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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조선업 강국의 조건

서울경제 유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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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종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상근부회장


많은 나라들이 조선업 육성과 재건에 나서고 있다. 어떤 나라가 조선 강국이 됐고, 왜 쇠락했으며, 과거의 영광으로 복귀는 가능할까. 최근 호황에도 불구하고 한국 조선업에 대한 우려도 있는 만큼 역사적 사례들을 살펴봤다.

대양을 운항하는 선박이 등장한 15세기 ‘대항해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조선 강국을 보면 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영국·미국·일본·한국·중국 순이다. 한국을 제외한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강력한 선박 수요, 안정적 공급망, 풍부한 노동력과 자본, 그리고 앞선 과학기술 등에 있다.

조선 강국은 당대 패권국이었다. 패권국은 바다 너머 타국까지 힘을 투사하기 위해 강한 해군을 필요로 했다. 또 광물·향료·노예·공산품 등을 교역하며 부를 쌓고자 하는 모험적인 자본가들이 많았다. 제국 해군과 자본가들은 대양 운항 선박에 대한 수요를 창출했고 조선업 번성의 기반을 제공했다.

조선 강국은 선박의 주자재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었다. 목선시대 주재료는 오크목이어서 목가공 산업이 발달했다. 당대 조선 강국은 공급망 확보를 위해 국가적 조림사업을 하거나 식민지에서 목재를 수탈했다. 철선시대에는 철강업을 중심으로 연관 기자재를 만드는 산업 생태계가 필수였다.

조선 강국은 금융 강국이기도 하다. 선박은 값비싼 자본재이다. 비극적으로 침몰한 여객선 타이태닉호는 1912년 영국에서 건조 당시 750만 달러, 현재 가치로는 2억 달러에 달한다. 네덜란드 조선업의 황금기인 17세기 세계 최초의 주식시장이 암스테르담에 개설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조선 강국은 풍부한 노동력이 있었다. 함선시대 조선소에서는 목수, 대장공, 돛 제작자, 칠공 등의 숙련 직무와 청소·정돈·진수 등 단순 직무에 많은 인력을 썼다. 반드시 본국 출신일 필요는 없었다. 식민지든 이웃나라 출신이든 현장의 고된 노동을 감내할 수 있으면 충분했다. 17~18세기 러시아 부국강병을 이끈 표트르 대제는 네덜란드 조선소에 목공으로 위장 취업해 선진 기술을 배웠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배의 진수식과 함께 고단한 진수공들의 합창으로 시작된다.


끝으로 조선 강국은 당대 과학기술의 리더였다. 이베리아에서 캐러벨선·갤리온선 등 대양 항해에 적합한 선형들이 개발됐고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였다. 최초의 증기선은 미국에서 만들어졌다.

한편 조선업 쇠퇴는 외부적 또는 내부적 요인이 촉발했다. 외부적 요인은 경쟁국의 도전이다. 19세기 말 제국 간 경쟁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승리로 정리되면서 영국이 조선업을 주도했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의 생산성 향상이 한계에 이르자 주도권은 임금이 싼 일본으로 넘어갔다. 또 일본의 생산 혁신이 정체되자 인건비·자재비 등 비용 경쟁에서 유리한 한국·중국이 앞서나갔다.

한국 조선업의 성공은 매우 예외적이어서 기적이라 할 만하다. 1970~1990년대 조선업 성장기에 내수시장도, 산업 생태계도, 자본도, 기술도 미숙했다. 하지만 모험적인 기업가와 성실하고 우수한 인력들이 의기투합해 신화를 일궜다. 정부도 좁은 내수 시장을 보호하는 규제 산업으로 두지 않고 수출 제조업으로 조선을 지원했고 더 넓은 시장에서 선진 조선업체와 경쟁하게 했다. 한국은 이렇게 제국만 가능했던 조선 주도국 지위에 올랐다. 최근 생산인구 감소로 조선업이 중대한 변곡점에 섰다. 모든 관계자가 머리를 맞대고 역대 조선 강국의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유민환 기자 yoogiz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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