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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李 대통령의 ‘실용적 시장주의’가 진심이라면

조선일보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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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걸림돌 치우고
시장주의가 성과를 내는
차등적 결과 인정해야

구조적 저성장 끊으려면
시장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실용
실용적 사회주의라고 했으면 더 납득이 빨랐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연설에서 쓴 ‘실용적 시장주의’란 표현을 듣고 멈칫하면서 든 생각이다. 선거운동 기간 중 ‘실용’을 강조해 왔지만, 진보 정당의 이념에서 시선을 분산시키는 수식어를 골랐다고 봤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보인 행보가 실용을 추구하겠다는 말에 설득력을 주기는 했다. 그런데 실용을 시장주의에 덧붙이다니, 파격적이다. 시장주의자 관점에서는 같은 말을 반복한 것이라 더 강렬하게 느껴졌다.

왜 시장주의인가. 이러한 개념이 서양에서 왔다는 점을 고려해 시장주의의 영어 표현을 찾아보면 여러 가지가 검색된다. 그중에는 진보 인사들이 거의 혐오를 담아 사용하는 시장 만능주의(market fundamentalism)나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도 있다. 시장 중심적 사고방식(marketism)이나 시장을 바탕으로 하는 이념(market-oriented ideology) 등 중립적 표현도 진보와는 거리가 있다. 이념과 상관없이 대한민국의 문제를 풀겠다면서 시장주의를 동원했기 때문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결국 시장주의의 성과를 인정하는 동시에, 반드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무슨 성과를 내겠다는 것인가. 대통령의 취임 후 첫 방문 현장은 한국거래소였고, 이후 한 달여를 보면 가장 뚜렷한 성과는 주식시장에서 나타났다. 한국 종합주가지수(코스피)가 12% 넘게 올랐다. 코스피는 4월 9일에 2293.70까지 떨어졌는데 이제 3100을 넘었다. 주식시장은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만큼 시장경제에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대통령이 시장주의를 앞세운 보람을 느끼게 할 만한 주가 상승이다.

시장주의를 내세운 뜻이 한때의 주가 부양이 아니라면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상승을 길게 끌고 가는 것은 ‘펀더멘털’ 문제이기 때문에 시장주의를 제대로 발휘해야 한다. 그렇다면 기준을 명확하게 미국으로 잡기를 제안한다.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우리는 국제 표준을 따르려고 애써 왔지만, 30년 가까이 흐른 지금 세계를 둘러보면 진정 장기적인 성과를 내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2000년 닷컴 거품이나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있었어도 말이다. 특히 미국 기업의 공세를 규제로 막기에 급급한 유럽을 모범으로 삼는 것은 절대로 피할 일이다.

미국 스탠더드는 스타트업이 세계적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환경 전반에서 배워야 한다. 1990년대 미국에서 가장 큰 기업은 1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제너럴 일렉트릭이었지만, 2000년대를 휩쓴 마이크로소프트나 이후 상위를 점령한 애플, 알파벳(구글), 아마존 모두 스타트업에서 출발해 미국을 딛고 세계로 나아간 기업이다. 사실 많은 나라가 미국의 기업 성장 생태계를 본받고자 해 왔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웬만한 실패는 견딜 수 있는 모험 자본부터 유연한 노동시장, 고급 인력을 배출하는 고등교육까지 구성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우선 기업의 성장 걸림돌을 치워야 한다. 규제 때문에 혁신적 제품과 서비스가 출현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규제 샌드박스’(혁신 기술에 규제 적용을 유예하는 제도) 등 제도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행정적 결정을 내린 공무원의 면책을 보장해야 한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올라가는 과정에서 폭증하는 규제와 급감하는 혜택도 조정해야 할 것이다. 최근 상법 개정이 주주 친화적 분위기를 조성했다면, 창업자를 포함한 대주주에게도 기업 가치를 올리는 데 진심이게 할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더욱 근본적으로, 시장주의가 성과를 내는 핵심인 차등적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얄궂게도 선택과 노력에 따른 결과가 달라야 선택에 골몰하고 노력을 경주한다. 진보는 출발점이 다르고 과정이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로 결과의 차이를 폄하하지만, 사람들 대부분을 움직이는 힘은 차이 나는 결과다. 정부가 할 일은 출발점을 최대한 맞추는 한편 기회가 평등하고 절차에 부당함이 없도록 감독하여 국가 운영 체제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것이다. 사회의 안정을 위해 가장 나쁜 결과를 맞은 사람들을 보듬어 가는 일까지 하면 좋다.

경제성장률이 0%대로 전망되는 초유의 대한민국이다. 구조적 저성장을 끊어내려면 시장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실용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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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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