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소추 법률대리인단의 실무총괄을 맡았던 김진한 변호사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회의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
김진한(57·클라스한결) 변호사가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국회 탄핵소추위원을 맡고 있던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만난 시점은 지난해 12월16일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고 이틀이 지난 뒤였다. 정청래 의원은 국회 법사위원장실에서 김 변호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탄핵소추 법률대리인단의 실무총괄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대리인, 그 가운데서도 실무총괄을 맡아달라는 말에 걱정이 컸다. 실무총괄은 탄핵심판을 위해 대리인단을 구성하고 심판 과정에서 헌법적 논리를 세울 뿐 아니라 소송절차와 변론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주도적으로 챙겨야 하는 자리였다. 고민 끝에 맡기로 했다. 기회가 온 이상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12일간의 탄핵 여정이 시작됐다. 4월4일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윤석열에게 파면을 선고했다.
7일 출간된 ‘국민이 지키는 나라’(푸른숲)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이 파면이라는 헌법적 심판을 받기까지, 헌법을 무기로 최전선에서 맞섰던 이들의 기록이다. 김진한 변호사를 비롯한 국회 탄핵소추 법률대리인단 17명(이광범, 장순욱, 이금규, 성관정, 김현권, 김선휴, 김정민, 서상범, 김남준, 전형호, 황영민, 박혁, 이원재, 권영빈, 송두환, 김이수)과 정청래 의원이 책의 공저자들이다.
책의 부제는 ‘싸우고 증명하며 기록한 112일간의 탄핵심판 이야기’다. 책 편집자가 공저자 18명을 인터뷰해, 대리인단에 합류하게 되었을 때의 심정, 심판정에서 느꼈던 어려움과 감정들, 동료와의 관계 등 질문에 대한 답을 담았다. 계엄의 위헌·위법성을 넘어 개별 대리인들의 고유한 헌법 이야기를 녹인 공저자 각각의 최종변론문도 실었다.
지난 4월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가 끝난 뒤 국회 측 변호인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
정청래 의원은 한겨레에 “주변에서 김 변호사 추천을 많이 해 직접 만나 2시간 면담을 했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이 분이 굉장히 철학적이고 문학적이며 진실해 보였다. 헌법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해석을 해 실무총괄을 해달라 부탁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에게는 변호사 이력에 앞서 ‘헌법 전문가’로서 헌법재판소와 학계를 두루 경험한 특별한 이력이 있다. 2001년부터 2013년까지 헌법재판소 연구관으로 재직중 미국 유학을 떠나 노트르담대학 로스쿨과 미국 연방사법센터에서 국제인권법과 사법제도를 연구했다. 이후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일하던 중 2016년 또다시 독일로 떠나 2022년까지 머물며 에를랑겐의 프리드리히알렉산더대학에서 미국과 독일의 헌법재판제도를 비교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6개월간은 독일 헌법재판소에서 연수도 했다. 보통 대학교수를 하기 위해 유학을 떠나는데, 그는 멀쩡하게 교수를 하다 유학을 다녀와 변호사를 하는 셈이다. 김 변호사는 “엉뚱하고 이상한 결정이었다”며 “헌법 공부는 늘 가슴을 뛰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일하는 법무법인에서도 주로 헌법 관련 사건의 변론을 맡는다. 국가기관 간 권한을 따지는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 심판 사건이나 명지대학교 입학정원 감축 등 헌법적 원칙을 따지는 사건을 많이 맡는다. 그중에는 2023년 12월 한겨레 보도로 알려진, 본인이 실제 남파 공작원임을 인정하면서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고 엄주분(1925~2024) 사건도 있다. 헌법에 대한 전문성을 살려 책 ‘헌법을 쓰는 시간'(2025년)과 ‘법의 주인을 찾습니다'(2024년)를 썼다.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14일 김진한 변호사를 만나 책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들었다. 탄핵심판 과정에서 ‘내란죄’를 제외해 가슴앓이했던 때도 있었지만 잘한 결정이었다고 했고, 피청구인 윤석열이 끝내 사과하지 않고 최종변론을 마친 점이 탄핵심판 청구 인용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 심판정 로비나 복도에서 여러 차례 마주쳤던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김 변호사는 “경호원의 호위 속에 거들먹거리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초라하고 허황돼 보였다”며 “무기징역 선고를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윤석열 단죄를 넘어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로 가려면 더 많은 민주주의자가 필요하다”는 당부였다. “민주주의자에게는 분노나 열정보다 이성과 복기가 더 필요하다”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일인 지난 4월4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국회 탄핵소추 대리인단 공동대표인 김이수 변호사 등이 심판정으로 들어서기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김이수 변호사 바로 뒤에 김진한 변호사가 서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 책 ‘국민이 지키는 나라’를 소개해 달라.
“12·3 비상계엄 선포 당일부터 4월4일 파면 선고 순간까지 112일간의 윤석열 탄핵심판 과정을 담은 책이다. 장갑차 앞에 눕고, 계엄군을 밀쳐내며 국회를 지켰던 시민들, 야광봉을 휘두르며 국회와 광화문을 지켰던 시민들, 은박지로 몸을 감싼 채 차가운 겨울밤을 거리에서 지새우며 민주주의를 지켰던 시민들, 비상계엄 선포에 경악하였고 윤석열의 당당한 태도에 혼란스러웠던 모든 국민, 대리인들 사이에서 도대체 어떤 대화가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하던 시민들, 그리고 미래 우리의 민주주의에 대하여 걱정하고 고민하는 모든 시민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탄핵소추 법률대리인단의 실무총괄을 맡았던 김진한 변호사가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법무법인 클라스한결 회의실에서 최근 출간한 책 ‘국민이 지키는 나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
―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선고 이외에 탄핵소추심판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을 하나만 꼽아달라.
“윤석열이 끝내 사과하지 않고 최종변론을 마친 장면을 꼽고 싶다. 민주공화국을 지키는 것은 헌법전 또는 헌법재판소의 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언론, 시민의식, 다양한 제도의 적절한 설계 등 그것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형태의 힘이 필요하다. 그 가운데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이 권력자들, 공직자와 전문가들의 헌법에 대한 충성이다. 윤석열은 헌법에 대한 최소한의 충성을 보여주지 않은 채, 여전히 헌법을 파괴하는 민주공화국의 파괴자인 모습으로 최종변론을 마쳤다.
그 최종변론으로 우리 공동체가 감당해야 할 분열과 갈등이 걱정됐다. 하지만 끝내 사과하지 않은 모습이 탄핵심판 청구가 인용되는 데에는 결정적으로 작용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대한 존중과 충성이 조금도 없는 사람을 대통령직에 복귀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책에서 헌법적 관점을 강조했다. 헌법학자 김진한의 헌법적 관점은 무엇인가.
“책에서 ‘이번 탄핵 사건은 헌법적 관점을 잃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다. 명망가 엘리트 법조인들은 때로는 헌법적 관점이 부족하다’라고 적었다. 여기서 헌법적 관점이란 숲을 보는 것을 잃지 않는 관점을 말한다.
민사, 형사 재판에만 익숙한 법률가들은 법조문과 판례 등의 문구 해석에 빠져 나무만 보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지귀연 재판부가 내린 윤석열 석방에 대한 판단, 대법원이 내린 이재명 당시 대통령 후보자에 대한 파기환송 판단에 있어 사실상 헌법재판에 준하는 헌법적 관점이 필요했다. 국민들이 여전히 그 판단을 납득할 수 없는 이유는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을 현미경으로 보는 판단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헌법재판이란 한 사람이나 한 사건의 결론을 내는 재판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의 현재뿐 아니라 먼 미래, 많은 국민의 운명도 함께 결정하는 재판이다. 그래서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은 숲의 관점, 즉 헌법적 관점을 가장 중요시할 수밖에 없다.
탄핵소추심판에 나선 대리인들도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돕기 위해 헌법의 관점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했다. 만일 재판에서 나무를 보는 관점 속에 갇혀 있다면 재판부와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엉뚱한 이야기만을 늘어놓게 된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뿐 아니라 재판의 승리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관점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김진한 변호사(맨 왼쪽) 등 법률대리인단과 국회 탄핵소추위원이던 정청래 의원이 지난 2월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9차 변론\'에 앞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고 돌아갔다. 사진공동취재단 |
― 이번 탄핵소추 내용에서 ‘내란죄’를 제외한 뒤 마음고생을 크게 했다고 적었다. 지금은 이 문제를 어떻게 평가하나.
“내란죄를 제외한 것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라는 중대한 헌법재판의 성격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윤석열의 내란 행위들을 판단 받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헌법적인 판단을 받을 것이고, 형법적인 판단은 내란죄의 판단을 하게 될 형사법원에 맡기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대 쪽은 우리 결정을 꼬투리 잡아 ‘사기탄핵’이라고 공격했다.
선배 헌법연구관이었던 교수님들 몇분과 상의했고, 박근혜 탄핵 사건을 경험한 연구관 출신 후배학자가 쓴 논문을 참고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은 국가적인 위기를 신속하게 정리해야 하는 재판이기에 시간적인 제약이 있다. 또한 형사재판절차가 아니기에 모든 진실을 밝히기 어려운 여러 절차적 제약이 있다.
만일 내란죄를 제외하지 않았다면 증거능력에 관한 여러 논란이 생겼을 것이고 그것을 핑계로 상대방은 재판을 지연시켰을 것이 명백하다. 문형배·이미선 두 분 재판관의 임기 종료까지도 탄핵심판이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헌법재판소 최종 결정문의 소수의견을 보면 수사기록의 증거능력을 놓고 일부 재판관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만일 내란죄 부분을 제외하지 않았다면 그 논란은 더욱 거셌을 것이다. 물론 재판부 스스로가 내란죄를 제외할 수 있었을 것이지만, 그것을 두고 재판부 내부의 논의가 또 갈라졌을 것이다. 우리 측에서 내란죄를 제외하기로 한 것은 천만 다행한 결정이며, 사건의 운명을 결정할 만큼 중대했다고 생각한다.”
―가장 고마운 증인은 누구인가. 책에는 헌법재판소 심판정에서 조성현 대령에게 감사를 표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성현 대령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와서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전 국민 앞에서 조성현 대령, 그리고 그와 같은 선택을 했던 다른 용기 있는 군인들의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조명을 환하게 비추어 감사를 전하고 싶었다.
법정 전략으로서도 중요했다. 이 재판은 모든 국민이 배심원단인 일종의 배심원 재판이었다. 국민에게 피청구인이 얼마나 나쁜 행동을 했는지 알리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정당한 행동을 한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피청구인 윤석열은 내란 행위를 하고도 책임을 회피했다. 부하들에게 모든 책임을 미루면서 반성하지 않았다. 비록 항명이라는 무거운 죄책을 받을지라도 국민과 부하들을 보호하는 용감한 결정을 한 군인들은 윤석열과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정정당당한 군인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 윤석열이 얼마나 비열하고 자격없는 사람인지를 배심원인 국민 앞에 드러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이 지난 4월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 “나는 지금 민주주의자로 행동하고 있나”라며 민주주의자에 관해 기술한 대목도 있다. 어떤 사람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나.
“권력을 비판하는 사람이 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비판만 하는 것이 민주주의는 아니다. 위기의 시기에는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 권력을 지켜야 하고 존중해야 한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 속에서 법 기술자와 곡학아세하는 일부 학자는 법의 이름을 빌린 거짓 해석과 음모론으로 민주공화국의 뿌리를 뒤흔들려 했다. 국민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헌법재판소가 판단을 미루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은 분노와 불안 속에서도 헌법재판소의 시간을 존중했고 기다렸다. 그것이야말로 훌륭한 민주주의자의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이 시간, 진정한 민주주의자라고 한다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인지 복기해야 한다. 장래에 또 다른 민주주의 위기가 오지 않도록 우리 공동체 시스템을 어떻게 개혁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한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열정과 분노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차분한 이성으로 인내심을 갖고 생각하고 토론해야 한다.
진보가 민주고, 보수가 반민주라는 생각에 반대한다. 너희 편은 옳지 않다고 무조건 반대하는 사람들, 우리 편은 무조건 옳으니 어떤 비판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 하나의 옳고 그름의 판단을 정해 놓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상대편의 생각을 관용하지 않는 사람들, 우리 편이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사용해도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야말로 반민주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자는 공동체의 문제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사람, 권력과 동료 시민들에게 질문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해 12월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
― 탄핵심판 8대0을 낙관했다고 했지만, 3월 말 탄핵 심판 선고가 늦어질 때 심정은 어땠나.
“걱정하다가 위장병이 생기기도 했다. 가장 최악의 상상은 헌법재판소 기각 결정이었다. 많은 국민들이 그에 대하여 저항하고, 자신의 권좌에 복귀한 윤석열은 폭력으로 그 저항을 진압하는 상상이었다. 헌법재판소도 더는 존립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우리 민주주의는 그것으로 붕괴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국회 측 대리인의 실무총괄을 맡은 사람으로서 과연 그 책임을 어떻게, 무엇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과거 인터뷰를 보면, “헌법을 보면 가슴이 뛴다”고 했다. 헌법을 공부하자는 이야기도 했다. 법에 문외한인 이들이 헌법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헌법은 더 나은 공동체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시대의 아픔 속에서 위로가 되고, 어려움 속에서 희망이 될 수 있다. 헌법이 모든 문제에 해결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우리를 실망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꿈을 꿀 수 있게 한다.
먼저 헌법 조문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이런 조문이 왜 존재하는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가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그런데 헌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문의 문구보다는 헌법이 작동하는 원리와 시스템, 다양한 헌법의 원칙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류가 오랜 시간 동안 자유를 위한 희생과 헌신을 통해서 달성한 시스템과 원칙들이다. 그 원리들은 때로 충돌한다.
가령 헌법에는 다양한 자유가 규정되어 있다. 그러면서 필요한 경우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국가기관에 권력을 부여해 놓으면서 그 권력들을 견제하는 또 다른 권력을 규정하고 있다. 모든 규정이 하나하나 좋은 말로 보이지만 과연 이것들이 어떻게 동시에 실현될 수 있을 것인지 알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이상적인 세상만을 그려 놓은 윤리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헌법의 핵심은 그 충돌 속에서 어떤 균형과 조화점을 찾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균형점을 잘못 찾으면 모두를 죽이는 최악의 헌법이 나오게 되지만, 잘 찾으면 모두를 살리는 최고의 헌법이 나올 수 있다. 세상은 계속 변화한다.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모두를 위한 최고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헌법의 과제이다. 결국 헌법을 공부하는 방법은 우리들이 ‘생각을 키우고 발전시키는 방법’과 유사하다. 즉,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토론하는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기일인 지난 2월25일 저녁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최후진술을 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제공 |
―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그리고 여기에 부화뇌동했던 장군들은 앞으로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보나.
“윤석열은 당연히 유죄, 무기징역형을 받을 것이라 본다. 사형선고를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상자는 없어 사형선고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윤석열의 계엄 계획에 적극 협력했던 장군들의 처벌도 불가피하다. 이들이 계엄사태 당시 소극적으로 저항했던 하급 지휘관 정도의 양심, 국민과 헌법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면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에 대한 처벌은 단지 응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미래 우리 공동체의 안전 문제이다. 앞으로 우리 군의 정치적 중립성, 권력자의 친위 쿠데타 시도에 대한 태도에 직결될 것이다.
다만 비상계엄 직후부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진실을 밝힌 곽종근 사령관에 대해서는 그 책임에 대한 특별한 감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윤석열을 비호하고 거짓말을 일삼았던 다른 사령관들과 대조됐던 한 사람이다.”
― 헌법재판소에서 마주친 윤석열에 대한 인상비평과 함께, 윤석열이란 인간형을 어떻게 보는지.
“윤석열을 헌법재판소 심판정 복도와 로비에서 여러 번 마주쳤다.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거들먹거리면서 걸어가는 모습이었지만, 위압적이라거나 두렵게 보이지 않았다. 초라하고 허황돼 보였다. 현실 인식을 하지 못하고 과대망상가, 거짓말쟁이, 주변 아부꾼들의 거짓말에 쉽게 속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파공작원이었던 사실을 인정하며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엄주분(당시 98살)씨가 지난 2023년 8월14일 오후 경기 안양시 한 요양원에서 재심 변호를 맡은 김진한 변호사(맨 왼쪽), 재판을 돕고 있는 김두식 교수(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
― 본인이 실제 남파공작원임을 인정하면서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엄주분(1925~2024) 사건의 변호인도 맡고 있다. 이는 어떻게 헌법과 연결되나.
“엄주분 님의 간첩죄가 과연 성립하는지, 고문이라든지 불법체포와 감금에 따른 증언의 증거능력이 유효한지를 보는 것이다.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놨는데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해방 전후의 혼란, 6·25 동란과 권위주의 정권, 냉전의 시절 동안 우리 헌법의 원칙과 기본권은 단지 장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대법원의 판단에서도 헌법적인 원칙은 최고법이 아니라 지키면 좋은 권고사항과도 같은 정도의 취급을 받았다.
헌법적인 원칙 가운데 어떤 것들은 어떤 상황 논리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중대한 원칙들이 있다. 그러한 헌법적 원칙을 회복하는 것이 진정한 법치주의의 시작이다. 고 엄주분님 재심 사건은 바로 그런 사건이다. 그것은 엄주분님의 명예를 회복하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사건이 아니다. 대법원이 스스로 무너뜨린 우리 헌법의 원칙, 우리 모두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치주의를 회복하는 사건이다. 헌법 원칙을 최고규범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대법원은 이러한 이 사건의 의미와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