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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캠프 참사 12주기…30살 된 친구는 오늘도 그 기억을 꺼낸다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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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충남 공주사대부속고등학교에서 열린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12주년 희생학생 추모의 날’ 행사에서 재학생 동아리인 ‘하람 합창단’이 참사로 희생된 선배들을 기리는 헌정공연을 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18일 충남 공주사대부속고등학교에서 열린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12주년 희생학생 추모의 날’ 행사에서 재학생 동아리인 ‘하람 합창단’이 참사로 희생된 선배들을 기리는 헌정공연을 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12년 전 그도 태안의 바다에 있었다. 열여덟의 여름, 시꺼먼 바다에서 친구 다섯을 잃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살아 돌아온 소년에게 그날의 기억은 가혹한 것이었다. 서른살의 청년이 된 지금까지도 그 고통은 문득 “분노와 슬픔”으로 때론 “공허함과 무력감”으로 그의 곁을 맴돌고 있다.



“이 사건이 제게 어떤 의미였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말밖엔 나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제가 처한 상황에 따라 너무도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어느 하나의 말로 그 의미를 일축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18일 오전 충남 공주사대부설고등학교에서 열린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12주년 희생학생 추모의 날’ 행사에 57기 동문을 대표해 참석한 강우승씨는 친구들을 허망하게 떠나보낸 그 날을 떠올렸다. 2013년 7월18일 공주사대부고 2학년 학생들(57기)은 학교체험활동으로 해병대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충남 태안으로 떠났다. 캠프는 해병대와는 상관없는 ‘사설’이었고, 교관의 절반은 수상안전(인명구조요원) 자격증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날 오후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지 못한 채 캠프 교관의 지시에 따라 뒷걸음으로 바다에 들어가다가 깊어진 수심에 허우적댔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학생 5명(김동환·이병학·이준형·장태인·진우석)이 다음 날 숨진 채 발견됐다.



그 이후 공주사대부고는 매해 7월18일 희생 학생들의 유가족과 함께 학교에서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추모행사’를 열고 있다. 강씨는 추모행사에서 올해로 세 번째 동문을 대표해 인사말을 했다. 그는 “불쾌하고 슬픈 느낌이 떠오르는 걸 감수하고도 나는 그들의 부재가 남기게 된 의미를 계속 묻는다. 내 기억이 단지 고통에 머물다가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해서다. 그 사람들이 갖고 있던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가 정말로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한 발버둥”이라며 “그들의 죽음이 어떤 의미가 되어 이 사회에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선 그 아픔을 말하고, 기록하고, 나누고, 물려주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학생 후배들이 오래 연습해 준비한 헌정 합창공연이 끝난 뒤 다른 57기 동문들과 함께 단상에 오른 강씨는 매해 함께 추모하는 후배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하며 “이 자리는 하나의 공동체가 어떻게 아픔을 기억해나가는지, 그 공동체가 어떻게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 그 아픔을 품어나가는지, 어떠한 방식으로 책임감을 가져나가는지를 볼 수 있는 자리이다. 이 자리가 남긴 흔적이 머지않은 미래에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게 됐을 때 좀 더 큰 책임감으로, 조금 더 서로를 연민할 수 있는 넓은 마음으로,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에게 손을 한번 더 내밀어 줄 수 있는 선함으로 자리 잡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18일 충남 공주사대부속고등학교에서 열린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12주년 희생학생 추모의 날’ 행사에서 재학생들이 고인이 된 선배들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18일 충남 공주사대부속고등학교에서 열린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12주년 희생학생 추모의 날’ 행사에서 재학생들이 고인이 된 선배들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뒤이어 유가족을 대표해 단상에 오른 동환군의 아버지 김영철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오늘 이곳에는 12년 전 교정에 함께 있던 당시 2학년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어느새 서른의 청년이 됐고, 지금은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 일원으로 성취한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며 “참 바라볼수록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이렇게 성장한 친구들을 보고 있노라면 부질없음을 잘 알면서도 아이들의 얼굴이 그들에게 투영되면서 환영이 보이곤 한다”고 했다. 올해도 유가족들은 매해 이 학교에서 진행하는 ‘안전의식고취 백일장’에 입상한 학생들에게 오성장학회와 이준형장학회 이름으로 장학금을 수여했다.



학교를 대표해 추모사를 낭독한 이행신 공주사대부고 교장은 내내 울먹이며 “교내에 있는 추모관과 학생안전수련원에 있는 메모리얼관을 통해 다섯별들은 ‘수학과 과학을 잘하고, 운동을 잘해 친구들로부터 인기가 많았으며, 그저 보기만 해도 좋은 사람이었고, 웃는 모습이 밝아 주변 사람들을 편하게 해줬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난치병 치료제를 개발하는 화학자가 되겠다던 동환이, 경찰대에 진학해 프로파일러가 되고 싶다던 병학이, 의사가 돼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겠다던 준형이, 회계사를 꿈꿨던 태인이, 글을 잘 써 방송 피디(PD)나 저술가가 꿈이라던 우석이는 공주사대부고의 인물을 넘어 우리나라의 재목으로 성장할 아이들이었는데 꿈을 제대로 펴지 못한 채 별이 됐다”고 했다.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12주년 희생학생 추모의 날’ 행사 초대장에 담긴 참사 희생자 고 김동환·이병학·이준형·장태인·진우석 군의 모습. 최예린 기자

‘태안 사설 해병대캠프 참사 12주년 희생학생 추모의 날’ 행사 초대장에 담긴 참사 희생자 고 김동환·이병학·이준형·장태인·진우석 군의 모습. 최예린 기자


공주대 총장은 추모사를 통해 “2013년 7월 그날 이후로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세월호, 이태원, 오송지하차도, 무안여격기추락 등 참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짐하지만, 아직도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적극적인 제도 개선이 미흡한 것이 현실”이라며 “12년 전 그날의 비극은 공주대 공동체 전체에 깊은 각성과 교훈을 안겨줬다. 그날의 아픔을 잊지 않고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경각심을 늦추지 않겠다. 다섯 학생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다. 사랑하는 자녀를 떠나보낸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했다.



이날 추모행사 뒤 유가족과 추모객들은 충남 천안공원묘원으로 이동해 희생 학생들의 묘역을 참배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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