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차미’ 공연 장면. 페이지1 제공 |
청춘의 그림자는 늘 흔들리며 아른거린다. 그 시절엔 불확실과 기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누구나 길을 잃고 방황한다. 희망과 꿈, 고통과 좌절, 갈등이 혼재하는 청춘은 예술 작품의 단골 소재다. 이런 청춘이 품은 질문과 갈망을 조명하는 작은 창작 뮤지컬 두편이 지금 서울 대학로 소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젊은 날의 열망과 상처를 이야기하면서도 공통적으로 따뜻한 위로를 전하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5월 말 대학로 티오엠(TOM) 시어터에서 개막한 뮤지컬 ‘차미’(8월24일까지)는 이번이 삼연째다. 토니상 쾌거를 올린 ‘어쩌면 해피엔딩’을 발굴한 우란문화재단의 2016년 작곡가·작가 개발작에 선정된 작품으로, 2020년 초연부터 기발한 발상으로 주목받았다. 평범한 대학생 차미호(임예진·홍나현·이재림·해일리)가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허영을 채워 넣으며 만든 가상의 ‘부캐’(부캐릭터) 차미(이봄소리·정우연·허윤슬·박새힘)를 현실 공간에서 만나면서 겪는 좌충우돌 해프닝을 그린다. 통통 튀는 에너지와 유쾌한 상상력으로, 누구나 겪었을 법한 청춘의 혼란을 코믹 소동극처럼 풀어낸다.
차미호의 현실 자아와 가상의 차미가 만나는 순간은, 웹툰 원작이 아닌데도 만화 속 장면처럼 발랄하고 유머가 가득하다. 관객은 두 인물의 실랑이에 웃음을 터뜨리며 어느새 자신의 내면에도 그런 자아가 있음을 떠올리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은 로맨틱 코미디처럼 경쾌하게 흘러가지만, 그 중심에는 디지털 세대가 겪는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묵직한 주제가 자리 잡고 있다.
차미호가 만들어 낸 또 다른 자아인 차미는 처음에는 화려한 삶의 환상을 자아내지만, 이내 그 화려함 뒤에 숨은 불안과 고독을 보여준다. 에스엔에스라는 공간이 청춘의 욕망을 증폭시키는 동시에, 외로움을 더욱 깊이 파고든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결국 외부의 시선이 아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진정한 자아를 찾는 길임을 깨닫게 한다.
밝고 발랄한 넘버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 빠른 호흡의 전개를 통한 코미디가 매력 포인트로, 공연을 보고 나오면 시원한 맥주 한잔이 생각나는 유쾌한 작품이다.
‘다시, 동물원’ 공연 장면. 하트앤마인드 제공 |
지난달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개막한 주크박스 뮤지컬 ‘다시, 동물원’(9월14일까지)은 조금 더 서정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정서를 품고 있다. 올해 10주년, 오연째를 맞은 이 작품은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를 풍성하게 했던 밴드 ‘동물원’의 음악과 삶을 배경으로 한다. 창기(류제윤·정욱진·오경주), 준열(김이담·장민수·정이운), 기영(박상준·석현준), 경찬(문남권·홍은기) 등 실제 멤버 이름을 사용한 주인공들과 고 김광석을 떠올리게 하는 ‘그 친구’(오승윤·한승윤·박종민)의 갈등과 화해가 주된 이야기다. 이들은 밴드의 음악과 함께 지나온 시절의 아픔과 그리움, 그리고 잃어버린 꿈을 돌아보며 청춘이라는 이름 아래 희미하게 사라진 기억을 되살린다. ‘거리에서’ ‘변해가네’ ‘혜화동’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등 넘버로 사용된 동물원 노래가 흐를 때마다 관객은 지난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동물원 실제 멤버 박기영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다시, 동물원’은 젊은 시절이 가진 그리움과 미련,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각자의 삶에서 다양한 형태의 상실을 경험하고, 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성숙해간다. 작품은 청춘은 결코 화려하기만 한 시절이 아니며, 때로는 가슴 아픈 추억의 무게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진솔하게 전한다. 노래도 좋지만 학업과 취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멤버들과, 자유롭게 노래하고 싶어하는 ‘그 친구’ 사이의 갈등은, 결국 음악을 매개로 마음의 벽을 허물고 화해하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무대 위에 되살아난 김광석의 존재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영감으로 작용하며 깊은 울림을 남긴다. 공연장을 나오면 소주 한잔이 생각나는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청춘의 본질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의 내가 진짜 나인지, 지나간 날들에 대해 어떻게 화해할 수 있는지를. ‘차미’가 디지털 세계에서 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요즘 청춘의 심리를 명쾌하고 감각적으로 그려낸다면, ‘다시, 동물원’은 조금 더 담백하고 아련한 방식으로 과거의 청춘과 현재의 삶을 잇는 다리를 놓는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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