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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은 곁을 내어주는 것…신간 '있기 힘든 사람들'

연합뉴스 송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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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임상심리학자 도하타 가이토(東畑開人)씨는 일본 명문 교토대를 나왔다. 9년이나 공부해 마침내 박사 학위를 땄다. 학교에 남으라는 주변의 권고도 있었지만, 환자를 돌보고 싶었다. 그는 구직 활동을 했으나 시장 상황은 좋지 않았다. 시급 1천~1천500엔(9천300백원~1만4천원) 전후의 일이 대부분이었다. 자식까지 키우기에는 턱도 없는 금액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정신병원에서 낸 모집공고를 봤다. 월 25만엔(234만원)에 반년마다 보너스가 있는 조건이었다. 구직활동 중 처음 보는 좋은 여건이었으나 오키나와(沖繩)라는 근무 장소가 걸림돌이었다.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를 수도권인 가나가와에서, 대학교를 교토에서 보냈다. 자꾸만 서쪽으로만 가는 그에게 친척들은 '삼장법사'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오키나와는 그 별명을 완성할 만한 장소였다. 일본에서 갈 수 있는 서쪽 끝에 있었으니까.

장소가 마뜩잖았지만, 도하타 씨는 결국 그 병원에서 근무하기로 했다. 상담 업무가 70%, 돌봄이 20%, 기타 잡무가 10%로, 상담에 치중한 업무 분장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취업하는 순간,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업무의 대부분이 사실 '돌봄'이라는 사실이 머지않아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교토대 [연합뉴스 자료사진]

교토대
[연합뉴스 자료사진]


최근 출간된 '있기 힘든 사람들'(다다서재)은 조현병 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에세이다. 조현병 환자들의 특징과 돌봄이 주를 이루지만, 책은 한 젊은 임상심리학자의 성장 이야기기도 하다. 저자는 병동에서 환자들을 만나며 돌봄의 진짜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한 필치로 그렸다.

책에선 박사 학위만 따면 환자들을 치유하는 데 탁월한 성과를 낼 것이라고 생각한 저자의 실패담이 면면히 이어진다. 조현병 환자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먹물'의 착각에 불과했다. 세상은 교과서대로 흘러가지도, 선의지만으로 흘러가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저자는 취업 전까지 알지 못했다. 때로는 억누르는 것, 마음속 괴로운 것을 흘러나오게 하는 것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치료도 중요했지만, 외로울 때, 곁을 내어주는 것이 도움이 되는 순간들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나는 그때 상담 흉내 따위를 낼 게 아니라 둘이서 함께 '있어야' 했다. 함께 지루하게, 앉아 있어야 했다…준코 씨가 원했던 것은 치료 따위가 아니라 돌봄이었다. 그는 마음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주변을 단단하게 다져서 안정시키길 원했던 것이다."

돌봄 강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돌봄 강화
[연합뉴스 자료사진]


저자는 환자 곁에 있으면서, '돌봄'의 의미, 즉 '함께 있는 것'의 의미를 서서히 깨달아 나간다. 책은 '있기'를 가능하게 하는 돌봄, 돌봄과 의존의 원리, 돌봄의 상호교환성, 능동과 수동도 아닌 '중동태'(中動態)로서 존재하는 돌봄, 허드렛일로 치부되는 돌봄 노동을 둘러싼 고민, 이별과 죽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등 돌봄과 삶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쉬운 문체로 들려준다.

쉽고, 때로는 웃기지만 그 내용마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 속에 점점 소외돼 가는 노동, 빈부 격차, 개인의 불안과 실존 등 묵직한 내용이 편편히 흘러간다.


저자는 돌봄시설에 "시가 있고, 농담이 있고, 웃음이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돌봄시설에는 상처와 슬픔, 상실이 흘러넘치지만, 그와 동시에 웃음도 가득하기 때문"이다.

책은 2020 일본 기노쿠니야 인문대상 대상 수상작이자, 제19회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 수상작이다.

김영현 옮김. 376쪽.

책 표지 이미지[다다서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책 표지 이미지
[다다서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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