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다호랑이’. 영화로운형제 제공 |
육상효 | 영화감독
영화 ‘바다호랑이’를 보았다. 침몰한 세월호에서 희생자들을 모시고 왔던 잠수사의 이야기다. 영화는 연극의 무대 같은 실내 세트에서 전부 촬영되었다. 처음부터 감독이 선택한 방식은 아니라고 들었다. 제작비 유치에 수월치 않아서 어느 정도 강요된 방식이었다. 상황이 강요했다고 선택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감독은 이런 때 제작을 포기하는 쪽을 선택하지만, 정윤철 감독은 다른 방식으로 만드는 것을 선택했다. 다르다는 것은 일반적인 장편 상업영화가 구사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지 틀렸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영화에서는 배우의 출연료, 스태프들의 인건비, 다양한 장소에서의 촬영 진행비가 제작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 영화에는 스타 배우가 나오지 않고, 정윤철 감독이 연출에 각본, 촬영과 편집까지 직접 하면서 최소 인력으로 촬영하며 비용을 줄였다. 결정적으로 그리 크지 않은 한곳의 스튜디오에서 모든 장면을 촬영하면서 획기적으로 비용을 줄였다. 거리도, 가정집의 안방도, 술집도, 차 안도, 바지선 위도, 심지어 바닷물 속까지도 실내에서 촬영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 영화는 아주 적은 제작비로 완성될 수 있었다. 미니멀한 제작비는 미학의 미니멀리즘을 유도하였다.
이 영화가 왜 투자 유치에 실패했고, 왜 좀 더 많은 극장에서 상영하지 않았고, 왜 더 많은 사람이 보지 않았는지는 이 글의 핵심은 아니다. 다만 월요일 오전의 한 작은 극장에서 혼자 이 영화를 보면서 내 마음속에서 계속 떠오른 문장은 ‘자신의 비겁함을 옹호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슬픔을 외면하는 것은 그 슬픔에 대한 스스로의 비겁함과 무력함을 옹호하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위안은 이 비겁을 옹호함으로써 생겨난다. 영화 속에서 나경수 잠수사도 자신의 비겁을 옹호하고 슬픔을 외면하려 했지만 끝내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다.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자고 있는 그의 집 작은 안방이 그가 침몰한 배로 헤엄쳐 간 유일한 이유였다. 영화 속 안방은 벽도 없는 스튜디오 무대에 이불을 깔고 사람이 누운 게 전부지만, 그것은 어느 것보다도 나 잠수사의 행동에 결정적인 심리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귀하다.
세상에는 연극이 먼저 있었고, 20세기에 들어서야 영화가 나타났다. 영화는 처음에는 연극 무대를 그냥 찍었고, 사람들은 움직임이 기록되는 것만으로도 열광했다. 조르주 멜리에스는 장면을 만들었고, 디더블유(D.W.) 그리피스는 커트와 편집을 만들었다. 스토리 매체로서 영화가 연극에 앞선 것은 사진으로 재현되는 현실의 핍진성이었다. 하지만 영화 ‘바다호랑이’의 모든 장면은 최소한의 무대 장치가 부여한 기호들에 의해서 관객의 머릿속에서 다시 조립되어야 했다. 핍진성은 우회됐고, 영화 속 현실과 실제 현실은 차이가 났다. 그 간극은 배우들의 얼굴로 메워졌다. 배우의 얼굴만이 화면에 가득 차는 클로즈업은 수천억원짜리 블록버스터 영화나 최소 제작비의 이 영화나 전혀 차이가 없었다. 사람의 얼굴은 이 영화 속에서 가장 절실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고 그 자체로 생생한 현실이 되었다. 클로즈업은 특히 물속 장면에서 효과적이었다. 물 한방울 없이 촬영된 장면에서 아이들을 처음 만나는 순간의 얼굴은 수중촬영으로는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풍경이었다. 김탁환 작가의 원작을 읽을 때는 이 장면에서 후두둑 울음이 터졌지만, 영화를 보면서는 숨이 멎었다. 진짜 물속이라면 물안경과 각종 장비에 얼굴은 가려졌을 것이다. 잠수사가 그 순간 흘린 눈물조차 바닷물에 섞여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푸른빛으로 드러나는 잠수사의 얼굴은 거기가 우리 모두의 슬픔이 가라앉은 심해라는 것을 말했다. 수백억원의 제작비가 주어졌더라도 감독은 이 장면만은 이렇게 선택하고 연출했을 것 같았다. 잠수사를 연기하는 배우의 얼굴에서 나는 나의 비겁함을 목도하고, 다시 슬픔을 마주했다.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것은 그 얼굴이 전하는 진실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한번도 울진 않았다. 하지만 잠수사들의 고통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우회된 현실성은 관객의 감정을 통제하면서 진실에 대한 성찰적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영화의 마지막이 밝았던 것은 그 진실의 소통이 주는 순간적인 위안이었다. 이런 작은 소통과 위안으로라도 우리는 다시 살아가고,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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