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개봉 영화인 ‘마지막 방위’ 장면. 영화는 필리핀 오지에서 한국 노동자들이 게릴라들에게 납치되자 한국군은 특수부대 요원 5명을 보내 인질을 구출하기로 하는데 요원선발 과정에서 해커의 장난으로 단기사병(방위) 5명이 차출된다는 내용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
15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열린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선 안 후보자의 ‘단기사병’(방위병) 근무 기간이 논란이 됐다. 안 후보자가 병역 의무를 수행한 1983~1985년 당시 단기사병의 복무기간은 평균 14개월이었는데, 안 후보자의 병적 기록부엔 이보다 8개월 긴 22개월을 복무한 것으로 기록돼 있어 야당이 소명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안 후보자는 “45년 전 병무행정 착오”라고 해명했다.
단기사병은 군대 갈 20대 남성들이 넘쳐나고 나라가 돈이 없던 때인 1969년부터 1996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했던 제도다. 현재 사회복무요원과 근무 형태가 비슷하지만, 민간인 신분인 사회복무요원과 달리 단기사병은 군인 신분이었다. 단기사병은 군부대, 동사무소, 예비군 중대 등에서 근무했다.
저출생으로 군 입대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지금과 달리 1990년대 초반까지는 20대 남성 인구가 많아 현역 입대 대상자 가운데 절반가량만 현역으로 입영할 수 있었다. 현역 입영 대상자를 전부 입대시켜 이들을 먹이고 재우고 군대를 유지하기에는 나라 형편이 안 되기 때문에 살던 집에서 잠을 자면서 부대로 출퇴근하는 방식을 고안한 게 단기사병 제도였다.
단기사병 규모는 14만~17만명 수준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국군의 총 상비병력 규모는 현역 66만여명과 단기사병 17만여명을 합쳐 총 83만명이었다. 이후 저출생으로 2023년 말 기준 국군 병력은 48만명으로 줄었다.
단기사병은 복무기간이 현역 병사에 견줘 짧아 붙은 이름이다. 실제는 방위병 또는 방위로 불렸다. 단기사병의 복무 기간은 1969년 제도 신설 당시엔 2920시간이었다가, 1974년 5월에 365일, 1982년 7월부터 14개월, 1986년 1월부터는 18개월로 연장됐다.
1991년 국방부는 △방위병 운영으로 인한 총체전력 약화 △대도시 인구집중화로 지역별 방위병자원 불균형 현상 초래 △잦은 대민사고로 인한 군 위상 저하 및 대군 불신 유발 △방위병 복무 선호로 인한 병무 부조리 발생 등 숱한 문제가 발생해 이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돼왔다며 단기사병 제도 폐지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단기사병은 24시간 부대 안에서 생활하는 현역 병사와 달리 집에서 출퇴근한다는 점에서 1990년대 개그 프로그램이나 우스갯소리의 단골소재로 쓰였다. 예컨대 △군복을 입은 군인 수십만명이 아침에 나타났다 저녁에 도깨비처럼 사라지기 때문에 북한이 이들의 정체와 규모를 몰라 남침을 못한다 △단기사병은 전쟁이 났을 때 “도시락통으로 통신을 교란한다”거나 “전쟁 중에도 오후 6시면 퇴근한다” 등이다. 단기사병은 옛 소련 시절 비밀경찰(KGB)에 빗대 코리아(K) 지역(G) 방위대(B), 해군 특수전전단(UDT)에 빗대 우리(U) 동네(D) 특공대(T)로도 불렸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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