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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들통난 윤석열 거짓말”…‘YS도 안 했다’는 국무회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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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비상계엄 선포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3일 밤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비상계엄 선포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상 마련된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사전 통제장치를 무력화했다.”



내란·외환 사건을 수사하는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19일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기소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전 일부 국무위원만 선별 호출해 2분간 ‘국무회의 시늉’만 한 것은, 아예 연락조차 받지 못했거나 급박한 호출에 참석 못 한 국무위원 9명의 계엄 심의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계엄법은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간 윤 전 대통령은 1993년 8월12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국무회의’와 ‘12·3 비상계엄 국무회의’는 차이가 없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 2월25일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최후진술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1993년 8월13일(8월12일을 틀리게 말함) 김영삼 대통령께서 긴급재정경제명령으로 금융실명제를 발표했을 당시에도, 국무위원들은 소집 직전까지 발표한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고, 국무회의록도 사후에 작성됐습니다. 그때 상황은 이인제 당시 노동부 장관께서 이미 자세히 설명하신 바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두고 국무회의가 없었다고 하지 않았고, 당시 헌법재판소는 긴급명령 발동을 모두 합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윤 전 대통령 쪽은 지난 9일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서도 ‘금융실명제 실시 사전 통고나 국무회의는 없었다’는 이인제 전 장관 진술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특검팀이 법정에서 불과 1분가량 재생한 32년 전 영상은 윤 전 대통령 주장을 단박에 산산조각냈다. 특검팀이 윤 전 대통령 면전에서 재생한 것은 1993년 8월12일 저녁 7시30분 청와대에서 열린 금융실명제 심의 긴급 임시 국무회의 영상이었다.



한겨레는 대통령기록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윤 전 대통령 쪽이 ‘없었다’고 주장한 1993년 금융실명제 심의 국무회의 영상을 입수했다. 전체 18분52초짜리 영상에는 파란색 바탕에 ‘93. 8. 12 임시국무회의 및 금융실명제 발표’라는 제목이 삽입돼 있다.








1993년 8월12일 금융실명제 실시 임시 국무회의 영상 갈무리. 대통령기록관 제공

1993년 8월12일 금융실명제 실시 임시 국무회의 영상 갈무리. 대통령기록관 제공


영상은 국무회의 시작 전 애국가 연주가 끝나는 시점부터 시작한다. 김영삼 대통령과 황인성 국무총리, 국무위원, 청와대 참모 등 배석자, 역사적 국무회의를 ‘기록’하기 위한 영상·사진 촬영 스태프까지 수십명이 보인다. 김영삼 대통령이 국무회의 개의를 알리는 의사봉을 두드린 뒤 “대통령 긴급명령안과 금융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명령의 시행을 위한 대통령법령안을 상정하겠다”(44초)고 알린다. 이어 재무부 장관에게 “제안설명을 해달라”고 하자, 홍재형 재무부 장관이 법령안 주요 내용과 제안 설명(1분25초)을 한다. 김 대통령은 “임시국회 소집 요구안을 상정하겠다”며 다시 총무처 장관을 지명해 제안설명을 해달라고 한다. 최창윤 총무처 장관이 소집 이유와 소집 기간을 설명하며 ”심의 의결해 달라”고 한다.



이후 일부 편집된 듯한 구간에서 김 대통령이 국무위원 등에게 법령안 관련 의견을 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경을 손에 든 김 대통령이 참석자들을 살펴보다 누군가를 향해 “네, 네, 말씀하십시오”(2분3초)라고 말한다. 한 참석자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냈는데, 금융실명제 법령안의 헌법상 용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긴급명령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만, 긴급재정경제명령이라는 용어가 정확할 것 같습니다. 헌법에 양자를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긴급재정경제명령은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서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발하는 명령으로 돼 있고, 긴급명령은 국가안위에 관계되는 중대한 교전상태에서 발하는 명령을 긴급명령으로 헌법에서 분류해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명칭만 수정해….” 돌발 상황이었지만 김 대통령은 바로 지적 사항을 수용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명칭을 수정하도록…. 바로 적어요”라며 대변인을 찾았다. “대변인 어디 갔어요? 대변인 또 나가버렸네… 아니 그 수정해야 되니까.”



1993년 8월12일 김영삼 대통령이 발표한 금융실명제 실시 특별 담화문. 임시 국무회의에서 지적한 용어 수정 내용이 그대로 표시돼 있다.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1993년 8월12일 김영삼 대통령이 발표한 금융실명제 실시 특별 담화문. 임시 국무회의에서 지적한 용어 수정 내용이 그대로 표시돼 있다.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당시 금융실명제 발표 2시간여 전인 오후 5시30분께 모든 국무위원 및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에게 청와대에서 대통령 주재 긴급 국무회의가 소집된다는 사실이 통보됐다. 저녁 6시20분 이경재 공보수석이 청와대 춘추관 기자실에 긴급 임시 국무회의가 소집됐으며, 대통령이 관련 내용을 직접 발표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렸다. 철저한 보안 속에 긴급하게 열린 국무회의였지만 그 절차는 물론 심의 기능까지 제대로 작동했던 것이다.



김 대통령은 이어 “별 이의 없으면 제가 말씀드리죠”(3분16초)라며 국무위원들에게 전격 발표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 “대단히 중요한데 사전에 알리지 못하고 갑자기 실시하게 된 것은 사안의 성격상 보안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였다는 점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이해를 구합니다. 통상적인 행정부 내의 절차 및 국회 입법 절차에 따라 공개 논의를 거쳐 실시할 경우 극심한 부작용이 예상되고 제대로 된 실명제 도입이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김 대통령의 발언은 4분 넘게 이어졌다. “딴 이의가 없으면 회의를 이것으로 그치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사봉들 두드리며 국무회의 종료를 선언한 김 대통령이 말한다. “서명을 전부 해야….”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의 부서(서명)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한덕수·김용현이 서명한 것으로 뒤늦게 꾸민 가짜 계엄선포문에 결재했던 윤 전 대통령과 명확히 구분된다.



1993년 8월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금융실명제 관련 긴급 임시 국무회의 장면. 문화체육관광부 e영상역사관 홈페이지

1993년 8월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금융실명제 관련 긴급 임시 국무회의 장면. 문화체육관광부 e영상역사관 홈페이지


김 대통령과 국무위원, 청와대 참모들은 국무회의를 마친 뒤 곧바로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한다. 영상 역시 금융실명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으로 바뀐다(7분58초). “이 순간 엄숙한 마음으로 헌법 제76조1항에 의거하여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발표합니다. 헌법 제47조3항의 규정에 따라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을 심의 승인하기 위한 임시국회 소집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8월12일 저녁 7시45분이었다.



일주일 뒤인 8월19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어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 승인의 건을 상정했다. 여당은 △금융실명제 법안이 그동안 충분히 논의됐으며 △1982년과 1991년 금융실명제가 유보됐던 전례 △1992년 각 당이 대선 공약으로 삼았던 만큼 조속한 의결을 요구했고, 야당은 긴급재정경제명령이 헌법의 발동 요건에 맞는지 등을 문제 삼으면서도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에 찬성한다”고 했다.



실제 당시 정치권과 관가에서는 금융실명제 실시는 시기의 문제일 뿐 기정사실로 한 상태였다. 반면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불과 3개월 전까지도 더불어민주당의 계엄설 주장에 “거짓말이면 국기문란”(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대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긴급재정경제명령 선포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을 했다며 비상계엄 선포도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이 아니다. 헌재는 1996년 2월 긴급재정경제명령 발령을 위해서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고 △그 발령은 문서의 형식으로 해야 하며 △문서에는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의 부서가 있어야 하고 △지체 없이 국회에 보고해 승인을 얻어야 한다며, 이런 내용을 두루 살핀 뒤 “금융실명제 관련 긴급재정경제명령은 헌법이 정한 절차와 요건에 따라 헌법의 한계 내에서 이뤄졌다”고 합헌으로 판단했다. 반면 12·3 비상계엄 선포는 △국무회의 심의가 없었고 △문서의 형식도 아니었으며 △국무총리와 관계 국무위원의 서명도 없었고 △국회 보고 절차도 없었다.



법조계에서는 법조인인 윤 전 대통령은 물론 변호사들까지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파악하지 않고 막무가내 주장을 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무회의 규정을 보면 임시 국무회의는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소집’하며, 긴급한 의안의 경우 그 내용을 사전에 알리지 않아도 된다. 고위 공직자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출신 변호사는 22일 “금융실명제 국무회의의 경우 국무위원들에게 사전 통보가 있었으며, 다만 안건에 관해서는 규정에 따라 알리지 않은 것이다.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바로 들통나는 거짓말을 법정에서 주장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지지자들만 보는 윤석열은 그렇다고 해도 변호사들까지 저러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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