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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으로 끝난 父子... 이혼의 굴레서 20년 못벗어났다

조선일보 인천=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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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인사이드]
생일상 차려준 아들에 총 쏜 60대
“이혼 책임 내게 돌려 자주 다퉈”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남성이 사제(私製) 총기로 아들을 살해했다. 총기 사용이 금지된 한국에서 발생한 이례적인 사건이다. 이 남성은 자신의 생일상을 차려준 아들에게 총을 쏜 것으로 파악됐다.

인천 연수경찰서는 21일 아들을 사제총으로 살해한 혐의로 A(62)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은 20일 오후 9시 30분쯤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한 아파트에서 벌어졌다. 아들 B(34)씨가 생일을 맞은 A씨를 초대해 잔칫상을 차렸다.

범행에 사용한 탄환. /인천경찰청

범행에 사용한 탄환. /인천경찰청


이날 생일잔치에는 A씨와 B씨 내외, 어린 손주 2명, 며느리의 지인 등 총 6명이 참석했다. A씨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잠시 밖에 나갔다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곧이어 차량에 싣고 온 사제 총기 3정을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쇠구슬 여러 개가 든 산탄(散彈) 3발을 쐈다. 2발은 아들 가슴에, 1발은 현관문에 맞았다. 이 사제 총기는 A씨가 직접 쇠파이프를 잘라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1정당 사냥용 산탄 1발을 발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며느리 C씨는 아이들과 안방으로 몸을 피한 뒤 112에 신고했다. “시아버지가 남편을 총으로 쐈다”는 내용이었다. 경찰특공대는 오후 10시 43분쯤 집 안에 진입했으나 A씨는 이미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주한 상태였다. B씨는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이 아파트 보안 카메라에는 A씨가 여행용 캐리어를 SUV에 싣고 도주하는 모습이 찍혔다.

여행용 캐리어와 큰 가방 들고 집 나서는 모습 20일 밤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남성이 직접 만든 사제 총기로 30대 아들을 살해했다. 사진은 이 남성이 범행 전 서울 도봉구 집을 나서는 모습. 여행용 캐리어와 큰 가방을 들었다./YTN

여행용 캐리어와 큰 가방 들고 집 나서는 모습 20일 밤 인천 연수구 송도국제도시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남성이 직접 만든 사제 총기로 30대 아들을 살해했다. 사진은 이 남성이 범행 전 서울 도봉구 집을 나서는 모습. 여행용 캐리어와 큰 가방을 들었다./YTN


경찰은 3시간쯤 지난 21일 0시 15분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도주하던 A씨를 긴급체포했다. 동작대로에서 추격전을 벌인 끝에 A씨 차량을 경찰차로 가로막아 검거했다. 차량 조수석과 트렁크에서 쇠파이프 11개가 발견됐다. 산탄 3개도 있었다. A씨는 범행에 사용한 총기 3정 중 2정은 버렸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래픽=이철원

그래픽=이철원


검거 직후 A씨는 경찰에 “서울 집에 폭탄을 설치했다. 21일 낮 12시에 터지도록 설정해 놨다”고 진술했다. 이에 경찰은 A씨가 사는 서울 도봉구 아파트 주민 100여 명을 근처 보건소 등으로 대피시키고 경찰특공대와 폭발물 처리반(EOD)을 투입했다. 경찰견도 동원했다. A씨 집에선 시너 등 인화성 물질이 든 1.5L 페트병, 세제 통, 우유 통 등 15개와 타이머 기폭 장치 등이 발견됐다. 쇠파이프도 나왔다. 경찰특공대는 오전 4시쯤 폭발물을 해체했다. 주민들은 새벽 내내 불안에 떨어야 했다.


피의자가 자택에 설치한 폭발물. /인천경찰청

피의자가 자택에 설치한 폭발물. /인천경찰청


경찰은 “타이머가 21일 낮 12시에 맞춰져 있었다”며 “실제로 폭발 가능한 폭탄인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A씨는 산탄을 갖고 있는 이유에 대해 “20년 전 극단적 선택을 할 목적으로 총기를 보유한 사람에게 구입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집에 86발이 남아 있었다”고 했다.

A씨는 경찰에서 “가정 불화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은 진술을 피하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A씨는 20여 년 전 아내 D씨와 이혼한 뒤 도봉구 집에 혼자 살고 있다고 한다. 현재 직업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D씨는 유명 미용 프랜차이즈 대표로 알려졌다. A씨가 살고 있는 70평대 도봉구 집도 D씨 명의로 파악됐다. 이혼한 뒤에도 전처 명의 집에 혼자 산 것이다. 주민들은 “A씨는 오래전부터 무직이었고 D씨가 가족을 부양했다” “A씨는 몇 년 전부터는 모자를 눌러쓰고 인사도 안 했다”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는 모습도 봤다”고 전했다. 이 집은 여러 차례 압류를 당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정기적으로 아들 집을 오갔다”며 “평소 아들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범행 당일 현장에 있었던 C씨의 지인은 경찰에 “고성이 오가진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20여 년 전 이혼한 뒤 아들과 갈등을 겪어 왔다고 주장했다. A씨는 경찰에 “아들이 평소 아내와 이혼을 내 탓으로 몰아 다툼이 잦았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A씨는 범행을 사전에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A씨가 수개월 전부터 유튜브 등을 통해 총기 제작 방법을 연구한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직접 고른 쇠파이프를 공작소에서 자르는 등 사전 제작한 정황을 확인했다”며 “일부 부품은 범행 전 온라인에서 구입해 총기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A씨는 총기 관련 업종에 근무한 적은 없다고 한다. A씨가 범행 때 탄 차량은 렌터카인 것으로 파악됐다.


검거 당시 A씨는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복용하진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총기 관련 범죄 경력이나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도봉구 집이나 차량에서 범행과 관련한 메모나 유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참석자 중 아들만 겨냥해 총을 쐈다”며 “경제적 문제로 아들과 갈등이 있었는지 등도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A씨가 집에 폭발물을 설치한 뒤 범행을 벌인 이유에 대해 경찰은 “A씨가 자포자기한 심정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A씨는 검거된 직후 “(경기 하남) 미사리나 한강으로 도주하려고 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온라인에선 “우리나라도 더 이상 총기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에 따르면, 사제 총기 등 불법 총기 사고는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9차례 발생했다. 2016년 서울 강북구에선 50대 남성이 쇠파이프로 만든 사제 총기를 난사해 경찰관 1명이 숨지고 지나가던 시민 2명이 다쳤다.

[인천=김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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