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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역엔 간유” 케네디 가문 이단아…보수 정치세력 된 ‘백신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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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에프(F.) 케네디 주니어가 2024년 11월1일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린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의 선거 유세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선 후보와 합동 유세를 펼치는 모습. 당시 둘은 단일화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었다. 트럼프 캠프는 케네디 주니어가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민주·공화 양쪽 표를 분산시키는 상황에서, 케네디가 트럼프와 유사한 백신 회의론, 반엘리트 메시지로 보수층의 호감을 얻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트럼프는 만약 케네디가 사퇴하고 자신을 지지한다면 행정부 내 역할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고, 당선 뒤 약속대로 케네디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AP 연합뉴스

로버트 에프(F.) 케네디 주니어가 2024년 11월1일 공화당 전당대회가 열린 미국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의 선거 유세 행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선 후보와 합동 유세를 펼치는 모습. 당시 둘은 단일화 가능성을 논의하고 있었다. 트럼프 캠프는 케네디 주니어가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민주·공화 양쪽 표를 분산시키는 상황에서, 케네디가 트럼프와 유사한 백신 회의론, 반엘리트 메시지로 보수층의 호감을 얻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트럼프는 만약 케네디가 사퇴하고 자신을 지지한다면 행정부 내 역할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고, 당선 뒤 약속대로 케네디를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AP 연합뉴스


지난 2월 말, 미국에선 10년 만에 처음으로 홍역 사망자가 발생했다. 30년 만에 대규모 홍역 환자가 발생한 텍사스주에서,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6살 아이가 숨진 것이다. 감염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으면서 백신 접종을 받지 않은” 농촌 마을을 중심으로 번졌다. 텍사스 보건부 자료에 따르면 보고된 홍역 환자의 대다수는 어린이였다. 최대 발병지인 게인스 카운티에선 14%의 학령기 아동이 필수 백신 접종을 거부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은 전했다. 95%가 접종받아야 유지되는 집단면역이 무너진 사례다.





케네디 장관 “홍역, 간유로 치료하라”





홍역은 전염성이 강한 호흡기 질환으로, 환자 일부는 폐렴, 실명, 뇌부종 등 합병증을 앓지만 예방접종(MMR 백신)으로 예방이 가능하다. 미국에서 홍역 예방접종은 의무다. 접종받지 않으면 공립학교(유치원)에 입학할 수 없다. 그런데 발병 지역엔 사립학교에 보내거나 홈스쿨링을 하는 이들이 많았다.



2월26일, 텍사스주 러벅의 한 병원에 홍역-볼거리-풍진(MMR) 백신 약병이 놓여 있다. 7월4일 기준 미국 내 홍역 발병 건수는 1277건을 기록했는데, 이는 1992년 2200명의 환자가 발생한 이래 3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미국은 이후 예방접종과 방역에 힘써 연간 홍역 환자 수가 1천명 이하로 줄어들었고, 2000년에는 ‘홍역 퇴치 선언’을 했다. 그러나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2019년 홍역 발병 건수가 1274건에 이르는 등 다시 홍역이 확산되는 조짐이다. AP 연합뉴스

2월26일, 텍사스주 러벅의 한 병원에 홍역-볼거리-풍진(MMR) 백신 약병이 놓여 있다. 7월4일 기준 미국 내 홍역 발병 건수는 1277건을 기록했는데, 이는 1992년 2200명의 환자가 발생한 이래 3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미국은 이후 예방접종과 방역에 힘써 연간 홍역 환자 수가 1천명 이하로 줄어들었고, 2000년에는 ‘홍역 퇴치 선언’을 했다. 그러나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2019년 홍역 발병 건수가 1274건에 이르는 등 다시 홍역이 확산되는 조짐이다. AP 연합뉴스


3월 초 홍역 보고는 250건에 달해, 전년 누적 총계(285건)를 추세상 뛰어넘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는 폭스뉴스에 출연해 “우리 어렸을 땐 다 홍역에 걸렸다”(3월11일)며 사태의 위험성을 축소했다. 또 “생선 간유, 비타민 에이(A)로 기적적인 치료가 가능하다”는 대체요법을 제시해 상황이 악화됐다. 3월25일 뉴욕타임스는 “어린이병원 환자들이 집에서 간유와 비타민 에이 보충제를 고용량 복용해 간 손상 징후를 보여, (홍역과) 함께 치료 중”이라고 보도했다.



4월3일, 또 다른 어린이가 홍역으로 숨졌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 산하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대변인은 접종은 “개인의 결정”이며 “백신 접종의 잠재적 위험과 이점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애매한 메시지를 냈다. 지난 9일 엔피알(NPR)은 홍역 발생 건수가 1288건(7월8일 기준, 질병통제예방센터 집계)으로 1992년 이래 33년 만의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사망자는 3명이다.





백신 음모론자로 채워진 자문위원회





2000년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홍역퇴치국가’ 인증을 받았던 미국이 이렇게 전락한 데엔, 케네디 장관의 책임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백신이 자폐증의 원인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쳐온 그가 보건복지부 수장으로 임명됐을 때부터 반대가 거셌다. 청문회에서 그는 “내 자녀는 모두 백신을 맞았다”며 “어린이 백신 접종 일정을 지지할 것”이라며 ‘고비’를 넘겼으나, 취임 직후 말을 바꿨다.



그는 국립보건원(NIH)의 백신 접종 관련 연구 사업을 중단시켰다. 식품의약국(FDA)의 백신 책임자를 쫓아내고, 코로나19 추가 접종 정책을 비판했던 사람을 대신 앉혔다. 질병통제예방센터 ‘예방 접종 권고’ 대상도 줄였다. 권고에서 빠지면, 국가건강보험에서 해당 접종을 저소득층에게 무료로 보장해야 할 의무가 사라진다.



지난달 9일엔 질병통제예방센터 자문위원회 위원 전원(17명)을 쫓아내고, 반백신단체 운동가들을 상당수 포함한 새 위원회를 꾸렸다. 이 위원회는 수은 기반 방부제인 ‘티메로살’ 성분이 없는 독감 백신만 접종해야 한다는 권고를 내놨는데, ‘티메로살’은 1990년대 말 백신 음모론자들이 ‘자폐의 원인’이라 지목한 뒤 잘 쓰이지도 않았다. 이후 숱한 연구가 ‘백신은 자폐증과 관련이 없다’고 확인했다. 이들이 해묵은 주제를 새삼 꺼낸 것은 “백신에 대한 불신을 (대중에게) 심어주는” 것이라고 미국 소아과학회의 숀 올리리 박사는 지적한다.






‘음모론자’ 지지층, 공화당의 지지 기반





우리나라에도 ‘안아키’와 같은 단체가 있지만, 미국에서는 부모의 ‘선택의 자유’를 내세운 백신 반대 운동이 보수파 운동의 한 갈래로 세력화했다. 본격적인 계기는 2014년 캘리포니아주 디즈니랜드 홍역 발발 사건이었다. 의무 접종을 거부해온 사람들 위주로 삽시간에 홍역이 번지면서, 백신 음모론자들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후 이들은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정치인들을 지목해 낙선운동을 펼치면서 등 정치조직으로 변모했다.



‘정치 명문가’ 출신인 케네디 장관은 내세울 ‘얼굴’로 제격이었다. 원래 케네디는 듀폰 아연 공장 유독물질 배출 사건, 몬샌토(현 바이엘) 라운드업 제초제 소송 등으로 이름을 알린 환경 변호사였다. 직접 환경단체 ‘워터키퍼얼라이언스’를 세웠던 1999년, 자녀의 자폐증이 백신 때문이라 믿는 엄마들을 만나게 된다. 그는 “전국을 돌며 강연을 할 때, 앞줄에 앉은 여성들이 ‘백신을 살펴보라’고 말했다. ‘설령 그들이 틀렸다 하더라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백신 반대 운동’에 가담한 계기를 설명한 바 있다. 케네디는 이후 백신에 반대하는 ‘아동건강보호단체’를 세웠는데, 훗날 그의 가장 큰 정치적 기반이 된다.



로버트 에프(F.) 케네디 주니어가 설립한 백신 반대 단체 ‘아동건강보호단체’의 회장 출신인 린 레드우드가 6월26일 질병통제예방센터 예방접종자문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있다. 그는 간호사 출신으로, 자폐증이 백신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펴왔다. AP 연합뉴스

로버트 에프(F.) 케네디 주니어가 설립한 백신 반대 단체 ‘아동건강보호단체’의 회장 출신인 린 레드우드가 6월26일 질병통제예방센터 예방접종자문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있다. 그는 간호사 출신으로, 자폐증이 백신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펴왔다. AP 연합뉴스




코로나에 확산된 ‘음모론’ 타고 복지부 장관직 올라





케네디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이런 정치적 저변을 다진다. 팬데믹이 백신 부작용을 걱정하는 이들의 불안을 키운 탓이다. 케네디는 코로나19가 “백인·흑인을 노린 바이러스 테러”라고 주장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종을 골라 감염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 케네디는 당시 정부가 여행자에게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는 것 등은 “전체주의”라고 비판하면서 “백신 접종 강요는 ‘홀로코스트’(학살)와 같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 시대, 거짓 주장은 돈이 됐다. ‘아동건강보호단체’ 사이트 접속자가 늘어났다. 매출은 2019년 294만달러(약 40억원)에서 2021년 1599만달러(약 220억원)로 껑충 뛰었다. 케네디는 두배 가까이 오른 연봉 49만7013달러(약 6억7500만원)를 받았다. 코로나19 음모론을 퍼뜨리는 코미디언 출신 유명 팟캐스트 진행자 조 로건에게 음원재생업체인 ‘스포티파이’가 콘텐츠료로 1억달러를 지불할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2000년대 초 민주당을 통한 정계 입성에 실패했던 케네디는 이 흐름을 타고 2024년 무소속 대선 후보로 출마했다. 이후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고 트럼프 행정부에서 장관에 임명된다.





새 팬데믹 때 한국에 미칠 영향 우려





민주당 성향인 케네디 가문에선 그와 거의 ‘의절’한 분위기다. 존 에프(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이자, 케네디 장관의 사촌인 캐럴라인 케네디는 청문회에 케네디가 “아픈 아이를 둔 부모들의 절박함을 이용하고 있다”며 장관 인준 반대 서한을 보냈다. 케네디 장관이 자궁경부암 가다실 백신 부작용 소송을 맡아 85만달러(약 11억5천만원)를 번 점도 거론하며, “다른 아이들이 예방접종을 받을 기회를 차단하고 자기 자녀들은 예방접종을 맞혔다”고도 비난했다.



국내에서도 케네디 장관의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등이 백신을 두고 내린 결정이 국내 정책이나 여론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향후 새 팬데믹이 발생 시, 미국 정부가 비과학적 신념에 따라 소극적 조처를 취한다면, 우리도 방역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단 우려다. 정재훈 고려대 의대 교수(예방의학)는 “국내 백신 음모론자들이 케네디 장관의 발언을 가지고 잘못된 여론을 형성하는 건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라며 “미 의학계도 과학적 근거를 축적하며 미 정부와 싸울 준비를 한다고 한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과학이 결국은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 송만기 국제백신연구소 사무차장은 “국내 보건당국이 미국만 아니라 세계보건기구나 유럽, 국내 자료를 토대로 합리적 판단을 하고 있다”고 했다.



2025년 5월7일, 인디애나주 레이크빌에 위치한 자택에서 케이티 밴 톤하우트가 영아기에 사망한 딸 캘리의 사진을 보고 있다. 그는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자녀가 백일해로 숨진 뒤, 백신 접종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에 참여해왔다. AP 연합뉴스

2025년 5월7일, 인디애나주 레이크빌에 위치한 자택에서 케이티 밴 톤하우트가 영아기에 사망한 딸 캘리의 사진을 보고 있다. 그는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자녀가 백일해로 숨진 뒤, 백신 접종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에 참여해왔다. AP 연합뉴스


정유경 김지훈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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