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을 이틀 앞둔 지난 3월8일 경기 파주시 금촌무지개작은도서관에서 열린 ‘파주이주민문학회’ 시 콘서트에서 필자(무대 맨 왼쪽)가 첼로를 연주하고 있다. 필자 제공 |
박송아 | 첼리스트
“멍울이 크고 딱딱하네요. 3.5㎝ 정도예요. 어? 아래도 뭐가 보여요. 넓게 퍼져 있네요. 림프샘도 부었고 혈관도 좀 늘어져 있어요. 조직 검사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지난해 4월 오른쪽 가슴에 딱딱한 멍울이 만져졌다. 해야 할 일이 많아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8월이 돼서야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삼중 양성 유방암 3기 초. 암이라는 사실도 그랬지만 넓은 범위로 림프샘 전이가 있다는 것이 슬펐다. 항암 치료로 암 덩이가 줄지 않으면 림프샘을 다 떼어내는 곽청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림프 부종이 생기기 쉽고, 림프 부종이 생기면 오른손에 압박붕대를 감고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검사 결과를 받고 가장 이른 날짜를 받아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항암 여섯번, 열한시간의 수술, 방사선 치료 열여섯번을 마치니 아홉달이 지나 있었다. 치료받으며 뼈마디가 녹는 느낌, 몸속에 불이 지나가는 느낌, 손과 발을 바늘로 찌르는 느낌 등 아프기 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통증을 느꼈다. 음식에선 쓴맛과 고무 씹는 것 같은 맛만 느껴졌다. 억지로 밥을 밀어넣었더니 식사 시간이 점점 스트레스가 됐고 나중엔 공포마저 느껴졌다. 속이 너무 타서 새벽 세시에 일어나 얼음을 우걱우걱 씹어 먹고서야 겨우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 빠지던 날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삭발했다.
아프기 전에는 ‘엔(n)잡러’로 바삐 살았다. 대안학교에서 세계시민교육을, 대학교와 대학원에서는 상호문화에 관해 가르쳤다. 문화예술 기획사 대표로 활동하며 장애인식 개선에 힘썼다. 이주 배경 청소년들과 선주민 청소년이 함께하는 뮤지컬을 기획하기도 했다.
여러 일을 하며 사는 동안 일과 쉼의 균형을 맞추어준 것은 첼리스트로 사는 삶이었다. 연주를 위해 연습하고 무대에서 관객을 만나는 순간이 있었기에 바쁜 삶을 살 수 있었다.
첼로 유학 중에 손을 다친 터라 고난도 기술이 요구되는 곡이나 긴 곡은 연주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작은 책방이나 카페 같은 곳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주로 해왔다. 감사하게도 공연할 때마다 찾아주는 분들이 생겼다. 암 진단을 받고 곽청술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나 앞으로 첼로 연주 못 하면 어떡하지?’였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 작은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앞섰다. 관객에게 받은 편지도 생각났다.
‘선생님의 첼로 소리는 꼭 우는 소리 같아요. 다른 사람을 위해 울어주는 소리요. 말 그대로 위로가 돼요.’
그 편지를 받고 내 연주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는 사실이 행복했다. 큰 무대에 설 수는 없지만 계속 첼로를 연주하며 살겠다고 다짐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암이라니…, 첼로를 평생 켤 수 없을 수도 있다니….
한참 동안 다른 일을 하며 살던 나를 다시 무대로 이끌어준 동료가 있다. 그에게 수술 전에 마지막으로 연주하고 싶다고 연락했다. 그는 흔쾌히 제안을 수락해줬고, ‘파주이주민문학회’ 회원들과 의미 있는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공연은 수술을 이틀 앞두고 열렸다. 대만, 일본, 중국, 한국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자기가 쓴 시를 읽었다. 그들의 낭독이 끝나면 첼로를 연주했다. 연주하는 내내 온 마음을 다해 지판을 누르고 활을 그었다. 손톱이 들리고 염증이 심한 상태였지만 아픔 따위는 문젯거리가 되지 않았다.
필자(오른쪽 셋째)가 수술을 이틀 앞둔 지난 3월8일 경기 파주시 금촌무지개작은도서관에서 ‘파주이주민문학회’ 동료들과 시 콘서트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필자 제공 |
조직 검사를 통해 암 덩어리가 완전히 관해(소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림프샘에서도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아 곽청술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부종이 생길까 걱정했던 오른팔도 붓지 않았다. 수술 후 석달째 되는 날 의사 선생님을 만나 제일 먼저 여쭤본 것은 앞으로 첼로 연주를 하며 살 수 있을지였다.
“네, 하셔도 됩니다.”
얼마나 기다린 말이었는지….
암 치료를 하며,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라 기적임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첼리스트로서 사는 삶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됐다. 유방암은 내게 많은 것을 가져다줬다. 고통과 슬픔…, 그것 모두를 덮고도 남을 사랑과 기쁨도 가져다줬다. 암이 오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암에 걸렸기 때문에 알게 된 것들이 많다. 다시 공연을 시작하기로 했다. 욕심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간절함을 담아.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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