상적인 몇몇 문장을 인용해보려 하다가도 망설이게 된다. 한 사람이 일기장에 숨긴 쓰라린 내부에 손을 대는 듯한 느낌 때문이다. 송희지 시인은 감추지 않는다. 그의 경험과 정체성, 한때였거나 진행 중인 감정 상태에 대해서도 적나라하게 쏟아낸다. 텍스트들은 하나같이 이글이글하다. 행과 연으로 가지런히 배열되기에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정동을 시인은 비정형적인 양식을 동원해 표출한다. 특히 희곡의 문법을 빌려온 시가 다수 눈에 띈다. 시인이 한편으로는 극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부분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작가의 자아상과 관련해 크고 중요한 부분을 시로 치환해 담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이 시집에는 '형'이 '나'만큼이나 자주 등장한다.
잉걸 설탕·송희지 지음·문학과지성사 발행·188쪽·1만2,000원 |
"이러다 진짜./ 죽어./ 불이./ 나는 돌아서려고 하는데,// 형이.// 나의 손을 놓지 않는다./ 나를 자꾸만 있게 한다 나의 명백한 형이."('우리는 오래전에 도착했고 소도였다 어두컴컴 젖은 레몬그라스 들판과 이따금 허공으로 솟구치는 폐어들')
'형'은 시집의 3부 내내 화자와 함께한다. 함께 목욕을 하고 당구를 친다. 실재하는 해변 같지만 허구의 공간인 금정포에 다녀오기도 한다. 그리고 사람이 없을 늦은 밤 홈플러스에 가서 장을 본다.
눈을 피해서 동행하는 '형'과 '나'에게서 느껴지는 슬픔은 비단 소수자의 슬픔만은 아니다. 마음에 고춧가루를 뿌린 듯, 타인이 좋아질 때 생기는 아릿한 기분을 '나'는 계속해서 시로 적는다. 독자는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지독한 사랑을 했구나. 지독히도 사랑을 하는구나···.
그러니까 '잉걸 설탕'은 뭘까. 혀가 델 듯한 사랑, 세상을 노려보는 눈, 까맣게 타버린 심장, 딱지가 지고도 뜨거운 상처라고 말해도 될까. 이런 것들을 핥으며 단맛을 느낀다면 그는 시인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언젠가 나는 나의 붉은 세계를 사랑할 것이다."('나의 시의 전경')
신이인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