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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소한 재벌’의 두 얼굴, ‘뉴마’의 분노 [특파원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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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와하하그룹 창업자 쭝칭허우 회장. AP 연합뉴스

중국 와하하그룹 창업자 쭝칭허우 회장. AP 연합뉴스




이정연 | 베이징 특파원



‘천 신발 부자’(布鞋首富)라는 별명을 얻은 기업가가 있었다. 고급 신발이 아닌 서민들이 신는 신발을 신던, 중국 음료기업 ‘와하하’(娃哈哈) 창업주 쭝칭허우를 일컫는다. 중학교만 마치고 여러 일을 전전하던 그는 1987년 식음료 유통회사를 차리고, 이어 음료 제조업에도 뛰어들어 중국 최대 음료기업으로 키웠다. 한때 중국 최고 부자로 꼽혔지만, 소박한 삶을 이어갔다. 출장을 갈 때도 고속철도는 2등석, 항공편은 이코노미석을 고집하고, 한해 개인적으로 쓰는 돈은 5만위안(약 980만원)이 넘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2024년 2월 그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중국인은 ‘애국 기업가’에 대한 애도를 표했다.



쭝칭허우가 숨지고 1년5개월 지나 중국 언론에 다시 소환되고 있다. 이번엔 존경과 추앙의 대상에서 배신감을 안겨준 기업가가 됐다. 그가 남긴 유산 상속 문제가 공개되면서 소박한 국민 기업가의 실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쭝칭허우 사망 뒤 그와 첫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쭝푸리가 회장직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미국 국적을 가진 3명의 자녀가 7월 초 유산 분배를 요구하는 소송을 홍콩과 항저우 법정에 동시에 냈다. 3명의 자녀는 20억달러에 이르는 국외 신탁 자산의 분배를 요구했다. 유명 기업가의 혼외 자녀와 유산 상속. 여기까지는 ‘막장 드라마’와 비슷한 전개다.



“우리 가문에는 외국인도, (미국) 영주권도 없다.” 쭝칭허우는 2013년 이렇게 말했다고 중국 경제매체 차이중서(财中社)는 전했다. 그러나 이번 유산 상속 소송을 통해 쭝칭허우가 미국 국적의 혼외 자녀를 뒀고, 그의 자산을 미국에 옮겨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일부 홍콩 매체는 쭝푸리 현 회장 역시 미국 국적을 갖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단순한 가족 간 재산 분쟁을 넘어서, 중국 사회 저변에 깔린 불신과 배신감이 터져 나왔다.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 등에선 “결국 부자들은 다 외국으로 돈을 빼돌리는구나” “천 신발 부자의 신화가 무너졌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런 분노와 좌절은 사회적 상실감을 배경으로 한다. 중국은 세계 두번째 경제 대국이지만, 빈부 격차는 여전히 심각하다.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4년 1인당 가처분소득 최상위 20%의 평균 소득은 하위 20%의 10.8배에 이른다. 중국 정부는 소득 격차를 줄이기 위해 사회보장 제도를 확대하고, 청년층 고용 보조금을 도입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와하하 유산 분쟁’으로 드러난 두 얼굴의 ‘애국 기업가’는 보통의 중국인들에게 상실감을 주고 있다. 장화 저장대학 교수는 차이중서에 “공인들의 도덕적 공약은 사실과 일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뢰 위기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중국식 현대화를 통한 소득 증대와 빈부 격차의 완화 그리고 반부패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고위층·부유층의 자산 탈출은 멈추지 않고 있다. 그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적 책임과 의무도 마찬가지다. 와하하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온 이른바 ‘뉴마’들의 불만과 비판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고 있다. 뉴마(牛馬)는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소나 말처럼 일하는 노동자를 자조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한 중국 소셜미디어 이용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좋은 지위를 가진 모든 사람은 미국에서 다음 세대를 낳았고, 소와 말은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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