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1.0 °
한겨레 언론사 이미지

2100만년 전 코뿔소 유전 정보를 캐내다 [강석기의 과학풍경]

한겨레
원문보기
영화 ‘쥬라기 공원’(1993) 스틸컷.

영화 ‘쥬라기 공원’(1993) 스틸컷.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하면 그때가 최고를 경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일들이 있다. 1993년 여름에 본 ‘쥬라기 공원’이 그런 예로 공상과학(SF)영화에서 그 이상의 충격을 준 작품은 그 이전에도 뒤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사오십대 독자 가운데 상당수가 필자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을까.



‘쥬라기 공원’이 대단한 건 육식공룡의 행동을 실감나게 묘사했을 뿐 아니라 수천만년 전 멸종한 공룡을 되살린 방법이 꽤 그럴듯해 개연성이 높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즉 공룡 시대 수지(樹脂)가 굳은 광물인 호박(琥珀)에 갇힌 모기에서 공룡의 피를 추출해 얻은 디엔에이(DNA) 조각을 양서류 게놈에 넣어 부활시키는 방법이다. 놀랍게도 한 세대가 지난 오늘날 비슷한 방법으로 멸종된 매머드를 되살리는 탈멸종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다만 이 설정에는 근본적인 오류가 있는데, 디엔에이는 그렇게 안정한 분자가 아니라서 공룡이 멸종한 6600만년 전 이전 화석을 아무리 들여다봐야 염기서열 정보가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해독에 성공한 가장 오래된 디엔에이 염기서열은 약 100만년 전 시베리아에 살았던 매머드의 것으로, 논문이 발표된 2021년 꽤 큰 화제가 됐다.



그런데 과거 생물의 유전 정보가 디엔에이에만 남아 있는 건 아니다. 유전자의 산물인 단백질의 아미노산서열도 있기 때문이다. 단백질은 수만가지이고 이 가운데 디엔에이보다 훨씬 안정한 종류가 꽤 된다. 따라서 단백질의 아미노산서열을 분석하면 멸종된 생물을 부활시키지는 못하겠지만 현생 생물과의 분류 관계 등 유용한 정보를 줄 수 있다.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단백질 정보는 약 370만년 전 살았던 멸종된 낙타의 것이다.



지난주 학술지 네이처 사이트에는 이 기록을 훌쩍 뛰어넘어 가깝게 잡아도 2100만년 전 살았던 코뿔소의 단백질을 분석했다는 논문이 공개됐다. 덴마크 코펜하겐대가 주축이 된 다국적 공동연구팀은 북극권인 캐나다 호턴 분화구의 2400만~2100만년 전 지층에서 발굴한 코뿔소 화석에 주목했다.



이들은 가장 안정한 부분인 어금니의 에나멜층을 분석해 수백개의 아미노산 단편 서열 데이터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를 현존 코뿔소, 아미노산 서열 정보를 알고 있는 멸종된 코뿔소와 비교한 결과 호턴 분화구의 코뿔소는 이들과 약 3000만년 전 갈라졌다는 진화의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 정보로 재구성한 기제목(코뿔소과, 맥과, 말과) 계통도다. 캐나다 호턴 분화구의 2400만~2100만년 전 지층에서 발굴한 코뿔소(CMNF 59632)는 다른 코뿔소 계열과 약 3000만년 전 갈라졌다. 위에서 4~8번째가 현존하는 종들로 각각 수마트라코뿔소, 인도코뿔소, 자바코뿔소, 검은코뿔소, 흰코뿔소다. 아래 숫자는 연도로 단위는 100만년 전(Ma)이다. 네이처 제공

단백질 아미노산 서열 정보로 재구성한 기제목(코뿔소과, 맥과, 말과) 계통도다. 캐나다 호턴 분화구의 2400만~2100만년 전 지층에서 발굴한 코뿔소(CMNF 59632)는 다른 코뿔소 계열과 약 3000만년 전 갈라졌다. 위에서 4~8번째가 현존하는 종들로 각각 수마트라코뿔소, 인도코뿔소, 자바코뿔소, 검은코뿔소, 흰코뿔소다. 아래 숫자는 연도로 단위는 100만년 전(Ma)이다. 네이처 제공


이번 성공으로 연구자들은 6600만년 이전에 살았던 공룡의 이빨에서도 단백질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높았을 때 극지방까지 진출한 공룡의 잔해가 그 뒤 저온에서 잘 보존됐다면 지금 분석 기술 발달 속도로 보건대 머지않아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공룡을 부활시킬 수는 없겠지만 이번 코뿔소 연구처럼 화석만으로는 불확실한 진화 과정을 재구성할 정보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쥬라기 공원’의 7편인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이 개봉됐다. 2편과 3편에 연달아 실망한 뒤 4~6편은 극장에서 보지 않았고 이번에도 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옛 추억이 떠오르며 그래도 한번 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32년 전의 감동까지는 기대하지 않지만.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미미 첫사랑 고백
    미미 첫사랑 고백
  2. 2라건아 더비
    라건아 더비
  3. 3손흥민 토트넘 잔류
    손흥민 토트넘 잔류
  4. 4잠실대교 크레인 사고 사망
    잠실대교 크레인 사고 사망
  5. 5조지호 파면
    조지호 파면

한겨레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