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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9일 폭우로 밀려든 급류와 흙더미에 벽체 일부와 주변 딸림 건물이 크게 부서진 산청 율곡사 대웅전(국가지정보물)의 측면. 국가유산청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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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가평군 일부 지역에 시간당 76㎜의 폭우가 쏟아진 지난 20일 새벽, 가평 용추계곡의 한 펜션을 찾은 강아무개(39)씨는 휴대전화로 들어오는 재난안전 문자메시지를 보고도 대피 여부를 쉽사리 결정할 수 없었다. ‘하천 범람에 대비 바란다’는 정도의 추상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펜션 사장님도 혼란스러워하면서 괜찮을 것 같다고 하는데, 문을 열어보니 물이 이미 발목까지 차 있었어요.” 빗물이 무릎까지 차오른 뒤에야 강씨 가족은 펜션을 빠져나왔다. 강씨는 “조금만 늦었으면 위험했을 것”이라며 아찔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날 가평 폭우로 21일 오후 4시 기준, 3명이 숨지고 3명이 실종된 것으로 집계됐다.
기후위기 속에 폭우 등 기상 재난이 일반적인 양상과 예측을 벗어나 돌발적으로 들이닥치는 일이 잦아지면서, 재난 예보 전파와 긴급대피 체계에 전반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상 상황을 각 지역에 실시간으로 전파하는 시스템과 함께, 짧아진 ‘골든타임’을 고려해 체계적이고 신속한 대피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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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경기 가평 용추계곡 인근의 한 펜션이 물에 잠겨 집기가 떠내려가고 있다. 독자 제공 |
실제 지난 16~20일 전국 곳곳에 쏟아진 폭우는, 기후 재난의 사전 예측이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특히 문제가 된 건 좁은 지역에 폭탄처럼 비가 쏟아지는 ‘국지성 호우’였다. 비 피해를 크게 입은 경남 산청군도 지역 남부를 중심으로만 폭우가 집중됐다. 기상청은 최근 폭우와 관련해 “두 공기가 좁은 띠 형태로 충돌한 결과 불과 40㎞ 떨어진 곳인데도 강수량 차이가 10배에 이를 정도로 지역별 편차가 컸다”며 “예측이 매우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결국 ‘실시간 대응’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기본적으로 하루이틀 전 폭우의 위치와 양을 정확히 예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번 같은 집중강수는 ‘실황예보’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레이더에 포착된 구름대 움직임을 통해 2~3시간 앞서 상황을 예측하고 지방정부와 실시간으로 연계해 대응하는 체계를 지금보다 더 개선할 여지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민들에게 직접 전파되는 대피 안내도 훨씬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채진 목원대 교수(소방방재학)는 “‘저지대에 계신 분들은 신속히 대피하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안내는 소용이 없다. ‘어느 지역에 있는 사람은 어디로 신속히 대피하라’는 구체적인 안내가 있어야 한다”며 “지방자치단체마다 전문성 있는 재난 관리 종사자가 충원돼 지역별 위험 상황을 살피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류상일 동의대 교수(소방방재학)도 “이제 재난을 과거처럼 어쩌다 발생하는 것이라고 보는 대신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여기고, (정보가) 실시간으로 바뀌더라도 최대한 빨리 결과를 예측해 내놓아 필요한 이들에게 빠르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전과 차원이 달라진 기후 재난의 강도와 위험성을 시민에게 알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 함승희 서울시립대 교수(소방방재학)는 “과거 경험해보지 못한 강도의 재난이 잦아지는 상황”이라며 “평소 기상 뉴스 등에서도 기후 재난이 단계별로 실제 어느 정도의 위력과 위협인지 체감할 수 있도록 알리는 식으로, 시민이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선 ren@hani.co.kr 정봉비 bee@hani.co.kr
김규남 3strings@hani.co.kr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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