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머니투데이 언론사 이미지

[투데이 窓]극장과 국회의사당

머니투데이 박동우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원문보기
박동우(무대미술가, 홍익대공연예술대학원교수)

박동우(무대미술가, 홍익대공연예술대학원교수)



'좌익사범 및 간첩신고 포상 최고 5000만원.'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지하철 전동차 안에 붙어 있던 스티커의 내용이다. 제헌절을 맞아 좌익이란 말의 공간적 어원을 알아보고 나라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의 공간적 성격을 비교해본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들은 저마다 규모에 맞는 극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 극장에서 매년 봄 농번기를 앞두고 1주일 동안 포도주와 풍요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연극제를 바쳤다. 그렇다면 나머지 기간엔 극장이 비어 있었을까. 아니다. 극장은 공회당과 행사장으로 자주 쓰였다. 요즘의 극장과 시민회관의 기능을 한 셈이다.

고대 그리스의 극장은 기본적으로 반원형의 객석을 가지고 있다. 관객들은 공연을 보면서 동시에 무대 건너편에 앉은 다른 관객들을 볼 수도 있다. 배우들은 관객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므로 정면뿐만 아니라 좌우까지 의식하며 연기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관객들 속에 있음을 의식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무대와 객석의 친밀도가 높아지고 관객들끼리 유대감도 커진다.

대사 비극보다 액션 활극을 선호한 고대 로마인들은 또 하나의 극장을 발명했다. 콜로세움으로 대표되는 원형극장이 그것이다. 그곳에서 동물사냥극, 검투, 해상전투극 등 다양한 활극을 구경했다. 원형극장에는 방향이 없다. 위계도 없다. 모든 방향이 정면이고 무대는 평평하다.

연극이 금지됐던 중세 1000년이 지나고 16세기 유럽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극장이 생겨났다. 액자틀 극장이 그것이다. 모든 관객이 액자 속 그림을 보듯 한 방향을 향해 앉는 극장이다. 액자틀 극장은 오랜 극장 공백기를 깨고 빠르게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고 오늘날 극장의 대명사가 됐다. 그 액자틀에 스크린을 걸면 자연스럽게 영화관으로 변한다. 영화관을 극장이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요 각국의 국회 본회의장 구조는 극장과 닮았다. 크게 대립형과 반원형, 영화관형으로 나눌 수 있으며 각각의 공간적 특성은 다음과 같다.


'대립형'은 영국식이라고도 하며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국가가 채택했다. 의장석을 중심으로 야당 의원들은 왼쪽에, 정부·여당 의원들은 오른쪽에 앉는다. 이 좌석배치가 '좌익'(left wing)과 '우익'(right wing)이라는 정치용어의 기원이 됐다.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국민의회에서도 의장석을 기준으로 좌우로 나뉘어 앉았는데 왼쪽에는 왕정폐지와 공화정 수립을 주장하는 세력이 앉았고 오른쪽에는 기존 왕정유지를 주장하는 보수적인 세력이 앉았다. 이들을 좌익, 우익이라고 불렀다.

'반원형'은 대륙식으로도 불리는데 의장석을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의원석이 배열돼 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 국가가 채택한 형태다. 정당별 의석배치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유럽연합 의회의 형태는 독특하다. 반원형보다 포위각을 더 확대해 원형에 가깝다. 27개 회원국의 의석을 좀 더 평등하게 배치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영화관형'은 일당독재 국가들이 택하는 형태다. 중국, 북한, 베트남, 쿠바 등의 국회 본회의장의 모든 의석은 단상무대 한 곳을 바라본다. 이는 당의 지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민주집중제 원리를 시각적으로 구현한 형태로 집단주의 및 통일성을 강조한다. 자유로운 토론보다 효율적인 정보전달에 유리하다. 나치독일의 영화관형 의회와 현대 독일의 반원형 의회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뚜렷하다.


대한민국 국회는 반원형을 택했다. 그리고 현재 22대 국회에서는 의장석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국민의힘, 중앙에는 더불어민주당, 오른쪽에는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소수정당의 의석이 배치돼 있다. 그렇다면…. 국민의힘은 좌익? 농담이다. 고대 그리스의 반원형 극장에서처럼 국민과의 친밀함과 유대감이 더 커지는 국회가 되기를 제헌절을 맞아 기대해본다.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통일교 특검법
    통일교 특검법
  2. 2김장훈 미르 사과
    김장훈 미르 사과
  3. 3정희원 라디오 폐지
    정희원 라디오 폐지
  4. 4김민우 용인FC 영입
    김민우 용인FC 영입
  5. 5캐셔로 이준호
    캐셔로 이준호

머니투데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