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16일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
2020년 봄,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의 글로벌 확산을 막기 위한 시민들의 행동 지침을 제시했다. ‘social distancing’. 당시 우리 정부도 아무런 고민 없이 이를 ‘사회적 거리 두기’로 번역해 사용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상했다. ‘사회적 거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대부분은 사람들 사이의 심리적·정서적·관계적 거리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행동 지침이었다. 그러니 전문가들도 “서로 1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계속 해명하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깨달은 세계보건기구는 ‘물리적 거리 두기(physical distancing)’로 대체하기를 제안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세계는 이미 사회적 거리 두기로 고착되었다. 물론 팬데믹 기간 사람들 사이에 혐오가 크게 늘어난 현상이 이 구호 때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확하지 않은 용어 때문에 심리적 혼란이 벌어졌고 혐오 행동이 방조됐을 수 있다. 세계 보건 역사상 최악 구호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명칭은 중요하다. 특히 정책 용어는 명징하고 적확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꺼내 든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우려할 만한 엇갈린 신호다.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이 정책의 취지를 “지역 거점 대학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체계적 육성을 통해 수도권 중심의 교육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얼마나 긴급하고 중요한 안건인가! 관건은 ‘이 큰 예산(연간 최대 6조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이며, 그 돈으로 지역 불균형 완화와 교육 혁신을 이끌어낼 실질적 방안은 무엇인가’일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구호 자체가 이런 취지를 전혀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취지에 반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우선, 한국에서 ‘서울대’는 뿌리 깊은 서열의 상징이다. “지역 대학을 상향 평준화해 대학 서열을 완화하겠다”고 한다면, 서열의 정점에 있는 이 단어를 슬로건에 쓰면 안 된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코끼리에 집착하는 것처럼, 과도한 입시 경쟁을 막겠다며 ‘서울대’라는 단어를 꺼내는 순간 우리는 그 서열에 더 집착하게 된다. 팬데믹 기간에 ‘사회적 거리 두기’가 친구의 안부 전화조차 망설이게 하지 않았던가? ‘서울대 10개’는 대학 서열 구도에 지역을 또다시 가둘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프레임 효과에 따른 획일성이다. 이 구호에 대해 지역 대학 관계자들의 마음은 다분히 양가적이다. 지역 대학에 투자와 지원을 해준다니 반갑긴 하지만, 불편하고 자존심도 상한다. 원본이 아니라 복제본 취급을 당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 정부가 ‘하버드 10개 만들기’라는 구호를 내걸었다고 치자. 아마도 우리는 “각 대학의 특성을 무시한 획일적 발상”이라며 비난할 것이다. 유럽 프로축구 리그에서 토트넘이나 파리 생제르맹 팀에 ‘레알 마드리드 10개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라고 해보자. 구단 선수, 관계자뿐 아니라 팬들이 난리를 칠 것이다.
진화 관점에서 보면 유전 정보의 온전한 ‘복제’도 필요하지만 적응을 위해 돌연변이와 재조합도 필수다. 즉 생존은 ‘변이(다름)’에서 탄생한다. 세계 명문 대학들이 각자 고유한 생태계를 갖추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MIT는 군사·산업 연구의 산실이었고, UC버클리는 자유와 반문화의 요람에서 혁신 DNA를 길러냈으며, 영국 임피리얼칼리지는 의공학 특성화를 통해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와는 전혀 다른 색깔을 만들어냈다.
획일성의 상징처럼 오해받는 중국도 예외가 아니다. 항저우의 저장대는 알리바바 생태계와 맞물려 전자상거래와 핀테크 연구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선전의 남방과학기술대학은 프로젝트 중심의 학사제와 파격적 연구 창업 인센티브로 중국 본토에서 가장 실험적인 대학으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렇게 세계 명문 대학은 뿌리 내린 지역, 산업과 끊임없이 재조합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혁신 코드를 만들어냈다. 이들을 보면 지역성, 수월성, 그리고 다양성이 명문 대학의 기준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서울대 10개’라는 슬로건으로 역행 신호를 보내고 있다.
되돌아보면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구호는 물리적 안전과 심리적 고립을 동시에 요구하는 불일치 신호였다. ‘서울대 10개 만들기’도 명확히 엇갈린 신호다. 정책 내용을 논하기 전에 명칭부터 가다듬어야 한다. 정책의 말투가 정책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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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익 가천대 스타트업칼리지 석좌교수·진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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