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내 연간 건조량 1.5→10척 목표… 'K스피드'로 부활 꿈꾸는 미국 조선업 [르포]

한미 협력 상징, 美 한화 필리조선소 가보니
쇠락일로 美 조선소에 ‘K조선’ 현대화 매직
12월이던 해양풍력지원선 진수, 7월로 당겨
“美해군 전투지원함 프로젝트 참여 논의 중”

1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화 필리조선소(한화필리십야드) 4번 독에서 국가안보다목적선박(NSMV)이 건조되고 있다. 한화필리십야드 제공

1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3시간가량 달려 도착한 펜실베이니아주(州) 필라델피아 소재 한화 필리조선소(한화필리십야드). 길이 330m, 폭 45m 규모인 4번 독(dock·선박 건조 공간)은 둘로 나누어져 있었다. 물이 빠진 절반은 선체 블록(대형 선박 구조물 단위)을 조립하는 공간이었다. 블록을 들어 올려 옮기는 초대형 ‘골리앗 크레인’의 주황색 바탕에 흰색의 한화 영문명 ‘Hanwha’가 선명했다. 필리조선소가 언론에 공개된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물이 채워진 독의 나머지 절반 공간에는 초록색 선미에 흰색으로 배 이름이 적힌 선박이 떠 있었다. 해양풍력발전을 지원하는 해저암석설치선(SRIV) 아카디아(ACADIA)호였다. 마침 이날은 기본 건조가 끝난 SRIV를 진수(進水·새로 만든 배를 처음 물에 띄움)하는 날이었다. 현장을 안내한 이종무 필리조선소 조선소장은 “저 배가 (지난해 12월 한화그룹이) 이 조선소를 인수했을 때 올해 12월 진수하겠다고 했던 배”라며 “점검해 보니 7월로 시기를 당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하겠다고 했더니 기존 매니저들이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하지만 한국인 생산 관리자 32명과 주재원 12명이 밤낮없이 일해 결국 달성했다”고 소개했다.

5번 독에서는 이미 진수를 마친 국가안보다목적선박(NSMV)의 의장(艤裝·배에 필요한 선구나 기계를 설치하는 일) 작업이 한창이었다. 미국 교통부 산하 해사청(MARAD)이 발주한 이 선박은 한화가 필리조선소 인수 뒤 처음 진수한 배다. 평소 해군사관생도 1,000명가량을 태우고 선박 운항 교육용으로 쓰이다 재난이나 전쟁 때는 병원선으로 용도가 바뀐다. 현재 필리조선소의 수주 잔고는 총 7척(NSMV 3척, 컨테이너선 3척, SRIV 1척)이다.

작년 인수 뒤 생산 속도 향상 주력

1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화 필리조선소(한화필리십야드)의 전경. 필라델피아=권경성 특파원

필리조선소는 한때 미국 내 대형 상선 절반을 공급했던 곳이다. 미국 동부에서 대형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조선소는 이곳이 유일했다. 그러나 지금은 1년에 고작 1.5척을 만들 뿐이다. 미국의 조선 산업이 침체하면서다. 선박 브로커 기업인 배리 로그리아노 살리스(BRS) 그룹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국이 6,756척, 일본이 3,120척, 한국이 2,405척을 건조하는 동안 미국 조선소는 겨우 37척을 인도했다.

사정이 이런 만큼 한화가 꼽는 급선무는 생산 속도 향상이다. 이 소장은 “10년 내에 연간 건조량을 10척까지 늘리는 게 공식 목표지만 내부적으로는 2030년까지 달성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 한 척 가격을 약 3억 달러(약 4,000억 원)로 잡으면 현재 6,000억 원 수준인 연 매출을 5년 내에 4조 원으로 키워 보겠다는 것이다.

작년 말 필리조선소 인수 때 1억 달러(약 1,400억 원)를 투자한 한화는 일단 시설 현대화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을 예정이다. 이 소장은 “600만 달러(약 84억 원)를 투자해 골리앗 크레인 밑 유휴 부지를 블록 생산 현장으로 바꾸는 중이다. 작은 블록을 여기서 더 크게 조립하고 골리앗 크레인이 한 번에 들어 탑재하게 되면 회전율을 높일 수 있다”며 “600만 달러는 한화가 인수하기 전 이 조선소가 1년간 투자한 금액”이라고 말했다.

“10년간 상선·군함 등 200척 수요”

1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소재 한화 필리조선소(한화필리십야드)의 조립 공장 전경. 한화필리십야드 제공

시급히 할 일은 그뿐만이 아니다. △내업(실내 작업) 공장의 병목 공정 해소 △골리앗 크레인 운영 효율성 증대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한국 거제조선소의 용접 로봇이나 자동화 설비 같은 ‘스마트 야드’ 시스템 도입 등이 추진되고 있다. 이 소장은 “올해는 지난 10년간 필리조선소가 쓴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

수요는 충분하다는 게 한화 측 판단이다. 현재 미국은 중국에 크게 뒤처진 조선업 분야의 추격을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다. 향후 10년간 정부가 250척의 전략상선단을 구축하고 2047년까지 미국산 선박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운송 비중을 최대 15%까지 확대한다는 게 골자인 일명 ‘선박법’(SHIPS for America Act)이 5월 의회에서 초당적으로 발의됐다. 군함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소장은 “현재 미국 국방 예산이 전투함, 핵잠수함, 항공모함 등 공격 함정에 편중돼 있지만 전투를 하려면 선단이 나가야 하고 지원함들도 필요하다. 지원함을 빨리 건조해 줄 수 있다면 이를 상업화해 외국 기업에도 발주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향후 10년간 상선·군함을 막론하고 200척 이상의 선박 수요가 미국에서 창출되리라는 게 한화 예상이다.

이미 한미 간 국방 분야 조선 협력은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데이비드 김 한화 필리조선소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한국 특파원단 대상 간담회에서 “해군의 전투함뿐 아니라 전투지원함 건조에 쓸 추가 국방 예산 200억 달러(약 28조 원) 이상이 승인됐다. 상원과 하원이 이 예산의 세부 집행 계획을 논의 중”이라며 “해군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제공요청서(RFI) 2, 3개를 제출했고 지금도 계속 제출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해군(사업) 진출”이라며 “현재 우리는 미국 해군과 몇몇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데 필리조선소가 향후 해군 선박 건조를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프로그램들”이라고 부연했다.

용접 견습생 첫해 연봉이 7,000만원

16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화 필리조선소(한화필리십야드)의 ‘트레이닝 아카데미’에서 한 견습생이 용접 실습을 하고 있다. 필라델피아=권경성 특파원

생산 능력을 강화하려면 빼먹을 수 없는 게 인력 양성이다. 이날 조선소 내 ‘트레이닝 아카데미’에서는 견습생들이 용접 훈련에 매진 중이었다. 미국인과 결혼했다는 튀니지 출신 셀림(36)은 “한화가 인수한 뒤 거대한 선박 야드에 걸어가면 모든 게 확장되고 있는 게 보인다. 진전이 없는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미래가 밝다고 느낀다. 그게 에너지를 준다”고 말했다.

인력 충원은 지역사회에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하는 상생 협력 모델이다. 마이크 지안토마소 인사팀 부사장은 “견습생 첫해에 연봉 5만 달러(약 7,000만 원)와 각종 복지·연금 등 혜택이 제공된다”며 “2021년 견습생 40명을 배출한 트레이닝 아카데미에서 올해는 120명을 채용하고 2027년까지 연간 240명으로 규모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인섭 한화오션 사장은 “조선이 한미 안보 동맹과 전략적 산업 협력의 교집합인 만큼 향후 양국 관계에서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며 “필리조선소에 선제 투자한 한화가 이를 교두보로 미국 민수·군수용 시장을 개척하겠다”고 말했다.

필라델피아=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