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이재성 | 논설위원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제임스 로빈슨의 공저 ‘좁은 회랑’은 동서고금의 역사를 종횡무진하며 정치와 경제의 관계에 관한 중대한 통찰을 제시한다. 토머스 홉스가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에 비유한 국가권력을 시민사회가 적절히 통제할 수 있을 때 ‘족쇄 찬 리바이어던’이라는 좁은 회랑에 진입해 번영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의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중앙권력이 약한 ‘부재의 리바이어던’은 징세와 기반시설 건립을 비롯한 공적 기능을 수행할 능력이 없어서 번영은커녕 국민의 안전조차 지키지 못하고, 옛 소련처럼 국가가 너무 강한 ‘독재적 리바이어던’은 자유와 경제를 모두 억압하게 된다.
일단 무국가 사회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를 벗어나면, 국가는 독재로의 ‘미끄러운 비탈’을 달리게 된다. 저자들이 ‘엘리트 포획’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보편적이며 관성이 강해서 독재의 경로에서 벗어나 ‘좁은 회랑’에 진입하는 확률은 낮을 수밖에 없다. 국가와 엘리트는 동의어이며, 민주주의 지속 가능 여부는 사회가 엘리트를 통제할 능력이 있는지에 달려 있다.
‘윤석열 내란 사태’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깊이 엘리트에 포획되어 있었는지 확인한 암흑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사회가 엘리트를 제압할 능력이 남아 있다는 걸 확인한 희망의 시간이었다. 현대 민주사회의 운영체제인 법을 장악한 법조 엘리트 집단이 어떻게 법을 교란하여 제멋대로 활용하는지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목격했고, 법조 엘리트의 전횡을 제도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일이 내란 이후 최대 과제로 떠올랐다.
법조 엘리트 가운데 검찰의 경우, 수사·기소 분리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들이 ‘검찰개혁 4법’을 발의했고, 토론회를 통한 숙성 과정을 거치는 등 순차적인 일정이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사법개혁에 대해서는 ‘실종 사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논의가 전무하다. 대법원이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술접대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힌 지 두달이 지났지만, 조사가 끝났는지, 계속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마치 이 사안이 침묵 속에 잊히길 바라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론의 망각을 틈탄 뭉개기와 제 식구 감싸기는 권력기관들의 흔한 관행 아닌가.
사법부는 진실과 거짓을 결정하는 권력의 최종심급이다. 정치권력과 달리 임기가 없는 영구권력이며, 어떠한 심판도 받지 않는 절대권력이다. 국회와 언론의 견제와 감시는 구속력 없는 허울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권력을 공부 잘하는 순으로 뽑힌 사법관료들에게 맡겨두고, 심판도 견제도 감시도 없이 사실상 방치해왔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정치권력이 민주화됐으므로 사법민주화도 자연스레 이뤄졌다고 생각했지만, 사법부 독립이라는 헌법적 외투를 되찾은 사법부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갈라파고스가 되었다. 사법부의 구성 방식과 운영 원리는 박정희 유신시대 그대로다. 제3공화국(1963~1972)까지 대법원장의 경우, 판사들(법관추천회의)이 제청하면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했고,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법관추천회의 동의를 얻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했는데, 박정희가 법관추천회의를 폐지했다. 대통령이 대법원장을 직접 임명하고,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추천하는 수직 구조가 이때 완성됐다. 민주화 이후 법원은 가장 전근대적인 관료주의 조직으로 전락했다. 지금 사법부는 독재자가 부여한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을 사법부 독립이라는 미명 아래 지키고 있는 꼴이다.
사법개혁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민주주의 원리를 관철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법개혁보다는 사법민주화가 더 적확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법부 독립은 소중한 헌법적 가치이지만, 사법민주화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사법독재 면허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력을 법관들에게 돌려주고, 일반 국민이 재판과 기소에 참여하는 배심제를 도입하여, 전관예우를 통해 돈으로 법을 사고파는 부패 구조를 해체해야 한다. 물론 대법관 증원과 다양화도 필요하다.
‘좁은 회랑’의 저자들은 기술과 생활 수준이 한때 세계 최고였던 중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한 이유를 의회와 시민사회의 국왕 견제 능력에서 찾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세계정치학회 서울총회에서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례들이 이 책에 집대성되어 있다. 우리 민주주의에 지금 필요한 처방은 사법엘리트에 족쇄 채우기다.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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