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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m 정상의 부자, 밤하늘 은하수 세례를 꿈꾸다 박준형의 아이와 백패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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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빛으로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 박준형 제공

붉은빛으로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는 아이. 박준형 제공


파릇한 녹음이 드리운 지난 6월, 싱그러운 숲 내음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아침이었다. 나와 아들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강원도 정선과 평창에 걸쳐 솟은 가리왕산(1561.85m)이었다. 산 정상인 상봉까지 오르는 등산로는 가리왕산자연휴양림 심마니교 코스와 장구목이 코스, 중봉(1433m)을 거치는 회동리휴양지 코스와 숙암분교 코스 등 4개 코스가 대표적이다. 최단 코스로 평창 발심사까지 차로 이동해서 산행하는 방법도 있지만, 산의 다양한 면모를 즐기기엔 다소 아쉽다. 숙암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케이블카는 가리왕산의 하봉(1381m)까지만 허락한다. 가리왕산의 이끼계곡과 울창한 원시림을 두루 만끽하고 싶었던 우리는, 장구목이 코스로 올라 심마니교로 하산하며 가리왕산을 가로지르는 종주 산행을 계획했다.

가리왕산 장구목이 코스로 등반하는 아이. 박준형 제공

가리왕산 장구목이 코스로 등반하는 아이. 박준형 제공


“오늘은 제법 힘들 거야, 아들. 각오 됐지?” 얼마 전 생일이 지난 9살 서진이는 나를 흘끗 보며 답했다. “몇번째 얘기하는 거야, 아빠. 그래서 이번에는 배낭도 가볍게 꾸려줬다며.” 장구목이 코스는 정상까지의 표고 차가 1100m가 넘는 쉽지 않은 코스다. 배낭의 무게가 체중의 20%를 넘지 않도록 신경 썼다. 외국 아웃도어 전문가들 말을 빌리자면 적정 배낭 무게는 자기 체중의 20% 이내여야 한다. 서진이 체중은 27㎏. 최대 5.4㎏이 적정 배낭 무게다. 이날 서진이는 4.6㎏ 배낭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앞서 걷던 아들이 말을 이었다. “오늘 밤은 한국에서 제일 높은 데서 만나는 밤이겠네. 별도 많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 아홉번째로 높은 가리왕산은 백패킹으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산이다. 해발고도가 제일 높은 한라산부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 함백산, 태백산, 그리고 여덟번째로 높은 오대산까지는 모두 야영이 금지된 국립공원이기 때문이다.

가리왕산 장구목이 코스로 등반하다가 도착한 이끼계곡에서 작은 폭포를 관찰하는 아이. 박준형 제공

가리왕산 장구목이 코스로 등반하다가 도착한 이끼계곡에서 작은 폭포를 관찰하는 아이. 박준형 제공


흐르는 계곡 물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산길에 올랐다. 졸졸 흐르며 청각을 간지럽히던 물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덧 힘차게 쏟아지는 물길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빠, 바위가 전부 녹색이네. 다 이끼야?” 시간이 내려앉은 초록빛 바위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줄기는 장구목이 코스 이끼계곡을 수놓는 9개 작은 폭포 중 첫번째인 제1폭포였다. 크고 작은 폭포의 향연을 만끽하며 등산로를 걸었다. 가리왕산은 흙으로 이루어진 육산이다. 이끼와 풀이 자라던 땅에 빛을 좋아하는 나무가 터를 잡았다. 그 아래엔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음지성 식물이 자리를 넓혔다. 다양한 생명이 자라고 쌓이며 형성된 원시림은 장엄했다. 풍혈지대의 특성을 지닌 가리왕산의 대자연이 뿜어내는 천연 에어컨 덕분에 우리는 더위를 잊은 채 걸음을 이어갈 수 있었다.

너른 바위에 몸을 맡긴 채 쉬고 있는 아이. 박준형 제공

너른 바위에 몸을 맡긴 채 쉬고 있는 아이. 박준형 제공


가리왕상 정상에 선 우리 부자. 박준형 제공

가리왕상 정상에 선 우리 부자. 박준형 제공


“와! 하늘이 보인다. 거의 다 왔나 봐, 아빠.” 하늘을 뒤덮고 있던 울창한 나무숲이 걷히며 모습을 드러낸 파란 하늘이 우리를 향해 미소 지었다. 정상에는 먼저 도착한 백패커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백패킹은 많은 아빠 백패커들의 로망일 건데요, 그 로망을 실현하고 계시네요! 보기 좋습니다!” 경기도 양평에서 왔다는 이수원(47)씨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대학생 딸과 함께 덴마크로 2박3일 75㎞를 걷는 부녀 백패킹을 다녀올 정도로 열정이 넘쳤던 그였지만, 최근 운동 중 아킬레스건을 다쳐 한동안 산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가리왕산 정상은 밤하늘이 맑은 날이면 맨눈으로도 은하수를 관찰할 수 있다고 그가 말했다.

어느덧 서쪽 하늘이 붉은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아빠, 오늘 밤 은하수가 보일까?” 물끄러미 일몰을 바라보던 아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따가 같이 볼래?”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는 9살과 나란히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꿈꾸며 말이다.

글·사진 박준형 ‘오늘도 아이와 산으로 갑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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