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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물난리는 난리도 아니여"... '물폭탄' 맞은 광주 곳곳 상흔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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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상가 등 침수 피해 속출
상인들 "하늘에 비는 수밖에"
6·25 전적지 옛 산동교도 부숴
5년 전 수해 때보다 더 심해


18일 광주 북구 신안교에서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전날 광주에는 하루 426.4㎜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6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신안교 부근에서 실종됐다. 광주소방본부 제공

18일 광주 북구 신안교에서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전날 광주에는 하루 426.4㎜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6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신안교 부근에서 실종됐다. 광주소방본부 제공


평년 7월 한 달 치 강수량(294.2㎜ )의 두 배 가까운 426.4㎜ 폭우를 17일 하루 만에 쏟아낸 광주는 18일 물이 빠진 상가가 흙투성이가 되고 오래된 보행 다리가 파손되는 등 도시 곳곳에 상흔을 드러냈다. 이날 잿빛 구름이 걷히고 햇볕이 잠깐 들자, '물 먹은' 도심 곳곳에선 수마(水魔)가 할퀸 상흔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용봉동의 한 상가 앞 보도 턱에 전날 극한 호우에 휩쓸려 떠내려온 승용차가 절반쯤 걸쳐 있다.

18일 오전 광주 북구 용봉동의 한 상가 앞 보도 턱에 전날 극한 호우에 휩쓸려 떠내려온 승용차가 절반쯤 걸쳐 있다.


"그때(2020년 8월) 물 난리는 난리도 아니여."

이날 오전 광주 북구 용봉동의 한 상가 지역. 전날 침수 피해를 입은 식당에서 식기류 등을 정리를 하던 윤모(59)씨는 연방 혀를 내둘렀다. 윤씨는 "어제 폭우가 내릴 땐 1~2분 만에 도로에 어른 무릎 높이 이상으로 물이 차올랐다가 비가 그칠 땐 또 물이 싹 빠졌다가를 하루 종일 반복해 불안에 떨었다"며 "인근 복개 하천이 범람한 데다 하수까지 역류한 탓"이라고 말했다. 그는 "5년 전 여름에도 집중호우로 중앙분리선에 설치된 70㎝ 남짓한 볼라드(자동차 진입방지 말뚝) 수십 개가 물에 잠겨 사라졌는데,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며 손으로 식당 너머 도로 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어디서 떠내려온지 모르는 승용차 한 대가 보도 턱에 절반쯤 걸쳐 있었고, 인근 신안교 일대에선 경찰들이 전날 밤 급류에 실종됐다는 60대 남성을 찾는 수색 작업이 한창이었다.

18일 오후 광주 상습 침수 지역인 남구 백운광장 주변 주택가에서 재난 당국 관계자들이 폭우에 대비해 상가 앞에 모래주머니를 쌓고 있다.

18일 오후 광주 상습 침수 지역인 남구 백운광장 주변 주택가에서 재난 당국 관계자들이 폭우에 대비해 상가 앞에 모래주머니를 쌓고 있다.


물폭탄이 빠져나간 삶의 터전이 흙투성이가 된 것은 도심의 다른 지역도 비슷했다. 광주천을 끼고 있는 서구 양동시장과 상습 침수 지역인 남구 백운광장 주변 상가 한 편. 이날 새벽부터 폭우가 그치자 상인들은 흙투성이가 된 생계 터전(가게)과 상품들을 일일이 물로 씻어내거나 주변을 청소하는 등 복구 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특히 이날 오후부터 19일까지 최대 300㎜의 호우가 내릴 거라는 기상 당국의 예보가 뒤따르자 빗물 역류 방지용 모래주머니를 곳곳에 무릎 높이로 쌓았다. 생선 가게를 운영하는 정모(57)씨는 "오늘 밤은 제발 무탈하게 넘어가 달라고 하늘에 비는 것 말고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의 가게 코앞에 있는 광주천 태평교 아래에선 거의 다리 상판 밑까지 차오른 흙탕물이 금방이라도 주변을 덮칠 듯 넘실거렸다.

18일 광주 북구 동림동 옛 산동교가 전날 극한 호우에 교각이 파손돼 상판이 휘어 있다. 연합뉴스

18일 광주 북구 동림동 옛 산동교가 전날 극한 호우에 교각이 파손돼 상판이 휘어 있다. 연합뉴스


'물 폭탄'은 현충 시설이자 광주의 유일한 6·25전쟁 전적지인 옛 산동교마저 부쉈다. 광산구 신창동과 북구 동림동을 잇는 영산강 주요 교통로였던 폭 6m, 길이 228m의 이 다리는 전날 극한 호우에 견디지 못한 듯 교각이 부러져 꺾여 있었고 곳곳에 균열이 생겨 위태로워 보였다. 북구 관계자는 "폭우로 휩쓸린 토사가 다리를 덮치면서 파손된 것으로 보인다"며 "주변 출입을 전면 통제한 후 안전 진단을 통해 수리 작업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주시는 이번 집중호우로 도로 침수 300건, 건물 침수 263건, 배수 불량 115건, 차량 침수 49건, 사면 피해 36건, 도로 파손 24건 등 총 889건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전남도에선 집중호우로 인한 농작물 침수와 가축 폐사가 잇따랐다. 도에 따르면 벼, 논콩, 과수 등 2,924ha가 물에 잠기고 오리 4만2,000마리, 닭 1만5,500마리 등 4개 농장에서 5만7,000여 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주택가, 상가 등 197곳이 침수 피해를 봤다. 도로 34곳이 유실되거나 침수됐으며 하천 6곳의 수위가 상승했다.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18일에도 오후 들어 또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해 더 큰 피해가 나올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광주지방기상청은 이날 오후 4시를 기해 전남 12개 시군(고흥·보성·장흥·강진·해남·완도·영암·무안·함평·영광·목포·신안)에 호우경보를 발효했다. 광주와 전남 9개 시군(나주·담양·곡성·구례·장성·화순·여수·광양·순천)에는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6시 기준 16일부터 내린 폭우로 4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다. 충청권에서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데 이어 광주 북구에서만 2명이 실종돼 수색을 벌였다. 전국에서 3,967세대 6,073명이 일시 대피했으며 958세대 1,811명은 아직 귀가하지 못했다. 866세대, 1,666명에게는 임시주거시설이 제공됐다. 전국 247개교에서 휴교(29곳), 등교시간 조정(59곳), 단축수업(156곳), 원격수업(3곳) 등 조처를 했다.

전국에서 공공시설 피해도 636건 접수됐다. 도로 침수가 387건으로 가장 많았고 토사유실 105건, 하천시설 붕괴 56건 등이 발생했다. 민간 사유시설에서는 572건 피해가 접수됐는데 건축물 침수 241건, 농경지 침수 32건 등이었다. 여객선 1개 항로 1척(묵호-울릉)은 운행이 중단됐고, 비행기 51편도 결항됐다. 고속열차는 정상 운행됐으나 일반 열차 중 9개 구간이 운행 중지됐다. 전국의 지하차도 10곳, 도로 47곳, 하천변 256곳이 교통 통제를 했다. 전국 가구 2만1,816호에서 55건의 일시 정전이 발생했다가 현재는 전부 복구됐다.


광주=글·사진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이재명 기자 nowl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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