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오정세. 프레인TPC 제공. |
오정세는 지난 20일 종영한 JTBC 토일극 '굿보이'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빌런' 민주영 역을 맡아 활약했다. 평소에는 관세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이지만, 그 이면에는 마약을 밀반입하며 세력을 불려 인성시를 손아귀에 쥔 반전의 인물이다. 박보검, 김소현, 이상이, 허성태, 태원석이 뭉친 강력특별수사팀을 끈질기게 괴롭히는 악역으로 긴장감을 높였다.
드라마 초반부터 자신의 정체를 밝힌 그는 16회 동안 피도, 눈물도 없이 목표를 위해서라면 살인, 폭행을 서슴없이 저지르면서 시청자의 분노를 샀다. 1997년 영화 '아버지'로 데뷔한 이후 악역을 여러 번 소화했지만,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빌런'은 오정세에게도 처음이다.
오정세의 색다른 매력을 드러낸 '굿보이'는 놀랍게도 그가 내놓은 올해 세 번째 주연드라마다. '다작의 아이콘'답게 오정세는 올해에만 tvN '별들에게 물어봐', 넷플릭스 '폭싹 속았수다'에 이어 '굿보이'까지 줄줄이 내놨다. 각 드라마에서 캐릭터도 달랐다. '별들에게 물어봐'에서는 냉철한 재벌 과학자를,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한량 캐릭터를 맡아 180도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쉬지 않고 연기 한 우물만 파고 있는 오정세는 최근 서울 강남구 프레인TPC 사옥에서 열린 '굿보이' 종영 기념 인터뷰에서 “언젠가 속도 조절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순간이 올 수도 있지만, 지금은 좋은 작품이나 좋은 캐릭터를 만나면 손잡고 싶은 마음이 더욱 크다”며 '다작'에 대한 신념을 전했다.
배우 오정세. SLL, 스튜디오앤뉴,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 제공. |
“큰 사고 없이 마무리해서 기쁜 마음이다. 그동안 '본방 사수'하며 시청률 올리는 데 힘을 보탰다. 시청자 반응도 간혹 봤다. 좋아하는 분도, 아쉬워 하는 분도 있더라. 모든 반응을 좋은 마음으로 봤다. 다만, 댓글이 너무 빨리 올라가서 그게 좀 어려웠다. 하하.
-엔딩은 마음에 드나.
“시청자 분들이 최대한 속 시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속시원한 퇴장과 마무리를 구현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액션이 많았는데.
“다른 출연자에 비해서는 입 밖에 못 내밀 정도다. 최대한 '잘 맞아야지'하고 생각했다. 그만큼 잘 나온 것 같다. 총을 쓰는 장면도 있었다. 제가 생각하는 민주영은 절제되고, 그 안에서 폭력성과 잔인함이 있었으면 해서 총도 무표정으로 쏘려 했다. 그게 생각보다는 힘들더라. 총을 쏘는 모습을 클로즈업한 장면에서 분명히 눈을 안 깜박였는데, 모니터를 보면 민주영이 엄청 찡그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자꾸 깜짝 놀란 거였다. 소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드라마의 '빌런'으로 활약했는데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갔나.
“처음 '굿보이' 대본을 받았을 때는 메달리스트들이 한 팀을 만들어서 정의실현 해가는 메인 플롯이 마음에 들었고, 그야말로 '굿보이'들을 응원하게 됐다. 그래서 일단 출연을 결정했고, 그 다음에는 민주영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숙제가 주어졌다. 보통 막바지까지 범인을 추리하는 포맷이 익숙한데, 이 플롯은 아예 초반에 내가 범인인 것을 보여주고 흘러가지 않나. 그래서 어떻게 하면 안 지루하고, '굿보이'들에게 자극제가 될지 고민을 했다. 그러다 '한 꺼풀씩 벗겨내면서 나오는 반전을 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의 끝을 궁금하게 만들자 싶은 거다. 그래서 초반과 후반에는 의상이나 외모까지 다르다. 초반에는 가장 평범한 인물이었으면 좋겠단 마음에 헤어스타일을 거의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다 관세청을 나온 뒤에는 헤어 스타일링을 했다. 의상도 평범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고가인 제품들을 착용했다. 단순한 검은색 바지라도 '민주영이라면 이런 걸 입겠지'라는 마음으로 가격이 300~400만 원하는 바지를 찾아 입었다.
배우 오정세. 프레인TPC 제공. |
“민주영은 이 도시 안에서는 내가 '왕'이라는 생각에 휩싸인 캐릭터였다. '나는 모든 위기를 빠져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이지 않았을까? 다만, 민주영에게는 다른 '서사'를 주지 않으려 했다. 다른 작품에서는 악역의 서사를 통해 그가 왜 괴물이 됐는지 설명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나한테는 그게 더 불편했다. 조금이라도 민주영에 대한 동정심을 주고 싶지 않았다. 내가 민주영으로서 시청자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은 크게 하지 않았다. 그저 돈과 권력에 대한 위험만을 보여주고 싶었다. 돈과 권력의 맛을 잘못 보면 괴물이 될 수 있다는 것만 보여주는 데에 집중했다.”
-복싱 금메달리스트 출신 경찰 윤동주 역 박보검은 어땠나. 전작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함께 출연했는데.
“'폭싹 속았수다' 현장에서는 마주칠 일이 없다가 여기서 만났다. (박)보검이는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정말 좋은 배우다. 힘들 것 같은 장면이 많은 날에도 즐겁게 작업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배우로서의 스트레스는 내 몫으로 하고, 현장은 최대한 즐겁게 지키고 싶어하는 스타일인데, 보검이도 항상 겸손하게, 기쁘게 현장을 지키고 있더라. 예를 들어 바다에 들어가서 찍는 장면이라면, 난 '슛'들어가기 10초 전에 들어가려 기다린다면, 박보검은 아예 물 속에 들어가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 식으로 더위든, 추위든 즐기면서 연기하는 박보검을 보면서 나도 현장을 더 즐기게 됐다.”
-사격 금메달리스트 출신 형사 지한나 역의 김소현과도 극 중 격투를 벌이지 않나.
“무술팀의 안전한 지도 하에 촬영해서 함께 액션 합을 맞추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김)소현이는 반가운 동료다. 2012년 MBC 드라마 '보고싶다' 이후 13년 만에 다시 만났다. 그때는 별다른 교류가 없었지만 반가운 느낌으로 촬영했다. 당시에는 소녀였고, 지금은 많이 컸는데도 (김)소현이는 그때 그대로인 것 같다. 그대로 성장해서 이렇게 좋은 작품에서 만났다는, 그런 반가움이 들어서 좋았다.”
배우 오정세. SLL, 스튜디오앤뉴,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 제공. |
“지금까지 내가 하지 못한 액션은 권투다. 그래서 권투선수로 나오고 싶다. 사실 어릴 적 꿈이 운동선수였다. 축구, 태권도, 씨름을 잘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운동에서 멀어졌다. 그래서 운동선수 역을 맡을 기회가 생긴다면 오래달리기, 태권도, 씨름을 했으면 좋겠다. 이 안에 나온 국가대표들도 개인 종목이었다는 점도 흥미로운 점이다. 개인 종목으로 홀로 기록을 세우던 메달리스트들이 한 팀으로 뭉쳐 더욱 재미있게 느껴진 것 같다.”
-'다작 아이콘'으로 불린다. 이에 대한 고민이나 부담감도 있을 것 같은데.
“다작에 대한 고민은 15년 전부터 계속됐다. 2006년 즈음부터 지금보다는 롤이 작았지만 너무 '다작'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 어린 조언을 듣기도 했다. 지금도 그런 고민이 있기는 하다. 언젠가는 속도 조절을 해야 할 순간이 올 수도 있단 생각을 하지만, 아직은 '좋은 작품, 좋은 역할이 있으면 손을 잡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작품 마다 개성 강한 캐릭터를 맡는데 이미지 변신을 염두하고 선택하는 것인가.
“전혀 아니다. 코미디, 악역 등 큰 목표를 잡아 놓고 한 해를 보내는 편은 아니다. 예를 들면, 집을 나올 때 오늘 누구를 만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나. 그저 좋은 사람을 만나서 좋은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문을 열 뿐이다. 그러다 집을 나서면 사기꾼을 만나기도 하고, 좋은 사람도 만나기도 하는 거다. 작품도 똑같다. 누굴 만날지,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어떤 작품일까' 하는 설렘으로 계속 걸어가는 거다. 그렇게 나아가다 보니 지금이 된 것 같다.”
-다양한 캐릭터를 해왔는데 그 중에서 본인과 잘 맞는 스타일이 있다면?
“사실 난 다 어렵다. 코미디를 좋아하고 희극적인 인물도 좋아하는데 제일 어려운 게 코미디다. 웃기려고 하는 게 티가 나면 안되는데도 웃겨야 하는 점이 그렇다. 매 작품마다 새로운 숙제들이 오는 것 같다. 그러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기도 한다. 2020년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문상태 역을 맡은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갑자기 떠오른다. 당시에는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으로 들어갔다. 나는 감정 신이 있으면 몇 달을 고민하며 찍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드라마에서는 상대가 앞에 있으면 감정이 절로 나왔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무기'가 몇 개나 발견됐던 현장이다. 어렵다고 생각한 순간 내가 아는 영역보다 더 넓은 나를 경험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배우 오정세. SLL, 스튜디오앤뉴,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 제공. |
“점차 성장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매해 세로운 오정세를 만난다. 매번 새로운 자극을 받기도 하고. 그러면서 작품과 함께 내가 커가는 느낌이다. 모든 작품들에서 내 안을 꺼내는 방법들이 저마다 달랐다. 내 안에 없는 것을 바깥에서 가져오는 방식도 있었다. 그런 경험이 나한테도 쌓이고 작품에도 잘 쓰여서 좋다. '번아웃'은 없었다. 연기가 안 풀려 어렵고 두려운 마음은 배우로서 당연한 내 몫이다. 그 외에 매번 작업을 해 나가면서 얻는 즐거움, 행복이 너무나도 크다.”
-혹시 거절을 잘 못해서 '다작'을 하는 것은 아닌가.
“예전에는 그랬다. 거절을 잘 못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익숙하지는 않지만 필요한 거절은 잘 한다.정말 좋은 기회인데 물리적인 시간이 안 돼 거절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아쉬운 작품은 특별출연이라도 한다. '폭싹 속았수다'에도 특별출연을 한 건데, 거기에는 더 작은 역할이라도 행복하게 찍었을 거다. '저 안에 참여했어'라는 뿌듯함이 큰 작품들을 만나면 출연한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
-최근에 배우 박병은이 한 유튜브 콘텐트에 나와서 '데뷔 초 함께 프로필 돌리던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잘된 사람이 오정세'라 말했다. 당시를 좀 더 떠올려 달라.
“한 20년 전에 작은 연기자 모임이 생겼다. 거기에서 박병은 배우를 비롯해서 양익준, 우정국 배우 등을 만났다. 난 연극영화과가 아니어서(선문대 신문방송학 졸업) 혼자 프로필을 돌렸다. 그런데 나와 꿈과 같은 사람들을 처음 만나니 진짜 반갑고 좋았다. 그런 나한테 그들이 뿌리, 버팀목이 되어준 거다. 최종 오디션에서 친구들을 만나 경쟁자가 되기도 하고, 한 오디션에 나란히 붙어서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속도는 서로 다르지만, 계속 같은 일을 하고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이들과는 아직도 맨날 옛날 얘기 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
배우 오정세. 프레인TPC 제공. |
“그렇다. 마스크 없이 전철 타고, 버스 타고 다니는데 한 분도 알아보지 않으시던데. 알아봐도 그냥 지나친 분도 계실 거고, 가만히 보면 요즘에는 길에서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보는 편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뭐, 그렇다고 '어?'하고 알아보고 모른 척 해주는 분을 만난 적도 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편으로는 제가 쑥스러움이 많아서 절 알아보신 분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거 같기도 하다. 길가다 아는 척 해 주신 분은 올해 딱 한 분이었다. 바로 그 날이 소속사 대표가 SNS에서 올린 그 날이었다. 서울 용산구 한남오거리 인근에서 대표님과 전시회를 가던 길에 '왜 아무도 널 못 알아 보냐. 더 열심히 해야 겠다'며 농담 섞인 대화를 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저쪽에서 '어?'하며 절 반가워하는 분이 나타났다. 그걸 보고 대표님이 '다행이다'라며 안심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분이 제가 주연한 SBS 드라마 '악귀' 조감독님이었다. 하하하!”
-올해 디즈니+ '북극성' 등 내놓을 드라마들이 아직 남아 있다. 시청자에 기대를 당부하는 말을 남긴다면?
“'북극성'은 김희원 감독님이나 전지현, 강동원 등 출연한 배우들과 길게 호흡을 맞추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출연하게 됐다. 이후 작품에서는 나와는 다른 면모가 담겨 있는 캐릭터도 있고, 나 또한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한 이야기들도 있다. 앞으로도 다양한 모습 보여드릴 테니 많이 기대해주시길 바란다.”
유지혜 엔터뉴스팀 기자 yu.jihye1@jtbc.co.kr
사진=프레인TPC 제공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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