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화석연료 발전소 굴뚝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
최원형 | 지구환경부장
“가격은 틀렸다”(The Price is Wrong)
번역 출간되길 기다리고 있는 책의 제목이다. 지은이는 브렛 크리스토퍼스 스웨덴 웁살라대 교수. 플랫폼부터 지식재산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자본주의가 단지 ‘소유하기’만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체제라는 사실을 파헤친 전작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를 인상 깊게 읽었다. ‘재생에너지의 가격’ 문제를 톺아보며 “자본주의 체제가 지구를 구하지 않는 이유”(책의 부제다)를 분석한다는 이번 책도 기대가 된다. 인위적인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은 기후 대응의 핵심 과제인데, 지은이는 여기에서 과연 어떤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냈을까? 지은이의 인터뷰 등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핵심 내용은 이렇게 축약할 수 있을 듯하다.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화석연료보다 낮아져도 재생에너지 전환을 담보할 수 없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화석연료보다 낮아지면 ‘시장의 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를 압도하게 될 거라 여겼고, 이를 위해 많은 정부들이 재생에너지가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보조금 등으로 지원하는 것을 주된 기후 대응 정책으로 시행해왔다. 지난 우리나라 대선 과정 중 기후에너지 분야에서 그나마 ‘토론’이라 할 만한 이야기가 오간 것도 바로 이 주제였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공약한 이재명 후보를 겨냥해, 김문수·이준석 후보는 “원전은 싸고 재생에너지는 비싸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는 전세계적으론 태양광·풍력의 발전비용이 이미 원전보다 더 낮아졌고, 국내에서도 곧 그렇게 될 거란 취지로 반박했다.
이런 추세 자체는 확실하다. 재생에너지는 그간 발전비용을 떨어뜨리며 급격하게 성장해왔고, 2023년 기준으로 전세계 전체 발전량에서 태양광·풍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13% 수준까지 올라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이면 재생에너지가 전세계 전력 생산의 46%를 차지하고, 태양광·풍력의 비중은 30%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3년 전세계적으로 ‘청정에너지’ 비중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전체 에너지 수요 증가분의 3분의 2는 여전히 화석 연료로 충당되었다. 국제에너지기구 보고서 갈무리 |
문제는, 점차 이것이 ‘전환’의 과정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 분석으로 세상을 읽어내는 환경과학자 바츨라프 스밀은 최근 인터뷰에서 “1997~2025년 사이 전세계 화석연료 소비는 62% 증가한 반면, 전세계 에너지 소비에서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쳐 여전히 8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며, “우리는 ‘탈탄소화’를 이루기는커녕 화석연료에 훨씬 더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세계의 에너지 총수요 자체가 급증하고 있는데, 그 대부분을 메꾸고 있는 건 여전히 화석연료다. 이를 두고 브렛 크리스토퍼스는 현재 재생에너지는 그간 화석연료가 맡아왔던 공급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완’하는 데 머물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무리 재생에너지가 늘어도 화석연료를 대체하지 않는다면, 곧 ‘전환’이 아니라면 기후위기 대응에 의미가 없다.
왜 이런 모순이 발생하는지 근본적으로 톺아봐야 할 시점이다. 크리스토퍼스는 ‘가격’이 낮아져도 ‘수익’이 충분치 못하면 자본주의적 주체들은 결코 투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애초 에너지(전기)는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재화가 아니며, 겉으론 시장에서 거래되는 듯 보여도 근본적으론 국가의 개입과 보조금, 규제 등 복잡한 메커니즘으로 움직인다. 핵심 문제는, 이런 체제 아래에서 민간 주체들은 화석연료에 관해선 오랫동안 자신들의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여러 수단들을 개발해왔으나, 재생에너지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아무리 내려가도, 기업들은 수익률이 낮은 재생에너지보다는 높은 수익이 안정적으로 보장된 화석연료에 우선 투자할 것이다. 언젠가는 수익률이 역전될 수도 있겠지만, 이미 그때 지구의 온도가 얼마나 더 높아져 있을지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렇다면 지금 정부는, 국가는, ‘공공’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그 어느 정부보다 강력한 기후위기 대응을 약속하며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조만간 출간될 크리스토퍼스의 책에, 또 현재 진행 중인 ‘공공재생에너지법’ 입법 청원 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이유다.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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