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국가였던 아일랜드의 첫 여성 대통령인 메리 로빈슨(1990~1997)은 참모들의 우려를 뿌리치고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분쟁이자 아일랜드계 가톨릭과 영국계 개신교 간 유혈 충돌의 기억이 생생한 북아일랜드를 네 차례나 찾았다. 그는 가톨릭과 개신교 지역을 방문해 정치적 발언을 대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내부 반발에도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만나기도 했다. 이런 그의 행보는 1998년 '굿프라이데이 협정(Good Friday Agreement·벨파스트 협정)'으로 이어졌고, 아일랜드 현대 정치사에 길이 남는 통합의 상징이 됐다.
먼 나라의 옛 대통령 이야기를 꺼낸 것은 취임 40여일을 보낸 이재명 대통령의 행보에 거는 기대 때문이다. 높은 단상을 걷어내고 호남, 충청을 찾아 타운홀 미팅 형식을 빌려 지역 주민들로부터 '날것'의 이야기를 들었다. 세월호·이태원 참사 등 대형 참사 유가족 207명을 초청해 고개 숙여 사과했고, 전방 지역 주민들에게 고통과 불안을 안겼던 대북 전단 살포를 막는가 하면, 대북 확성기 방송도 중단했다.
만남은 진영을 불문했고, 그 통합의 의지를 내각 인선에 담았다. 최단기간 여야 지도부를 모두 만나 협조를 요청하는가 하면 함세웅 신부·백낙청 교수 같은 진보적 인사를 비롯해 보수 논객인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정규재 전 한국경제신문 주필과도 오찬을 가졌다. 1기 내각 인선을 하면서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인사들을 일부 유임시켰고, 상대 진영 출신 정치인을 장관 후보자로 등용했다. 범여권의 우려가 빗발치면 정무수석을 몇번이고 보내 설득하고, 협조를 구했다.
연합뉴스 |
이 대통령은 40여일 전만 해도 공격적이며 팬덤(Fandom)에 휩싸여 균형 잡힌 사고를 할 줄 모른다는 부정적인 수식어가 따라다닌 정치인이었다. 균형적 사고의 정치를 선보일 수 있을지에 관한 의문이었다. 정치인은 결국 행동과 결과로 평가받는다. 만델라와 로빈슨도 급진적이라고 평가 받는 인물이었다. 특히 만델라는 대통령이 된 직후에도 '테러리스트' '가장 위험한 흑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통합과 소통의 행보를 멈추지 않았다. 주지하다시피 대통령 되고 시간이 흘러 그 평가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언급한 그대로다.
이 대통령은 "(시작할 때보다) 임기를 마칠 때 지지율이 더 높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다. 이제 한 걸음을 내디딘 통합과 소통의 여정은 고단하고, 시간이 한참 흘러도 원하는 만큼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노력이 '견고한' 지지로 바뀌는 전환점은 반드시 온다. 득표율 62%로 당선됐던 만델라의 마지막 지지율은 70%, 52%로 시작한 로빈슨의 임기 말 지지율은 93%였다.
임철영 정치부 차장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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