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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슈퍼맨'이 망하길 바랐다 [김도훈의 하입 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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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화 '슈퍼맨'

편집자주

김도훈 문화평론가가 요즘 대중문화의 '하입(Hype·과도한 열광이나 관심)' 현상을 예리한 시선으로 분석합니다.


영화 '슈퍼맨'.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슈퍼맨'.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나는 ‘슈퍼맨’이 망하길 바랐다. 잭 스나이더의 팬이라서는 아니다. 그가 연출한 ‘맨 오브 스틸’(2013)은 열정적인 팬이 많다. 열광적인 팬이 많다. 정확하게는 광적인 팬이 많다. 이들은 슈퍼맨을 새로 만든다는 사실 자체를 싫어했다. 유행하는 단어로 설명하자면 잭 스나이더 팬들은 스스를 테스토스테론이 강한 '테토남'이라 생각한다. 에스트로겐이 강해 여성스러운 '에겐남'의 반대다. 그들은 남성적인 액션을 잘 만드는 테토남 잭 스나이더가 만든 테토남 슈퍼맨이야말로 슈퍼맨의 최종 단계라고 믿는다. 슈퍼히어로 영화 따위에 감정을 이입하는 게 테토남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보기에 그건 궁극의 에겐남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감독 제임스 건이 만든 새 ‘슈퍼맨’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슈퍼맨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둘 기세다. 마블 유니버스를 버리고 도망친 그가 망해버린 DC 유니버스를 재조립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스파이더맨의 마블과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의 DC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독자도 몇 없을 것이다. 코믹스 팬이 아닌 사람에게는 이 유니버스도 저 유니버스도 다 쫄쫄이 입은 남자들 싸움터에 불과하다. 슈퍼맨이 적에게 얻어터지는 에겐남처럼 묘사됐다고 화를 내는 잭 스나이더 팬들의 분노도 마찬가지다. 그래봐야 파란 쫄쫄이 위에 빨간 팬티 입은 남자들 싸움이다.

내가 ‘슈퍼맨’이 망하길 바랐던 이유는 하나다. 지겨워서다. 지겹다. 지겨워 죽겠다. 반백 년을 살면서 지나치게 많은 슈퍼맨을 봤다.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1978)이 처음이었다. 3, 4편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정도로 망했다. 2006년에는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가 ‘슈퍼맨 리턴즈’를 만들었다. 흥행에 실패해 속편은 나오지 않았다. ‘맨 오브 스틸’은 ‘배트맨 vs 슈퍼맨’(2016), ‘저스티스 리그’(2021)로 이어졌다. 줄줄이 망했다. 그리고 2025년 새 ‘슈퍼맨’이 나왔다. ‘배트맨’(1989)의 팀 버튼이 연출하고 니컬러스 케이지가 주연한 슈퍼맨 영화가 나올 뻔도 했다. 그건 너무 괴상해서 오히려 흥미로웠을 것 같기는 하다.

영화 '슈퍼맨'.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슈퍼맨'.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슈퍼맨이 필요한가? 슈퍼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배트맨도 1989년 작 ‘배트맨’ 이후 지나치게 많은 버전이 나왔다. 어린 시절 배트맨 눈앞에서 부모가 총에 맞아 죽는 장면만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다. 그 장면들은 머릿속에서 뒤엉킨 나머지 어떤 영화에 나온 것인지도 구분하기 힘들 지경이다. 로버트 패틴슨이 주연한 ‘더 배트맨’(2022)은 배트맨이 부모가 살해당한 아이를 쳐다보며 과거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장면으로 대체했다. 만드는 사람들도 아는 것이다. 도돌이표처럼 매번 반복되는 장면을 또 집어넣는 게 얼마나 지겨운 짓인지 깨닫고 있는 것이다.

슈퍼히어로 영화는 끝나가고 있었다. 마블은 ‘어벤져스 : 엔드 게임’(2019) 이후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올해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 뉴 월드’도 망했다. DC도 ‘플래시’(2023) 참패로 거의 생명이 끝나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블 장인 제임스 건 감독이 DC 상징 슈퍼맨에게 인공호흡기를 다는 데 성공했다. 비극적인 일은 내가 제임스 건의 ‘슈퍼맨’을 재미있게 봤다는 사실이다. 슈퍼맨의 문제는 압도적 능력치다. 흠 없이 강한 남자로는 현대적 블록버스터를 만들기 힘들다. 이번 슈퍼맨은 경솔하고 감정적인 데다 계속 적에게 얻어터진다. 이러니 긴장감이 다시 돌아왔다. 유머도 늘었다. 예전의 슈퍼맨과 다른 슈퍼맨을 만들어 계속 팔아먹으려는 의지가 먹힌 것이다.

영화 '슈퍼맨'.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슈퍼맨'.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작년 워너브러더스의 가세를 흔든 영화는 봉준호의 ‘미키 17’이었다. 기운 가세를 지겹지만 또 돌아온 슈퍼맨이 끌어올렸다. 이건 어쩌면 오리지널 시나리오 기반 블록버스터의 죽음을 의미하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될지 모른다. 제작사도 관객도 더는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는다. 익숙한 IP(지식재산권)에만 돈을 쓴다. 아는 것만 보고 싶어 한다. 낯선 것은 피곤한 것이 됐다. 그러니 배트맨은 돌아올 것이다. 스파이더맨도 돌아올 것이다. 슈퍼맨도 계속 돌아올 것이다. 할리우드는 빨간 팬티를 파란 쫄쫄이 위에 입힐까 안에 입힐까를 계속 논의할 것이다. 2045년쯤 나는 또 칼럼을 쓰고 있을 것이다. 그 칼럼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슈퍼맨’이 망하길 바랐다.”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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