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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국주의’ 시대는 이제서야 활짝 열리나 [아침햇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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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본영 | 경제산업부 선임기자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을 통치하려고 선출됐지 세계의 황제가 된 건 아니다”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50% 관세를 매긴다고 위협하고 내정 간섭을 노골화하자 17일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많은 나라 지도자들이 자신들을 대변한 속 시원한 표현이라고 했을 법하다.



‘트럼프 황제’라는 말까지 나오는 터라 구태의연한 질문이 떠오른다.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인가 아닌가? 제국주의라면 어느 정도나 제국주의 국가인가? 세계인들은 오랫동안 의문을 품어왔다. 답을 구하는 데는 제국주의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도 중요하다. 미국은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던 전형적 제국주의 국가들과는 분명 달랐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패권국 행태가 비난을 샀다.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는 한국인들도 답을 구하려고 했다. 미국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한국이라는 국가·사회의 성격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1980~90년대에 좌파는 한국이 반식민지인지 신식민지인지를 두고 논쟁했다. 우파 쪽은 이런 발상을 터부시했다. 그들에게 이런 사고와 표현들은 불경스러운 것이다.



요즘은 좌우를 떠나 ‘미국이 이상해졌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전세계에 관세 채찍을 휘두르며 조금이라도 깎으려면 선물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행태는 비교할 사례를 찾을 수 없다. 협상 방식도 희한하긴 마찬가지다. 학생들을 모두 무릎 꿇린 뒤 하나하나 숙제 검사를 해서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집에 못 돌아가게 하는 식이다. 많은 나라 인사들이 몇번이고 워싱턴에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지만 숙제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여러 나라를 괴롭히리라는 예상은 일반적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를 내다본 이는 많지 않았다. 트럼프는 동맹한테 더 가혹하다고들 한다. 동맹이니까 더 만만해서 그러는 것이다. 제국주의 질서에서는 사실 대부분이 종속국이고 진짜 동맹은 드물다. 트럼프는 캐나다와 그린란드를 합병하겠다고까지 하니 ‘이게 제국주의 아니면 뭐냐’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럼 트럼프는 정통에서 벗어난 이단, 큰 흐름에서 일시적으로 튄 돌연변이일까? 미국은 반제국주의의 기둥을 자처해왔다. 일찍이 제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는 “미국은 쳐부술 괴물을 찾아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여러 미국 지도자들이 구세계(유럽)의 부도덕함에 탄식을 쏟아냈다. 1차대전 말기인 1918년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한 것은 중요한 사건이다. 1956년에 수에즈운하 국유화를 선언한 이집트를 상대로 전쟁에 나선 영국을 미국이 주저앉힌 것도 결정적 장면이다.



하지만 미국을 ‘순수한’ 반제국주의 국가로 본다면 어떤 기준으로 따지더라도 순진한 것이다. 흔히 미국은 영토적 욕심이 없는 패권국이라고 한다. 그러나 근대적 제국주의가 발전하던 19세기에 미국은 서부로 확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다 건너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미국 영토의 60%가량은 19세기에 빼앗고, 할양받고, 매입한 것이다. 넓은 땅에서 실행한 노예노동, 노예해방 뒤 흑인의 처지는 그 어떤 식민지의 참혹함도 능가했다. 하와이, 쿠바, 필리핀, 그 밖의 태평양 여러 섬을 점령한 것을 봐도 영토 욕심이 없었다고 하기 어렵다. 미국은 자국이 속한 아메리카대륙 국가들을 심하게 억압했다.



미국 역사에는 이처럼 야누스적 측면이 있다. 미국 엘리트들은 전략적 이해와 도덕적 가치 사이의 모순이라는 설명을 제시한다. 미국은 모순이 발생하면 주저 없이 가치보다 이익을 택했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민주주의와 자유를 옹호하는 모습으로 비치려고 했다. 그런 마케팅이 미국의 이미지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 사실 예전의 중화제국이나 소련 같은 맹주국들도 자신을 따르는 국가들에는 후한 척을 했다. 중국 쪽은 주변국들과 조공무역을 하면서 상대에게 더 이익이 되게 배려하기도 했다. 소련은 자국보다 잘사는 동유럽 국가들에 에너지 등을 싸게 대주며 충성을 확보하려고 했다.



트럼프의 독창성은 이런 대국다움, 윤리성, 위선 같은 거추장스러움을 홀랑 벗어던진 데 있다.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거치면 그의 기세가 꺾이리라고 기대하는 사람도 많다. 퇴임 때 역대 최고령 미국 대통령 기록을 세울 그는 어차피 3년 남짓이면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두번이나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미국인들은 어디 가지 않는다.



대기만성의 ‘미제국주의’ 시대는 이제서야 활짝 열리나?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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