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내린 극한 호우로 물이 불어나 침수된 경남 산청군 신안면 청현리 딸기 하우스밭이 21일 폐허가 되어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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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물이 막 넘쳐 들어올 같아. 나를 좀 데리러 와줘.”
경남 산청군에서 극한호우와 산사태로 사망자가 발생한 19일 정오 무렵, 신안면 산 중턱에 홀로 살던 87살 ㄱ씨는 딸에게 이 말만 남긴 채 연락이 두절됐다. 폭우로 통신마저 끊겼기 때문이다.
집 주변은 이미 빗물이 무릎 높이까지 찬 계곡이 된 터였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ㄱ씨는 먹통이 된 휴대전화를 비닐에 싸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우산을 지팡이 삼아 거센 비바람과 물길을 헤쳐 도로까지 내려왔지만 물바다와 흙더미로 아수라장이었다. 다시 발걸음을 돌려 산 쪽을 향해 한참을 걸어 윗 동네 마을회관에 간신히 닿을 수 있었다. ㄱ씨는 문자메시지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통신·전기 단절이 발생한 상황에서 긴급 재난문자나 대피 방송은 무용지물이었다.
재난문자, 대피방송 다 끊어놓은 폭우
광주광역시 북구에선 폭우가 쏟아진 17일 오후부터 홀로 살던 86살 ㄴ씨 생사가 22일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구청은 실종 당시부터 닷새가 흐른 21일까지 누가 실종됐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북구청 쪽은 “수해 복구에 정신이 없어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이 수사 중이었기 때문에 통보를 기다리고 있었다”고만 했다. 주민등록상으론 배우자가 있고 국민기초생활수급자·차상위계층은 아니었기에 ㄴ씨는 주민센터가 들여다보는 독거 노인으로 분류돼 있지 않았다. 사회적 연결망 사각지대가 재난 대응의 구멍으로 이어진 셈이다.
스스로 대피 어려운 재난취약층 구하려면
기후위기가 유발한 극심한 폭우·산사태·산불 같은 재난이 반복되면서 고령층을 비롯한 재난 취약층을 중심으로 한 대응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산청군의 경우 스스로 대피가 어려운 재난 취약층을 돕는 민간 대피조력자들이 없는 지역에서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산청군 사망자 12명 가운데 10명은 60대 이상(60대 2명, 70대 8명)이다. 실종자 2명도 모두 80대 고령층이다. 전국에서 2015~2024년 발생한 태풍·폭우 등 풍수해로 인한 사망자 174명 가운데 60대 이상은 107명(61%)이었다.
재난 취약층에 대한 대응체계 미비는 역사상 최악으로 기록된 올해 3월 영남 지역 산불 피해를 부채질하기도 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6월 발간한 ‘대형산불에 대한 국가적 대응과제’에서 “고령·거동 불편자의 보행 속도와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못해 대피 과정에서 피해가 집중됐다”며 “대피 명령 수단도 문자로 단순화돼 정보를 신속하게 접할 수 없었고, 통신·전기 단절로 정보 전달도 지연됐다”고 분석했다.
산청군 등이 지난 19일 신안면 주민들에게 발송한 재난 문자. 이날 신안면 일대는 폭우로 인해 통신 장애가 발생했다. 국민재난안전포털 누리집 갈무리 |
이런 까닭에 행정안전부는 지난 5월 여름철 자연재난에 대비해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재난 취약층을 우선 대피 대상자로 지정·관리하고, 이·통장 등 지역 지리를 잘 아는 민간 대피조력자를 1대1로 배치하는 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65살 노인 인구 비율이 40%를 넘고, 인구감소 지역이기도 한 산청군의 경우 충분한 인력 확보가 어려운 형편이다. 산청군청 관계자는 “모든 마을에 대피조력자를 배치할 순 없어 산사태 인명피해 우려 지역을 추려 14곳에서만 지정했다”며 “이번 집중호우로 사망·실종자가 발생한 곳은 인명피해 우려 지역으로 분류돼 있지 않아 대피조력자를 지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취약층 1명당 1명을 배치하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1명이 최대 3명을 돕도록 하고 있다”며 “대피조력자는 주로 40~50대지만 60대도 있다”고 밝혔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주성미 기자 smoo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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