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재생에너지의 '잃어버린 세월'
② 갈수록 좁아지는 '원자력 기회의 창'
③ 재생도 원자력도 필요한 '전력망과 유연성 자원'
② 갈수록 좁아지는 '원자력 기회의 창'
③ 재생도 원자력도 필요한 '전력망과 유연성 자원'
④ K-배터리, K-전기차 무색한 '더딘 전기차 전환' (하)
⑤ 예측 뛰어넘는 기후재난
홍수나 폭염 등 극한 기상 현상은 장기적(향후 10년)으로나, 단기적(향후 2년)으로나 '가장 심각한 위기'로 꼽혔습니다. WEF(World Economic Forum, 세계경제포럼)가 해마다 내놓는 〈글로벌 위기 보고서〉에 담긴 결과입니다. 이는 장기적 및 단기적으로 위기별 심각성을 1~7점 척도로 매겨 전 세계의 사회 각계각층을 상대로 조사한 것으로, 극한 기상 현상은 장기 5.9점, 단기 4.7점으로 다른 모든 위기를 넘어설 만큼 심각한 위기라고 세계인의 중지가 모였습니다. 극한 기상 현상에 이어 가장 위기로 꼽힌 것은 오정보(Misinformation)와 허위정보(Disinformation)로, 장기 심각성은 5.2점, 단기 심각성은 극한 기상 현상만큼 심각한 4.7점으로 평가됐습니다.
이들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우선순위는 시민사회나 학계, 재계에 따라 조금씩 달랐습니다. 시민사회는 4가지 환경 위기에 대해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했습니다. 극한 기상 현상은 2위, 지구 시스템의 심각한 변화는 3위, 생물다양성 손실 및 생태계 붕괴는 8위, 천연자원 부족은 9위에 올랐죠. 학계에서도 극한 기상 현상을 무장 분쟁에 이어 두 번째로 심각한 2025년의 위기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지구 시스템의 심각한 변화는 5위, 천연자원 부족은 9위, 생물다양성 손실 및 생태계 붕괴는 13위로 달랐습니다. 재계 또한 극한 기상 현상이 당장의 심각한 위기(3위)라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극한 기상 현상 외에도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 시스템의 심각한 변화는 7위로 우선순위가 더 내려왔죠. 다른 모집단 대비 경제적, 사회적 위기에 더 민감한 만큼, 상위 20위 가운데 환경과 관련한 위기는 이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때문에, 건당 평균 피해액의 측면에서 지진은 469.3억원으로 전체 평균(153.7억원)을 크게 넘었습니다. 호우는 건당 167.5억원으로, 지진엔 미치지 못하나 평균을 상회했고, 태풍 또한 건당 144억원으로 평균에 가까웠습니다. 이 기간, 우심피해 발생 건수를 살펴보면, 앞서 살펴본 인명피해 추이와 마찬가지로 재해 자체의 빈도 또한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호우의 경우는 피해의 집중 지역이 조금 달랐습니다. 경기도가 416억원으로 10년간 피해액이 가장 컸고, 충청북도는 412억원, 전라남도는 325억원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태풍 대비 지역별 편차는 적은 편이나, 대체로 중부내륙이나 전남 등 서쪽지역에 집중됐죠. 이들 지역은 편서풍으로 바다를 건너오는 비구름대를 먼저 맞닥뜨리는 곳으로, 인구나 시설도 밀집돼 재해 피해액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비는 짧고 굵었습니다. 오후 5시 무렵 시작된 비는 빠르게 호우로 변했습니다. 30분 만에 1개 자치구 면적에 달하는 곳에 시간당 60mm 안팎의 비가 쏟아졌죠. 이후 호우는 얇고 긴 띠의 모양으로 수도권 각지를 뒤덮었습니다. 오후 6시 30분, 기상청은 서울 서남권에 호우주의보를 발령했고, 이내 6시 50분, 이는 호우경보로 격상됐습니다. 이즈음, 서울의 일부 좁은 영역엔 무려 시간당 100mm급 넘는 강도의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이후 저녁 7시가 지나면서 비는 동쪽으로 확대됐고, 7시 30분부턴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저녁 8시 이후엔 양천구와 영등포구, 구로구 등 서남권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 비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여기에 동풍이 주류였던 우리나라에 갑작스레 북풍과 남풍 계열의 바람이 서쪽으로부터 불어왔습니다. 공기와 열기, 수증기는 흩어지지 못하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뭉쳐졌습니다. 이 지역에 국지성 호우가 쏟아진 두 번째 이유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 비밀은 '공간의 구성'에 있었습니다. 빌딩숲이냐, 도시숲이냐. 이미 과밀화가 심각한 서울 속에서도 그나마 숲이 있는 곳은 기온이 덜 오르고, 상대적으로 고층건물이 밀집된 곳은 더 달아올랐던 것이죠. 이는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2024년 8월 29일의 지표면 온도와 도시숲 면적을 분석한 결과, 25개 자치구 가운데 도시숲 비율이 높을수록, 지표면 온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난 겁니다. 이날도 구로구는 38.8℃로 가장 높은 지표면 온도가 기록됐고, 가장 낮은 지표면 온도인 34.9℃가 관측된 곳은 도시숲 비율이 62.3%로 25개 자치구 중 가장 높은 강북구였습니다. 도시 계획 과정에서 빌딩과 숲의 균형을 염두에 뒀다면, 폭염도, 그에 따른 갑작스런 폭우도 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뿐더러, 평시엔 이러한 도시숲이 시민들에게 휴식과 안정을 제공해줬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 지점입니다.
분명 60년의 세월, 자연재해로 인한 인명피해도 줄여왔던 우리나라인데, 어째서 최근 10여년간 다시 그 피해가 늘어난 것일까. 구멍이라도 뚫린 듯한 하늘에서 떨어졌던 비의 양은 80mm를 간신히 넘겼을 뿐인데, 퇴근길 일부 도로는 물에 잠길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이러한 변화가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과거의 인프라로는 더 이상 지금의 기후변화를 맞설 수 없다는 것이죠. 80mm의 비가 하루 내내 내렸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일인데, 고작 수십 분 사이에 그 양의 대부분이 몰아서 쏟아질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그동안 깊은 고민도, 대응할 방법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산림과 녹지, 생태수로나 빗물정원, 맹그로브, 도시 농장 등은 그 자체로 '인프라스트럭처'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호수와 연못, 습지, 대수층 또한 그저 '예전부터 있던' 환경으로 지나칠 것이 아니라, 인프라로서의 기능을 할 수도 있습니다. 높은 파도를 막기 위해 방파제를 쌓아 올렸을 때, 우리는 설계도에 명시된 높이의 파도로부턴 안전할 수 있겠지만, 속절없이 사라지는 모래사장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해안가에 그저 맹그로브나 수목만 조성한다면, 모래사장은 지킬 수 있겠지만 큰 파도로부터 우리의 안전을 담보하기엔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하이브리드 인프라입니다. 경우에 따라 절충안일 수도, 때로는 효과를 극대화하는 최적안일 수도 있는 존재인 것이죠.
뉴올리언스의 세인트 찰스로와나폴레옹로, 그리고 츄피툴라스가 인근 지역은 멕시코만과 이어진 보르네호의 범람으로 잦은 침수 피해를 겪었습니다. 이에 지역 정부는 보르네호를 넘어오는 해일을 막기 위해 첫 번째 방호벽으로 바로 3제곱킬로미터 규모의 해안습지를 복원시켰습니다. 기존의 자연환경으로 현장을 되돌림으로써 해일을 완충시키는 것이죠. 만약 1차 방호가 깨지더라도 길이 3km가 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폭풍 방벽이 2차 방호를 하게 됩니다. 습지 복원으로 생태적 기능을 회복함과 동시에 카트리나와 같은 대규모의 허리케인에도 피해를 줄이는 인프라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자연으로부터 최대의 편익을 끌어내기 위한 이러한 노력은 일부 생태주의자들에겐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우리가 겪게 된 재해재난은 과거의 통계에 기반해 그 한계가 설계된 그레이 인프라만으론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평시엔 흉물스러운 구조물의 모습에 온갖 민원의 근원이 될 그레이 인프라를 과잉 구축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는 인공적, 인위적인 구조물로 막을 수 있다는 기존의 관습적 대응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유례없는 수준의 재해재난에 대응함과 동시에 사회 인프라와의 연결성을 높이고, 재해 후의 회복성 또한 강화시키며, 평시엔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주민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는 것, 하이브리드 인프라에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가 관심 갖고 집중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박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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