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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버린 말고 글로벌+K [뉴노멀-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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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송파구 아이티(IT)벤처타워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서 열린 ‘인공지능 3대 강국 조기 실현 현장 간담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지난 8일 서울 송파구 아이티(IT)벤처타워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에서 열린 ‘인공지능 3대 강국 조기 실현 현장 간담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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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화 | 연쇄창업가



최근 들어 기술 주권 구호가 크게 울려 퍼진다. ‘소버린 인공지능(AI)’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인공지능, 블록체인 같은 새로운 기술 인프라가 빠르게 전세계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종속될지도 모른다는 모종의 공포심이 잘 먹히는 모양새다. 2000년대 초반 어느 인터넷기업의 광고가 생각난다. “이순신 장군님, 대한민국 인터넷 영토는 다음(Daum)이 지키겠습니다.” 그 ‘다음’도 예전 같지 않고,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야후는 진작 존재감을 상실한 채 명멸해갔다. 정말이지 순식간에 판도가 바뀌는 게 이 바닥 속성이다. 순식간에 위기에 처한 오픈에이아이를 보라.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디지털화폐 시대에 ‘우리도 주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부상했다. 트럼프 집권 이후 날개 돋친 듯 폭발적으로 성장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때문이기도 하다. 알다시피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성공은 기술적 완성도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국가의 구조적 특성(막대한 재정적자와 이를 뒷받침하는 글로벌 국채 수요, 그리고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 기반한다. 원화는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고, 국채 시장도 그만큼 크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한국이 민간 중심으로 원화 기반 디지털화폐를 발행한다 한들, 그것이 안정성과 실사용성을 갖추기란 쉽지 않다. 달러에 대당하는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시작부터 우물 안 개구리 운명을 떠올리지 않기는 어렵다.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이미 만들어진 인프라를 활용하는 데서 기회를 찾는 게 나을 수 있다. 전세계를 연결하는 달러 스테이블코인 네트워크 위에, 우리가 잘하는 것을 얹는 방식 말이다. 웹툰, 게임, 음악, 드라마며 디지털 굿즈와 후원 문화는 전세계 이용자들이 열광하는 분야다. 달러 기반 블록체인에서 결제가 이뤄지더라도, 그 위에 얹혀 있는 콘텐츠가 한국적이고 독창적이라면 영향력은 오히려 더 커진다. 제한적인 우리 통화를 억지로 세계에 퍼뜨리기보다, 글로벌 흐름 위에 ‘케이’(K)를 얹는 쪽이 현실적이고 전략적이다.



소버린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보면 칩, 클라우드 인프라, 대규모 언어모델, 애플리케이션까지 모두 자국 내에서 만드는 ‘풀스택 자립’의 깃발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는 것 같다. 진정한 기술 주권은 물리적 자급자족이 아니라,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기준을 기술에 반영하는 힘이다. 자칫 고립적인 자립을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글로벌 생태계와 단절되어 영향력을 잃게 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모바일 플랫폼 등 여러 분야에서 수차례 그런 ‘삽질의 추억’으로 가슴을 쓸어내린 역사가 있다.



유럽연합(EU)의 전략은 참고할 만하다. 이들은 기술을 다 만들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픈소스 생태계에 적극 참여하면서, 데이터 보호와 알고리즘 투명성 같은 규범적 가치에서 주도권을 행사한다. 가이아-엑스 같은 프로젝트를 통해 데이터 주권을 명확히 하는 한편, 허깅페이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 기여하면서, 유럽의 언어와 법, 사회적 기준을 녹여내려 한다. 완전히 ‘자기 것’을 만들지 않아도, 세계적 흐름에 녹아들며 유럽의 색깔을 지키려는 전략적 행보다.



고립적 자립이 아니라 개방 속 영향력, 닥치고 독자 기술 개발이 아니라 기술 설계 및 활용 규범의 주도권,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택해야 할 방향성 아닐까. 기술이 주도하는 패권 다툼, 글로벌 분업 연관의 재편 속에서, 한국의 문화와 데이터, 우리만의 활용법과 규범을 알맞게 얹는 전략이 필요하다. 글로벌에 케이를 얹는 것, 그것이 진짜 주권이고, 우리가 기술 주도 세계 체제 개편이라는 시대 흐름에 걸맞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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