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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더위를 피하는 곳

머니투데이 혜원스님구리 신행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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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스님 구리 신행선원장

혜원스님 구리 신행선원장



"스님, 더위를 피하는 법 좀 알려주세요." 제자가 물으니 스승은 이렇게 말한다. "더위 속에 뛰어들어라." 에어컨이 없던 어느 공기업의 직원이 에어컨 좀 설치해달라는 요구에 책임자가 말한다. "알았다. 그 문제는 확실히 해결해 드리겠다"며 덧붙여 한 말이 "두 달만 있으면 확실히 더위는 해결된다."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관념을 전환하는 것이 저 대답의 목적이다. 문제가 있어서 문제가 아니라 문제라 여겨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한여름 우리 몸이 체감하는 더위를 두고 문제 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운 것은 더운 것이고 시원한 것은 시원한 것이지. 맞는 말이다. 하지만 더운 것과 그 더위에 의한 불쾌함과 짜증은 분리될 수 있다.

더위를 문제 삼고 그 더위를 피하려는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불쾌하고 짜증이 일어난다. 현상과 감정이 분리되지 않으면 그 고통은 배가된다. 그럴 때 의식의 전환이 큰 도움이 된다. 위의 저 문답도 도움이 되고 '왜 이렇게 더운가 했는데 이제 보니 여름이었구나' '여름은 덥기 마련이지'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은 편안해진다.

에어컨이 없던 어릴 적엔 밤중에 어푸어푸 하며 가족끼리 서로 등목을 해줬다. 미지근한 바람이 부는 선풍기 1대를 회전시키며 가족이 한밤에 자다 깨다 했다. 수조에 넣어둔 수박을 갈라 나눠먹고 슈퍼마켓이란 구멍가게에서 얼음과자를 사 와 저마다 하나씩 입에 물고 더위를 식혔다. 가끔은 어떤 일에 몰두하다 보니 더위를 잊고 몇 시간을 지낸 경험도 있다. 더위 속에 뛰어들라는 말의 의미가 저런 것이 아니겠는가.

때로는 지난겨울 살을 에는 추위를 떠올리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히말라야의 설원을 상상해본다. 혹자는 살 떨리는 납량특집 공포영화를 본다.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와서 발을 담그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얼음수건으로 얼굴을 덮거나 몸을 닦는 것도 좋다. 개인적으론 얼마 전 누군가가 선물해준 휴대용 선풍기를 참으로 유용하게 쓰고 있다.

더위하면 필자가 출가한 전남 순천의 송광사도 빠지지 않는다.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잡은 송광사는 덥고 습하기로 유명하다. 몇 해 전엔 산내 암자의 바나나나무에서 바나나가 열리고 누군가 심어놓은 망고나무에서 망고도 열릴 정도로 열대기후가 송광사를 뒤덮었다. 학인 때인 10여년 전엔 대중이 먹고 자는 곳에 선풍기도 없어 점심공양이 끝나면 속옷까지 흥건히 젖었다. 별다른 도구 없이 나눠주는 부채로 여름 한철을 지냈다.


못 견디게 더울 때는 생각을 멈추고 가만히 호흡에 집중했다. 그런 경험을 하면 도반끼리 인도에서 왜 호흡수행이 탄생했는지 공감하게 된다. 그렇다. 호흡에 집중하는 것도 매우 유용한 피서법이다. 비강에 호흡이 들고나는 느낌을 지그시 관하는 것이다. 물론 호흡수행은 단순히 더위를 피하는 데만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관념과 감정이 항상하지 않음을 깨닫고 그것들 속에서 자유롭기 위한 수행법이다. 그래서 더운 느낌과 불쾌한 감정으로부터 편안해지는 영험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실생활에 수행이 유용하다. 덥고 짜증날 때 호흡에 집중하면 한결 나아질 것이다. 이런저런 피서법이 많지만 역시 더위엔 에어컨이 최고다. 선원의 전기세 걱정에 맘 놓고 켜지는 못하지만 가끔 습기를 제거하면 선풍기 바람이 훨씬 시원해진다. 하여튼 각자의 환경과 인연 속에 각자의 방법으로 여름 한철 시원하게 나기를 바란다. 덥지 않으면 시원함을 느낄 수 없고 춥지 않으면 따스함도 느끼지 못한다. 자연현상에 지나치게 짜증을 내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으니 슬기롭게 대처하는 것이 좋겠다.

얼마 전 미국 텍사스에서 큰 홍수가 나 많은 사람이 희생됐다. 석유재벌이 많은 곳에 닥친 이상기후가 참으로 씁쓸해지는 요즘이다. 겸손과 겸허로 더위를 피해야겠다.

혜원스님 구리 신행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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