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에 서식하는 대형 설치류 카피바라가 몇년 전부터 소셜미디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카피바라에 대한 관심은 2018년 일본 한 동물원이 카피바라가 노천탕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유튜브에 공개하며 시작됐는데, 2023년 러시아 아티스트가 작곡한 노래 ‘카피바라’가 틱톡에서 폭발적 반응을 얻으면서 ‘핵인싸’로 떠오른 것이다. 블랙핑크 제니의 솔로곡 ‘라이크 제니’ 뮤직비디오에도 제니의 분신처럼 등장할 정도니, ‘초원의 지배자’라는 별명이 걸맞다.
인기 핵심은 친화력과 무해함이다. 소셜미디어 속 카피바라는 최상위 포식자인 악어의 등을 타고 이동하고, 거북이·원숭이가 곁에 있어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새들이 털을 쪼아대거나 미어캣이 들러붙어도 그러라는 식이다. 몸길이 1m, 몸무게 35~66㎏의 큰 덩치를 자랑하지만, 초식동물이란 점도 평화 이미지를 강화한다.
이들이 대체로 낮은 공격성을 보이고, 유연한 사회성을 가졌다는 건 의심할 여지 없다. 다만 이를 우리가 생각하는 친화력으로 볼 것인가는 다른 문제다. ‘브라질 환경·재생 가능 천연자원 연구소’의 2005년 연구를 보면, 야생 카피바라는 다양한 조류와 상호작용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주로 몸을 내어주고 청소를 유도하는 행동이었다. 카이만 악어와 큰 충돌이 없는 것도 생태학자들은 상호적응의 결과로 본다. 먹이가 겹치지 않을뿐더러 악어 입장에선 몸집 큰 카피바라를 공격해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카피바라에게 인간의 감정을 투영해 온순한 동물로만 소비할 때, 이들은 고달픈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지난달 워싱턴포스트는 플로리다에 미국 최초 ‘카피바라 카페’가 생겨 매일 100명 이상이 카피바라를 만지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보도했다. 미국뿐 아니다. 지난 11일 문을 연 제주시 한 복합리조트의 실내동물원도 ‘카피바라’를 앞세웠다. 그사이 코스타리카에선 불법 밀렵되던 카피바라들이 굶어 죽는 일도 벌어졌다.
10여년 전 느림보원숭이도 비슷한 경우다. 사람들은 느림보원숭이가 유튜브 스타가 되자, 멸종위기종이란 점보다 귀여운 외모에만 집중했다. 애완동물 수요가 늘어 불법 거래도 증가했다. 당시 영국 옥스퍼드브룩스대 연구진이 사람들의 이런 반응을 분석하면서 이를 “죽음의 쓰다듬기”(Tickled to death)라고 불렀다.
김지숙 지구환경부 기자 suoop@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