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예술축제 통합 기획 '아르코 썸 페스타'를 통해 수십 년간 이어온 국제 무용 축제를 선보이는 김매자(왼쪽)와 장광열. 한주형 기자 |
"밑바닥에 순수예술이 없었다면 지금 K팝의 세계적 인기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한국 창작무용의 대모이자 1993년 창무국제공연예술제(이하 창무예술제)를 열어 거의 매년 역사를 이어온 무용가 김매자(82)는 "항상 내 목적은 우리 춤을 해외에 파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한국 전통 춤으로도 이 시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아직 '국제 예술제'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에 자비를 들여 빚도 져가며 했죠. 놓을 수가 없어 30년 넘게 지속해 왔습니다."
한국 춤의 생생한 현장을 만날 수 있는 무대가 올여름 축제 형태로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특히 올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가 새롭게 기획한 기초공연 예술축제 통합 브랜드 '아르코 썸 페스타'를 통해 무용·연극·음악·전통 등 장르별 축제들이 한데 모였다. 무용 분야에 선정된 10개 축제 중에선 단연 맏이 격인 이 두 축제가 눈에 띈다. 올해 31회째를 맞는 창무예술제와 22회째인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이하 해외무용스타)이다.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 '아르코 썸 페스타' 무용 축제 쇼케이스에서 발레 '라 바야데르' 중 니키야 독무를 춰 보이는 무용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해외무용스타'의 경우 공연예술 전문기자 출신이자 무용 평론가 장광열(67)이 2001년 직접 기획한 이래 발레를 통한 국제 교류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그는 "해외 발레단에서 활동하는 무용수가 국내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은 시절이었다"며 "그들이 고국에서 최상의 기량을 뽐낼 수 있는 장을 만들었고, 국내의 유망주들도 자극받아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김매자와 장광열은 "국제 교류는 우리나라 무용의 수준과 자부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회"라고 강조한다. 장광열은 "모국에 초청돼 특별 공연을 열고 나면 해당 발레단 안에서 무용수의 위상도 올라가더라"며 "현지 안무가와 우리나라 관계자들도 자연스럽게 인연을 맺게 된다"고 했다.
국제 교류형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인연'이다. 예술가 사이의 소통과 네트워크가 무용계 미래에도 중요하다. 예컨대 일본 춤 '부토'를 대표하는 무용단 '산카이 주쿠'는 첫회 창무예술제 때부터 이번까지 총 4회째 축제에 참여한다. 축제 측의 어려운 재정 여건을 생각하면 초청하기 힘든 상대지만, 김매자와의 오랜 우정 덕에 직접 비용 문제를 해결해서 온다. 김매자는 "인간적으로 솔직히 터놓는 사람 간 신의가 중요하다"고 했다.
지난해 8월 제30회 창무국제공연예술제에서 '산 자를 위한 씻김굿'을 선보이는 김매자. |
장광열은 자신이 기자 시절 김매자를 통해 만났던 무용계 거목들과의 일화도 들려줬다. 1988년 서울올림픽 무렵, 아직 우리나라와 당시 소련이 국교도 맺지 않았을 때다. "당시 러시아 명문 볼쇼이 발레단의 예술감독 유리 그리고로비치를 김 선생님 댁에서 뵌 적이 있어요. 한국의 예술계 인사들을 모아 편하게 대화할 수 있게 하셨죠. 수교 후엔 그리고로비치와 국립발레단 사이에 다리를 놔줘 볼쇼이의 '스파르타쿠스' '백조의 호수' 등 주요 클래식 레퍼토리가 한국에 넘어올 수 있었어요. 인간적 교류 덕분에 애정을 갖고 도와준 겁니다."
그러나 순수 공연예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대중의 관심, 기업의 후원은 늘 부족하다. 30여 년 뚝심을 이어온 김매자도 2014~2015년 2년 정도 축제를 내려놓은 적이 있다. "도저히 내 힘만으로는 못하겠"던 상황이었다. 김매자의 인적 네트워크를 높이 산 이진배 당시 의정부 예술의전당 사장이 2년간 지원해 다시 일어서긴 했지만, 여전히 상황은 어렵다. 장광열은 "정부가 행사의 규모나 경쟁력을 평가해 예산을 배정해야 하는데 그보다는 형평성에만 골몰하니 제대로 성장한 단체나 축제가 없다"며 "일본·대만과 비교해 우리나라에 훌륭한 예술가가 많은데도 민간 예술단이 적은 이유"라고 지적했다.
일단은 아르코 썸 페스타를 통한 축제 간 시너지 효과가 관객 호응도 일으키길 기대한다. 이들은 "작은 축제들이 모여 통합 홍보가 가능해진 점 등 긍정적인 면이 많다"며 "매년 꾸준히 이어져 축제끼리 관람권 할인을 해준다거나 인적·재정적 지원을 늘려주는 등 더 깊은 협력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해외무용스타는 8월 2~3일 서울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헝가리국립발레단 이수빈, 러시아 미하일롭스키발레단 임서린, 올해 로잔 발레콩쿠르에서 우승자 박윤재 등을 초청해 갈라쇼를 펼친다. 이달 30일엔 거제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도 공연한다. 창무예술제는 다음달 22~30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세종 예술의전당 등에서 일본 산카이 주쿠, 호주 루이스 메이저 등 세계적 무용단을 소개하고 우리나라 젊은 안무가 작품을 선보인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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