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시각) 가자 지구의 한 구호 급식소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모여든 가운데 한 아이도 울타리 사이로 빈 냄비를 들어 보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수십명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주민들이 22일(현지시각) 가자지구 한 급식소 밖에 줄을 섰다. 묽은 토마토 수프 한 그릇을 얻기 위해서였다. 운 좋은 사람은 가지 쪼가리가 든 수프를 받았다. 하지만 곧 수프가 바닥나자, 사람들은 서로 밀치며 냄비를 들고 앞으로 몰려들었다. 네 번째 아이를 임신 중인 나디아 므두크는 “애들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 거죠. 기근이라 빵도 밀가루도 없어요”라고 에이피(AP)통신에 말했다.
에이피(AP) 통신과 이스라엘 매체 하아레츠는 이날 가자 지구 병원들이 지난 24시간 동안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4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15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2023년 10월 가자 전쟁 발발 뒤 이날까지 80명의 미성년자를 포함해 모두 101명이 굶주림과 영양실조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는데, 최근 사망자가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14살의 팔레스타인 소년 모사브 뎁스가 22일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알시파 병원에서 의료진으로부터 영양실조 판정을 받고, 침대에 누워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2백만명에 달하는 가자지구 주민들은 전적으로 외부의 지원에 의존해 살아가고 있다. 유엔식량계획(WFP)의 로즈 스미스 긴급구호 총괄은 “가자의 기아 위기가 전에 없던 절박한 수준에 도달했다”며 “10만명의 여성과 아이들이 심각한 급성 영양실조를 겪고 있고, 가자 주민의 셋 중 하나가 며칠씩 음식을 먹지 못했다”고 말했다.
프랑스 뉴스통신사 아에프페(AFP)의 기자협회는 21일 엑스(X)에 올린 성명에서 가자지구에서 취재하는 현지인 프리랜서 기자들이 극심한 굶주림에 고통받는다고 밝혔다. 가자에는 지난해부터 2년 가까이 국제 언론의 입국이 금지돼, 본사 기자들이 떠난 이후 10명의 프리랜서 기자들만이 남아 취재를 이어가고 있다.
협회는 바샤르라는 30살의 프리랜서 기자는 다른 주민과 똑같은 궁핍한 조건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에프페에서 주는 월급이 있지만 살 수 있는 물건 자체가 없거나,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 살 수 없다. 이스라엘의 폭격을 피해 가족들과 난민캠프를 옮겨다니며 살고, 폭격 위험으로 차를 탈 수 없어서 걷거나 수레를 타야 한다. 바샤르는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큰형이 굶주림으로 쓰러진 소식을 전하며 “내 몸은 야위었다. 더는 언론을 위해 일할 힘이 없다”고 썼다. 협회는 “1944년 8월 창립된 이래 우리는 분쟁 중 여러 동료를 잃었고, 부상자와 포로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동료가 굶어 죽는 일을 목격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왼쪽)와 테오필로스 3세 그리스 정교회 예루살렘 총대주교(오른쪽)가 22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노트르담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자 주민들의 고통을 증언하고 있다. UPI 연합뉴스 |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 피에르바티스타 피자발라 추기경과 그리스 정교회 예루살렘 총대주교 테오필로스 3세는 이날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는 한 끼 식사를 위해 몇 시간씩 뙤약볕 아래 서 있는 사람을 목격했다”며 “이것은 굴욕이다.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고, 정당화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지난 17일 가자지구의 유일한 가톨릭교회인 성가족성당이 폭격당해 3명이 숨지는 상황이 발생하자, 두 추기경은 함께 가자 지구를 방문해 주민들을 위로하고 지원 상황을 살펴봤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선 수천명의 시위대가 굶주린 가자 어린이들의 사진과 밀가루 포대를 들고 도심을 행진하며 가자 전쟁 중단과 기근 종식을 요구했다.
가자 지구의 기근은 구호물품 분배를 받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 때문이 크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이날 미국과 이스라엘이 주도하는 가자인도주의재단(GHF)이 가자 지구 내 구호물품 배급을 맡은 지난 5월 말 이후로 1054명이 주민들이 배급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다고 밝혔다. 이에 가자인도주의재단은 유엔에 보낸 반박 서한에서 “유엔 기관들은 계속해서 허가와 보안 부족이 지원 전달을 방해한다고 주장하나 현장의 현실은 다르다”라며 “유엔 쪽이 운영하는 400곳 이상의 구호 분배 지점이 문이 닫혔고, 트럭은 움직이지 않고, 운전사들은 파업 중이고, 수송대는 반복적으로 약탈당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과 아랍 활동가들이 밀가루 포대를 지고 굶주린 가자 어린이들의 사진을 들고 가자 전쟁과 그로 인한 기아를 모두 끝내자고 요구하며 22일 이스라엘 텔아비브 시내를 행진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
미국 정부는 구호물품 배급 방식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테미 브루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22일 브리핑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새 휴전과 함께 구호물자가 흐를 수 있는 인도적 통로가 마련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며 “(이스라엘과 하마스) 양쪽 모두 이에 실제로 동의한 상태”라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의 휴전 회담이 최근엔 가자 지구에서 누가 구호물품 분배를 맡을 것인가를 두고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고 아랍 국가 중재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 대통령의 중동 특사 스티프 위트코프가 가자 휴전 협상을 위해 중동 지역으로 향하고 있다고 미 국무부는 밝혔다. 마이크 허커비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는 이날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부통령 후세인 셰이크와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라말라에서 만나 가자 전쟁 종식과 인도적 지원, 이스라엘 인질 석방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카타르 도하에서 이스라엘 협상단과 만나서 휴전 협상 상황을 들었다고 하아레츠는 보도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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