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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환의 재계프리즘] 신뢰와 화합의 정도 보여준 故 허남각 회장

매일경제 정승환 전문기자(fanny@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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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진주 경상국립대 100주년 기념관. 400여 명이 넘는 청년이 자리를 채웠다. 매일경제·진주 K-기업가정신재단이 주최한 제3회 진주 K-기업가정신 청년포럼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청년들은 특히 4대 기업 세션에 관심을 보였다. 이날 세션에서는 삼성, LG, GS, 효성 임원들이 각 사의 창업 지원 방안 등을 설명했다. 이들 기업의 창업주들은 진주에서 자랐다. 삼성 이병철, LG 구인회, GS 허만정, 효성 조홍제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청년들은 창업주뿐 아니라 이건희, 구자경, 허준구, 조석래 등 4개 기업을 키운 경영인들도 기억했다.

그런데 대한민국 산업화에 기여했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진주 출신 기업인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지난달 세상을 떠난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이다. 고(故) 허 회장은 허준-허만정-허정구로 이어지는 GS가(家)의 장손이다.

그는 동생이나 사촌과 달리 LG와 GS그룹 경영엔 참여하지 않았다. 그 대신 부친이 세운 삼양통상을 이끌며 한국 제혁(製革) 산업을 이끌었다. 1986년 동생인 허광수 회장과 함께 미국 나이키와 계약을 맺고 한국 나이키를 설립한 주인공도 허 회장이다. 삼양통상은 자동차 시트·신발·가구 등에 쓰이는 가죽 제품 제조사다.

허 회장은 삼양통상뿐 아니라 집안의 큰어른으로서 GS그룹에 기여했다. GS는 성장 과정에서 '오너 리스크'가 없었다. 허만정 창업주의 4세는 6촌까지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만, 분란이나 다툼은 없다. LG와의 동행과 이별도 순조로웠다. 이 과정에서 허 회장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허 회장은 14세까지 조부 허만정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다. 증조부 지신정(止愼亭) 허준으로부터 이어져온 '상생과 나눔, 절제와 겸손한 삶의 태도'를 깊이 새기며 가문의 명예를 지켜왔다.


허준의 호 지신정은 '멈추고 삼가다'란 의미다. 허준은 아들 허만정에게 "사람이 보고, 듣고, 말하고, 일에 응하고, 사물을 접할 때 신중에 신중을 더하기를 활을 쏠 때 과녁이 있는 것처럼 잠시도 방심하지 않는다면 어찌 도에 가깝지 않겠는가"라고 가르쳤다.

허만정은 손자 허남각에게 허준의 가르침을 일깨워줬다. 손자의 기억 속 할아버지는 큰 나무였다.

허 회장의 부친 보헌(寶軒)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LG와 공동 경영을 하던 시절에 허씨가의 의견을 모아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허 명예회장의 이 같은 역할은 허씨·구씨 공동 경영 성공의 기반 중 하나가 됐다.


집안의 장손 허남각 회장은 이 같은 선친들의 뜻을 이어받아 허씨 가문의 중심 역할을 하며 집안 대소사를 관장했다. 집안 어른으로서 다양한 의견을 조정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가문이 곧 사회의 기초'라는 생각을 갖고 '화목한 가족, 품격 있는 가풍'을 강조했다.

그는 생전에 "허씨와 구씨 두 집안이 공동 경영를 잘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화합과 양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GS그룹이 성장해온 20년 동안에도 이 정신이 이어졌으며, 앞으로도 이 같은 정신을 바탕으로 어떤 어려움도 잘 이겨내리라 확신하고 있다"며 화(和)를 강조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GS뿐 아니라 구광모 회장 등 LG 경영인들도 허 회장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허 회장의 장남뿐 아니라 조카들도 상주석에서 문상객들을 맞이했다. 허 회장의 발인 후 고향 진주로 내려가기 전 그가 애착을 가졌던 남서울골프장에도 들렀는데, 이 자리엔 여러 재계 인사들도 함께했다. 진주도 허 회장을 반겼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실천한 경영인 허남각. 그는 집안의 화목과 우애, 겸손과 검소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집안의 중심을 잡았다. 경영권을 둘러싸고 집안싸움을 벌이는 일부 회사들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허 회장은 떠났지만, 허씨 경영인들이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회사를 키워 나가길 기대한다.


[정승환 재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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